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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an 15. 2022

나는 시험기계였다.

  수능을 시작으로 삼십 대 초반까지 대략 십몇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시험들을 봤다. 대략적인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수능(+재수), 금융자격증 시험(금융 3종, 투자자산운용사, 국제 FRM, TESAT), 무역 관련 시험(국제무역사, 무역영어), 토익시험, 한국사 시험, 대학원 입학시험, 대학원 졸업시험, 금융공기업 필기&논술시험, 공인중개사시험, 노무사시험 등이 있다. 대부분의 시험들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았던 것도 있었고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불공평한 사회에서 그나마 공정하다는 시험이란 것조차 그다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도 수많은 시험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노력 하면 다 된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것도. 


  시험 결과가 공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데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학원비, 등록금, 교재비, 인강비, 시험 결재료 등 직접비용을 제외하고도 공부하는 동안 일하지 못해서 벌지 못한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어마어마하다. 공부할 돈이 없으면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노력을 다 쏟아부을 수 없다.  나는 대학, 대학원, 고시 준비 내내 과외를 했다. 그나마 알바보다 시간이 덜 들면서 더 많이 벌 수 있는 과외를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과외하는 시간 제외하고는 시험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부모님 집에서 지냈기에 주거비 걱정은 없었으니 어느 정도 공부할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반면에 공무원 준비를 하고 싶어 했던 내 대학 친구는 학부성적이 늘 좋았고 여건만 받쳐주면 잘할 수 있는 친구였는데,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면서 생활비도 빠듯했던 지라 결국 졸업하고도 알바만 전전하게 되었다. 과외하면서도 그런 걸 많이 느꼈다. 그동안 과외를 적어도 50명 이상은 한 것 같은데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중하위권 학생도 가끔 있긴 했지만 대부분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반면에 못 사는 집 아이들은 열이면 열 다 하위권 학생들이었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으면 그때부터 내 다이어리는 그 시험을 위한 일정으로 빼곡하게 찬다. 시험 합격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생겼으니 인간관계라든가 여행이라든가 취미생활이라든가 뭐든 일단 다 뒤로 미룬다. 시험 외에 다른 생각 따윈 들어올 틈이 없이 완벽한 시험기계가 되는 것이다. 시험기계의 일상은 기계처럼 흘러간다. 매일 수백, 수천 페이지의 내용들을 내 머릿속에 미친 듯이 쑤셔 넣는다. 마구 쑤셔 넣은 내용들은 자꾸만 흘러넘친다. 흘러넘치는 내용들을 다시 쑤셔 넣고 꾹꾹 눌러 담는다. 시험 당일까지 새어 나오지 않도록 계속 쑤셔 넣고 꾹꾹 눌러 담는 일을 무한정 반복하는 것이 시험기계인 나의 일이었다.


  내가 가장 많은 노력을 들였던 시험은 '대학원 졸업시험'과 '노무사시험'이었다. 두 시험의 공통점은 시험에 떨어지면 대외적으로는 그 시험을 준비한 시간이 그냥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 더 못한 시간이 된다는 것이었다. 대학원 졸업시험은 두 번의 기회를 주고, 두 번 째에도 통과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퇴출이었다. 즉 졸업 논문도 못쓰고 졸업장도 못 받게 되는 것이었다. 노무사 시험은 0.1점 차이더라도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정해진 합격 인원 안에 들지 못하면 그간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된다.

     

  경제학과 대학원 졸업시험은 온갖 그리스 알파벳 기호, 숫자, 그래프들이 빼곡하다. 나는 그 모든 수식과 증명식들 현란한 그래프까지 모조리 외워버렸다. 졸업시험 전날에 잠을 자려고 불 끄고 누워서 눈을 감았는데, 내 머릿속에서 수십 페이지짜리 수식들이 컴퓨터 화면에 입력하듯 주르륵 쓰이고 있었다. 내 머리가 무슨 컴퓨터가 된 것 같았다. 노무사 시험 전날에도 그랬다. 시험 전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내 귓가에서 내 목소리가 대법원 판례들을 주르륵 읽어주고 있었다. 무슨 기계음처럼. 대략 1400페이지 정도 되는 노동법 기본서에 있는 대법원 판례들을 속으로 수십, 수백 번 읽으며 달달 외웠으니, 나는 꿈속에서도 그 내용들을 기계처럼 반복해서 외우고 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쑤셔 넣었던 내용들은 시험 당일에 답안지라는 빈 종이에 또 미친 듯이 쏟아붓는다. 지금 이 답안지 종이 안에 다 쏟아붓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들이니. 그러고 나면 아주 간단하게 "점수"라는 것으로 나의 그동안 노력의 가치가 매겨진다. 고등학생에겐 모의고사 점수가 대학생에겐 학점이 취준생에겐 필기시험 점수가 곧 자신의 가치가 되어버린다.


  취준 때는 경제 시사 문제들 또한 달달 외웠다. 면접에서 경제시사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할 때 나는 내가 외운내용들을 내 생각인 듯 말했다. 공부 잘한다고 착각했었지만 나는 그냥 기계일 뿐이었다. 처음에 입력한 대로 고장 없이 잘 돌아가는 기계.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노무사 합격 후 동기들끼리 서로 '왜 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였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하라는 대로 초중고대학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험들을 봐왔으니 시험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시험기계가 된다는 건 어찌 보면 편한 일이다. 그냥 하던 대로 시험공부만 하기만 하면 되니까. 정해진 답도 없는 인생에 대한 고민할 필요 없이 시험 준비는 하면 할수록 늘고 합격하면 또 여러 가지 대우도 좋아지고 하니까.     


  노무사가 되고 나서도 동기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 시험 합격 하나로 주어지는 달콤함에 취해 또 다른 시험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노무사와 업무상 시너지 효과 있는 세무사를 준비하는 사람, 노무사 업무에 부수적으로 필요한 경영지도사, 산업안전기사 등을 준비하는 사람, 아예 로스쿨까지 진학해 노동 전문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 등. 시험은 무서운 중독성이 있다. 특히 한두 번 시험 합격해본 사람들이 더 그렇다.


  나라고 뭐 다를 게 있을까. 나도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 노무사 시험 준비를 했고. 시험 붙고 나서도 달라지는 대우들에 또 다른 시험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고용노동부 직렬 5급 공무원 해볼까, 로스쿨 진학이나 해볼까, 세무사도 해볼까...' 등등..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공부'와 '시험'은 다르다. 나는 공부는 좋아하지만, 시험은 싫다. 노무사 시험 준비할 때도 처음엔 '공부'로 접근했기에 재미있었다. 몰랐던 것들 새로운 것들을 알아간다는 재미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결국 시험을 준비하는 거였고 시험에 붙기 위해선 그 많은 내용들을 달달 외워야 했다. 나는 더 이상 글자, 숫자, 그래프만 달달 외우는 데에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겨우 몇 문제, 몇 점 차이로 더 잘했네 못했네 노력을 했네 안 했네 하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고민하다 보니 나에게 맞는 답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시험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재작년에 전자책을 선물 받고 밀리의 서재 정기구독을 한 이후로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고 책 읽는 게 더 재밌어졌다. 책을 읽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골라서 하는 거라 더 좋다. 뭔가 관심 있는 주제가 생기면, 그 주제를 검색해서 관련된 책들을 최소 5권~10권 정도 읽는다. 그럼 개념이나 용어도 명확히 잡히고, 그다음에 다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저책의 저자는 저렇게 생각하고 그럼 내 생각은 어떤지 질문해본다. 시험에서처럼 한 문제를 맞히기 위해 예상 문제나 답변을 만들어가면서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 수많은 시험을 봐놓고 이제야 나는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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