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생에서 나는 계속 <평범한 길>을 선택했다. 그 길 외에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몰랐다. 아니, 어렴풋이 알았지만 모른척했던 걸까.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아무 고민 없이 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 쪽으로 갔다. 그런데 달려가다 보니 덩치 큰 사람들이, 비바람이, 사나운 맹수들이 나를 자꾸 길 밖으로 밀어냈다. 이제 여긴 너가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엄청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대부분 그랬듯 어렸을 땐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같은 것들이 그 나이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줄 알았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길>을 따라가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했을 뿐이었다. '평범하게 잘 살아왔는지'가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인 줄 알았으니까.
지금 현재의 내 모습만 보면 평범해 보일지도 모른다. 30대 직장인 여성. 끝. 하지만 나는 그동안 사회가 만들어준 나이대마다 클리어해야 하는 미션들에서는 다 미끄러지기만 했다. 평범한 길 미션에서는 20대 중반엔 취업을 해야 하고 30대 초반엔 결혼을 해야 한다. 나는 취업을 33살에 했고, 현재 35살인데 결혼은 생각도 계획도 없다. 취업은 평범함의 기준 나이보다 한참 늦었고, 결혼은 평범함의 기준 나이에서 벗어나고 있다.
<평범한 길>첫 번째 단계에서 뒤처지면 그다음 단계 그 다다음 단계에 점점 더 뒤처지기 쉽다. 그리고 그럴수록 적의 힘은 강력해진다. 바로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비교병"이라는 적이다.
몇 년째 취업 못하고 백수생활할 때, 무엇보다 힘든 건 취업이 잘된 지인들과 비교할 때였다. 나와 별다를 것 없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똑같은 취준을 했는데 그는 되고 나는 안되었을 때 그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결혼 적령기인 사람들도 그렇다. 지인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애 낳는 걸 보면서 나는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나 혼자 평범한 길에서 멀찍이 떨어진 것 같은 우울함, 외로움, 공허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야지"라는 말은 말은 쉽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평범한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잠시 멈춰서 생각해볼 시간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생각해보니, 다시 뛸 수는 있지만 다시 뛸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은 왜 뛰는지도 모르고 그냥 뛰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길>에서 멀어질수록 더 조급하고 더 불안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어떤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난다. 정말 안 좋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데 시간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 안 좋은 일 덕분에 생길 수 있었던 좋은 일들도 반드시 있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평범한 길을 '안'간 게 아니라 '못'간 거지만), 오히려 못 가게 돼서 다행이다. 그 덕분에 남들과 비교하면서 쓸데없이 우울해하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내가 진짜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세상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삶들이 있다. 보려고 노력해야만 보이는 다채로운 수많은 삶들이. <평범한 길>에서 한참 벗어나고서도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사람들, 보려고 하니까 이제야 조금 보인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힘듦과 행복이 있을 것이고, 평범 루트를 잘 따라간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힘듦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인들이 신의 직장에 다녀도, 결혼하고 애 낳고 내 집 마련하고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어도, 그냥 잘 살고 있구나 하고 말게 된다. 남들과 비교하지말자고 다짐하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