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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Dec 11. 2021

혼자만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해주세요.

#1. 대학원 첫여름방학 때쯤인가 혼자서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대학원 생활은 생각보다 더 정신없이 흘러갔고, 오랜만에 여유를 찾은 시간이었다. 어디였더라. 관광지도 아닌 작은 마을의 시골 장터 같은 곳의 밥집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걸어 다녔던지라 배가 많이 고팠다. 시골밥상은 후했고 저렴한 가격에 맛도 좋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기분 좋게 식사를 하던 그때, 옆 테이블에 앉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젊은 처자가 저렇게 혼자 밥을 먹고 있네 그래.. 에구구.." 한 순간 잠깐 멍해졌다. 말투, 억양, 눈빛 모두가 '젊은 아가씨가 이런 곳에서 혼자서 밥 먹는 게 너무 불쌍해 보인다'는 뜻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2. 활동적인 나와 달리 나보다 5살 어린 내 여동생은 완벽한 집순이다. 무난하게(?) 연애를 여러 번 해왔던 나와 달리 여동생은 연애경험이 거의 없다. 동생의 일상은 대부분 집에서 혼자 이루어진다.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가끔 내 동생에 대해 얘기할 때면 그는 "나이도 어리고 한창 좋을 때 남자도 안 만나고 혼자 집에서 뭐한데, 시간 아깝게.."라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는 내 동생을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동생이 연애 안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안타깝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본인만의 시간을 여유 있게 때론 알차게 즐겁게 잘 보내고 있는데 문제 될게 뭐가 있다는 거지?


#3. 내가 복싱을 오래 했고 대회도 몇 번 나갔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멋있다'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자가 격한 운동을 한다고 하니 '무섭다'라고 한다. 나는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서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복싱하는 게 좋고, 좋으니 오래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냥 좋아서 하고 있는 취미를 가지고 사람들은 나에게 ‘멋있다’ 혹은 ‘무섭다’하는 꼬리표를 붙여준다. 복싱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멋있는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닌데. 그냥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일 뿐인데.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과 취미 활동을 하는 중년의 A라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어떤 이는 A를 보고 '외롭겠다, 불쌍하다, 왜 저러고 사냐'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멋있다, 자유롭겠다, 부럽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A가 여성인가 남성인가에 의해 또 다른 시선들이 나온다. 이런 경우는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 글 댓글 같은 것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본인의 경험과 주변 환경 등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 느끼는 게 다르고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지금껏 경험해 온대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게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방식이니까.


  다만 당사자의 감정과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알 것 같다는 것 마냥 가볍게 자신의 생각을 던지는 말은 위험하다. 나도 다른 사람의 상황만 보고 내 멋대로 판단하곤 한다. 그래도 이제는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고 그 당사자 앞에서 ‘불쌍하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으려 한다. 불쌍하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뭐 어떻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아니 실제 뭔가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할퀼 수 있는 말은 내뱉지 말자.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불쌍한 사람이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불행한지 행복한지는 그 당사자의 마음이 결정할 일인 것이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외롭겠다, 불쌍하다, 힘들겠다'등의  생각이 들거든 생각으로만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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