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꼭 해야 된다는 일들에 대해 ‘왜?’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살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말. 대학-취업-결혼-육아-내 집 마련-노후준비라는 정상 루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들이 많이들 하는 말이다. 조언이라는 탈을 쓰고 하는 말이지만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니까.
의지가 아무리 강한 사람도 주변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이 저런 말을 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대로 진짜 뒤늦게 후회하게 될까 봐.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보다는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 선택하게 돠는 경우들이 많다. 사회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나도 내가 진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 그렇게 안 하면 남들이 후회할 거라 하니까 두려운 마음에 그렇게 했던 게 대부분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뒤돌아보니 나란 사람은 없고,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사유리가 쓴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에서 사유리는 정자 기증받아 임신하고 아이 낳는 과정을 주변에 거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진행했다고 한다. 미리 말해봤자 다들 기를 쓰고 말렸을 테니까. 그 전에도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더 명확히 느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선택하는게 본인에게 정답이라는 것을. 설령 나중에 진짜로 후회하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처럼 진짜 후회하게 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구는 후회할 수도 있고 누구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듯하지만 하나하나 다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서 모든 길을 다 가볼 순 없으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늘 따를 것이다. 그러니 후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남들의 말에 따라가서 후회하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밀어붙이지 않았던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내 선택을 밀어붙이고 난 후 생각보다 더 힘든 시간들이 찾아오면, 남들의 말에 따라가지 않고 내 고집을 밀어붙였던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후회하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 말자.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주위 환경이 '너 그렇게 남들 하는 데로 안 따라가고 너 혼자 그렇게 별나게 행동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거야!'라는 협박에 쫄지 말자. 그보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자.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택을 하더라도 그 길 조차 마냥 행복하고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에게 있어 후회가 더 적을 거 같은 걸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는 나에게 사람들이 ‘왜 결혼 안 하려고 해?’라고 묻는다. 뭐 굳이 따지자면 한 수십 가지 이유를 들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냥요. 뭐 나중에 할 수도 있겠죠.’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왜냐하면 ‘결혼 안 하면 후회할 거’라는 말로 협박하는 사람들은 내가 결혼 안 하려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른다. 네가 경험이 없어서 모른다는 말이 숨어있다.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협박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본인보다 아랫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전형적인 태도다. 나이상 위에 있든, 회사에서 직급상 위에 있든, 사회적인 성공 기준에 있는 사람들이든, 결국 "내가 너보다 잘 아니까, 내 말 듣는 게 좋을걸?" 하는 것이니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 친구가 아는 동생이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했다. 나는 워홀을 가본 적은 없지만, 가서 고생만 하고 온 사례들을 많이 봤다. 친구는 그 동생이 아직 어리니까 뭘 모르는 거라고 절대 가지 말라고,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어차피 고생할 거, 차라리 말 잘 통하는 여기서 고생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예전 같았으면 아마 내가 아는 사례들을 들면서 가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냥 잘 다녀오라고 할 것 같다. 본인이 하고 싶다고 마음 끌리는 일이니까. 설령 워홀을 가서 온갖 몸고생, 마음고생 다 하고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채로 돌아오더라도, 그 경험에서도 분명히 얻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던 세계를 배울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기회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 하나로 이미 그 선택을 하기에 충분하다.
본인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면, 그게 생각했던 만큼 좋든, 좋지 않든 거기서 배우고 깨닫는 게 있을 것이고 앞으로의 삶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해봤는데 아니더라'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책을 많이 읽는다. 내가 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물론 책 읽는 게 좋아서지만, 이유를 한 가지 들자면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생각이 더 넓고 깊고 풍부해지는 느낌이 좋다. 그러면서 타인의 선택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잣대만 들이대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늘 다짐한다. 내 생각을 존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생각도 존중해야겠다고. 어떻게 사는 것만이 정상적이고 안정된 삶이라고 단정 짓지 않겠다고. 늘 고민하고, 반성하고, 이해하고, 공감하자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후회할 거라는 협박에 굴복하지 말자고. 나 또한 내 잣대만 들이밀며 후회할 거라는 협박을 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