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는 딸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

by 놀쓴

집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살 원룸을 알아보고 다녔다. 부모님의 허락을 꼭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왠지 불편한 대화가 될 것 같아 더더욱 미리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내가 마음을 먹었으니 말씀을 드리긴 해야 했다. 혼자 원룸을 알아보고 다니던 1월 즈음, 엄마에게 이제 나가서 나 혼자 살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엄마의 첫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 놀라면서도, '그래. 이제 다 컸고 직장도 다니고 있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였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다음 말씀이 화근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쭉 살다가 결혼하고 나가는 게 낫지 않겠니. 니 나이가......"


그다음은 내가 삼십여 년이 넘게 들어온 똑같은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사연인즉슨, 우리 엄마는 26살에 동갑인 아빠와 결혼하셨다. 80년대에 여자의 결혼 적령기가 20대 초반이었으니, 우리 엄마는 조금 늦게 결혼하신 축에 속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서 조급함이 있었던 엄마에 비해 아빠는 그때 매우 느긋해하셨다고 한다. 남자 나이 스물여섯이 결혼을 조급해할 나이도 아니었고, 아빠는 키도 크시고 잘생기셨기 때문에 굳이 결혼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고 추측된다. (학창 시절 졸업식에 부모님이 오시면 친구들이 다들 '히야네 아빠 잘생기셨다'라고 했었다.) 엄마는 그때 아빠의 (결혼에 대해) 느긋한 태도 때문에 아주 속이 터지고 분했었나 보다. 엄마는 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조급한 반면 아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은 태도를 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얼마나 분했는지 결혼 후 거의 4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그때 일을 언급하신다. 또 그 덕분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결혼은 연상이랑 해라, 결혼 적령기보다 늦게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자랐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금 그때의 엄마처럼 동갑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다. 여자 나이 2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였던 시절에 동갑의 남자를 만나고 있던 26살의 엄마와 여자 나이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인 시대에 동갑의 남자를 만나고 있는 36살의 나. 엄마는 지금의 나를 보며 26살의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엄마가 느꼈던 속 터지는 분한 감정을 내가 똑같이 느끼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만, 그 당시 26살의 엄마와 현재 36살의 나는 중요한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엄마는 그 당시 결혼을 빨리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고, 현재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간다고 해서 결혼을 빨리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는 전혀 없다. 엄마는 이 점을 이해하시질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엄마와 나의 대화는 늘 서로 화만 내면서 기분 상해서 끝나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여자는 나이가 너무 많으면 결혼을 못 한다며 또 아빠 얘기를 하는 엄마에게 나는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 그 똑같은 얘기 지겨워 죽겠다.'라고 날 선 말을 쏘아 댔다. 내 말에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듯했다. 한번 화가 나면 분이 풀릴 때까지 한참 동안 욕하시는 분이라, 결국 늘 그래왔듯 나 혼자 입을 닫고 나와버렸다. 그 뒤로 한동안 엄마랑 말도 안 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계약을 하고 이사 날짜가 정해진 후, 이삿짐 싸려고 큰 이사 박스 여러 개를 집으로 주문했다. 내가 회사에 있는 시간인 평일 오전에 택배가 도착했고, 집에서 내 택배를 받은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의 문자를 보고 정말 놀랐다. 잠시 멍해졌다가, 슬퍼졌다가, 뭉클했다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기어코 나가는 거냐고, 혼자 나가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냐'라고 하면서 2차전으로 또 화를 내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문자를 보내실 줄을 상상도 못 했다. 내 결혼 문제만 걱정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 자주 못 보게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동안 해준 것 없는 것에 대해 미안함까지 느끼고 계셨던 것 같다.


이사 박스 배송 후, 짐을 싸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필요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챙겨주셨다. 어딘가에서 선물로 받아서 안 쓰고 쌓아놨었던 식기세트들, 식용유, 비누 같은 선물세트들, 수건 등. 주말에 조금씩 짐을 싸고 있는 내 옆에 와서 계속 '이거 필요해? 저거 필요해? 이것도 가지고 가라. 저것도 가지고 가라'하셨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옆에 와서 재잘거리는 것 같은 엄마가 귀엽기도 하고 고맙고 또 미안했다. 최대한 정말 필요한 물건만 챙겨 오려고 몇 가지는 거절했지만, 엄마 덕분에 챙겨 온 살림살이들이 많아 생각보다 예산을 좀 더 아낄 수 있었다.




는 우리 엄마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우리 4남매 모두에게 누구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한가운데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셨다. 우리 넷 모두 아주 어렸을 때 엄마는 목욕탕에 데려가 첫째부터 막내까지 순서대로 4명을 한 명 한 명 때를 밀어주셨었다. 한 번은 내가 '엄마. 그때 애 4명 때 미는 거, 그 힘든 걸 어떻게 했어?' 하니까, '내 새끼니까 했지.' 하면서 웃으셨다. 언니나 동생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엄마가 크게 누군가를 더 챙겨주고 누구를 덜 챙겨준다고 느낀 적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넷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각자 할 일을 알아서 하며 독립심이 있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정말 똑똑하시다. 고졸인 엄마가 경제학 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나보다 돈에 대해 훨씬 빠삭하시다. 일을 하면서 4남매를 키워오신 내공인 걸까.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디로 굴러가는지,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 엄마한테서 돈에 대해 배웠다. 게다가 나는 암산도 잘 못하고 돈 계산이 느린데, 우리 엄마는 돈 계산도 빠르시고 돈에 관해서는 판단력도 빠르시다. 엄마가 장난스럽게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지~'하시곤 했는데 진짜 그런 경우가 많았다.



잔소리를 하든 화를 내든 엄마의 모든 말은 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머리로만 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싶지 않고 혼자 살고 싶다는 내 생각을 이해해 주지 않는 엄마를 답답해하면서, 내가 먼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은 나쁜 딸이 된 것 같다. 늘 결국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해왔다. 내 인생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말은 더 따뜻하게 할 수 있었던 건데.. 내가 엄마에게 공감받고 싶어 하듯, 엄마도 나에게 공감받고 싶어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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