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으로 혼자 살려고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 사야 했다. 본가에서 가지고 갈 짐은 '책, 옷, 신발, 가방' 뿐이었고 그 외에 모든 가전, 가구, 생활용품 등 사야 할 물건들이 끝도 없었다. 월세가 조금 저렴한 대신에 풀옵션이 아니었기에 세탁기, 냉장고까지 사야 했다. 크게는 침대, 책상, 서랍장 등 작게는 세제, 쌀, 휴지 등등.. 원룸에 월세로 혼자 사는데도 이렇게까지 필요한 게 많을 줄 몰랐다. 가장 비싼 가전인 세탁기, 냉장고는 어차피 원룸 월세니까 중고매장에서 저렴하게 샀다. 자잘자잘한 물건들은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했고, 큰 가전/가구들은 이사 날 맞춰서 배송될 수 있도록 주문했다.
이사하기도 전부터 택배가 끊이지 않게 왔고, 이사 당일에 큰 가전/가구들이 배송되었다. 그 후 하루에도 2~3개씩 택배가 왔다. 본가에서 가져온 것들 & 택배 배송 온 것들 & 곧 배송 올 것들의 향연이 어우러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사 후 며칠에 걸쳐 거의 정리가 마무리되었을 때, 그동안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품들이 30개가 넘었다. 날 잡고 하루 종일 그 물품들 전부 리뷰를 올렸더니 적립 포인트로 만 거의 4만 원 가까이 되었다.
필요한 건 다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면서 자잘자잘하게 필요한 것들이 계속 생겼다.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에 다이소가 있어서 한동안 자주 다이소 쇼핑을 갔다. 옷걸이, 종이컵, 물티슈, 바구니, 휴지통, 멀티탭 등등... 이사로 인해 다이소를 4번 왔다 갔다 했는데 다 합쳐서 대략 30만 원어치 플렉스 했다. 다이소에서 무려 30만 원이나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무리 싼 물건이어도 꼭 필요한 것만 사고자 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이사 당일, 본격적 이사청소가 시작되었다. 원룸이고 남자친구와 둘이서 청소하니 금방 끝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거의 하루 종일 걸렸다. 그전에 살던 세입자가 3년 살았다고 들었는데, 살면서 단 한 번도 청소를 안 하고 산 것 같았다. 그냥 먼지가 아닌 시커먼 먼지 때들이 나왔고, 벽에 곰팡이에, 머리카락 뭉치들도 여기저기서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곰팡이 생긴 부분에 곰팡이 제거제를 바르고, 베란다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신발장, 옷장, 싱크대를 두세 번씩 닦았다.
토요일 오전에 가서 하루 종일 청소하고 내 차로 짐을 일부 옮겼다. 다음 날인 일요일 다이소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 와서 짐 정리를 했다. 아직 배송되지 않은 가구들이 있어 완전히 정리를 못했다. 근처 마트에 가서 휴지, 계란, 쌀, 종량제봉투 등 생활필수품들을 샀다. 다음 날 월요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옷 무덤을 정리했다. 옷 먼지 때문에 재채기하면서 코 풀어가면서 정리했다. 월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3일 내내 이사청소, 택배 정리, 짐 정리로 고단했기에 사우나에 가서 피로를 좀 풀기로 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합리화하며 서른여섯 생애 처음으로 사우나에서 세신을 받아봤다. 그전에는 세신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과 엄마나 동생과 함께 갔기에 세신 받을 필요를 못 느꼈었다. 처음 받은 세신은 정말 편하고 신세계였다.
이사전 거의 한 달간 계속 인터넷 쇼핑을 주야장천 했다. 사야 할 것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제품들을 비교해 보고, 후기를 다 읽어보고, 비슷하거나 같은 제품들이 다른 곳에서 더 싸게 팔지 않는지 가격 비교까지 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단돈 천 원이라도 더 저렴한 걸로 사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월셋집이기에 굳이 비싼 것 살 필요 없는 물건들은 최대한 저렴한 것으로 사려고 했다. 대신 침대 매트리스와 이불, 냄비, 프라이팬 등 내가 자주 쓰고 중요한 것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걸 사려고 했다. 물건 하나 사는데도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돈이 넉넉했더라면 가격비교하면서 살 필요가 없이 그냥 마음에 드는 것을 바로 주문하면 됐을 텐데. 여기저기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또 고민하고 하다 보니 쇼핑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사청소를 돈 주고 할 생각 자체를 안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왜 돈 주고 하나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이래서 이사청소 받으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청소도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던데, 내가 하니 어설픈 것도 같고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해야 되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사다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남자친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것 같다.
이삿짐센터도 용달차도 부르지 않았다. 나의 오래된 투싼 차의 뒷좌석 의자를 접으면 짐이 꽤 많이 들어갈 수 있어서 두 번 왔다 갔다 하니 짐을 전부 옮길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 안에 짐을 하나하나 쌓아 넣고, 또 짐을 하나하나 빼서 옮기고 하는 것도 힘이 꽤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이사청소와 포장이사 생각이 간절해졌다.
겨우 원룸 이사하는데 3일이 꼬박 걸렸다. 화요일부터는 출근을 해야 해서 그 주는 퇴근 후 계속 짐 정리를 하고, 택배 받고 정리하고 택배 받고 정리하고 했다. 결국 완전히 정리되기까지 거의 일주일이나 걸림 셈이다. (물론 돈 아끼느라 오래 걸린 것도 있고, 혼자 사는 건 처음이기에 모든 살림살이를 다 사야 해서 오래 걸린 것도 있다.)
이사로 지출한 내역들을 정리한 엑셀파일과 카드 사용내역을 보면서 돈이 정말 순식간에 빠져나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전, 가구, 잡화, 생필품, 다이소, 마트 장 보기까지 다해서 330만 원 정도 들었다. 300만 원 예산을 잡았는데 조금 더 들었다. 그나마 직접 이사청소를 하고, 이삿짐센터를 부르지 않고 직접 내 차로 옮기고, 남자친구가 많이 도와주고, 최대한 저렴한 물건들로 사고해서 이 정도 일 것이다.
"돈만 있으면, 이 고생 안 했을 텐데.. "
몸도 지치고, 정리가 끝도 안 보이고, 또 사야 할 것은 계속 나오고, 카드값은 계속 늘어가고, 그러니 '돈만 있으면 이 고생 안 했을 텐데'싶어서 착잡해지기도 했다. 얼추 정리가 끝난 월요일 저녁, 사우나에서 세신을 받으면서 (난생처음 받는 세신에 감동하며)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싶다가, 문득 '이걸 매일 받아도 이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전/가구를 살 때 시간과 노력 들여가며 가격비교해 가면서 사지 않아도 된다면, 뭔가 수리하거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서비스 업체를 불러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바로 받을 수 있다면, 사우나 가서 힘들게 혼자 때 밀지 않고 세신 받으면서 편하게 누워있다 오면 된다면, 그리고 매일매일 언제든 '돈만 있으면 되는 이 모든 서비스'를 당연하게 누릴 수 있다면, 이게 너무 당연해져서 지금처럼 좋은 줄도 모르지 않을까?
이사 전 과정을 직접 하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내 손으로 땀 흘려 내 공간을 완성해 가는 뿌듯함이 엄청 컸다. 마음에 드는 가구들을 보며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이런 것도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행복들이 아닌가 싶었다. 남자친구와 같이 이사청소하면서 서로 힘든데도 장난치면서 하니 오히려 좋은 추억이 생긴 느낌도 들었다. 자취 만렙 남자친구 덕분에 화장실 청소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라든가 곰팡이 방지하는 방법 등등 많이 배웠다. 또 이사로 인해 인터넷쇼핑을 한 번에 많이 했더니 나중에 독립하는 지인이 생기면 뭔가 좋은 아이템들을 추천해 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 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많다. 나는 지금 돈이 없으니 돈이 없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행복들에 더 집중해야 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돈으로만 행복해질 수는 없다. 나는 당장 돈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있다. 내가 한 음식이 맛있게 되었을 때, 열심히 연습한 피아노 곡이 예쁘게 잘 쳐질 때, 날씨 좋은 봄날에 산책할 때 등등 소소하게 '아, 너무 행복하다'라고 느낄 때가 꽤 많다. 돈 없이도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나가는 것. 이제 막 독립하여 혼자 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 그럼에도 여전히 지금보단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 직접 이사청소하고 이삿짐 나르는 것은 한번 해봤으니, 다음엔 청소업체 부르고 포장이사 부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