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데 늘 겁이 난다.

by 놀쓴

복싱을 오래 했어도 시합을 나가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아플까 봐, 다칠까 봐, 질까 봐.. 계속 겁이 났다. 하지만 또 마음 한편으로는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라는 욕심도 있었다. 시합 전날까지도 나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잘 해낼 거라고 믿어주시는 관장님 덕분에 포기하진 않았다. 시합 당일, 링에 올라가 잠시 대기하는 그 짧은 순간에, 관중들의 시선과 상대 선수의 시선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달 떨렸고 그냥 도망치고만 싶었다. 하지만 막상 시합 시작종이 울리니 언제 떨었냐는 듯 나는 그동안 갈고닦아온 평소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결과는 우승이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아프지도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첫 시합을 잘 마무리하고 나니 다음 시합은 (그래도 또 떨리긴 했지만) 처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독립이 너무나 하고 싶었음에도 사실 두려움이 더 컸다. '혼자 원룸 사는 것의 어려움(서러움)'에 관한 얘기는 인터넷상에서도, 주위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누군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벌벌 떨었던 이야기라던가, 방 안에서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냄새나서 고생하는 이야기라던가, 옆집에서 방귀 뀌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방음이 안된다는 이야기라던가.. 등등. 그렇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들로 잔뜩 겁을 먹었었다. 그런 걱정들 때문에 그냥 본가에 살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직 이사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내가 했던 대부분의 걱정은 다 기우였다. 나는 소리에 예민해서 방음 여부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방음이 잘 되는 편이라 소음 때문에 큰 불편은 없다. 봄이라 날씨가 좋아서인지 베란다가 있어서인지 빨래도 잘 마르는 편이다. 처음 며칠은 약간 불안한 마음에 잘 못 잤었는데, 요새는 푹 잘 자고 있다. 본가에서 얻어온 김치와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과 내가 레시피 보고 간단하게 만드는 국, 찌개, 반찬으로 밥도 아주 잘 먹고 다닌다. 본가에 살 때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밖에 돌아다니느라 집밥을 잘 안 먹었었는데, 나와서 살고 보니 오히려 본가에서보다 더 잘 먹고 있는 것 같다.

예상했던 것보다 집안일에 시간이 더 많이 든다는 것 빼곤, 크게 불편하거나 힘든 점이 없다. 물론 여기 살면서 앞으로 혼자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일이 닥칠 수도 있겠지만, 까짓 거 그냥 닥치면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부딪쳐가보자는 생각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주위에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해 보면 되고, 정 안 되겠으면 전문업체를 부르면 되니까.

대부분의 일들이 다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겁이 나고, 온갖 걱정이 다 든다. 예전에는 겁부터 먼저 먹는 나를 꾸짖었었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겁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머리는 별거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마음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머리보다 마음의 힘이 더 세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려움보다 '해보고 싶다는 설렘'이 더 커졌을 때만이 실행할 힘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실행력이 한번, 두 번 쌓여가면서 앞으로 또 새로운 일들에 대해 부딪혀볼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이사하고 나서 그동안 뭔가 정신없이 바빴다. 이제야 조금 적응이 되어 차근차근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고요한 식탁에 혼자 앉아있는다. 내가 좋아하는 조명을 켜놓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 혼자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나는 너무나 좋다. 독립을 왜 이제야 한 걸까.

독립을 준비하며 '출퇴근 시간 아낀 걸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시간을 쓰자'고 다짐했었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게 되긴 했지만 사실 집안일하느라 시간이 그렇게 많이 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본가에서 출퇴근할 때보다는 내 시간이 많아졌으니 이제 또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시작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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