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자유와 평등의 기반이다.
- 조현준 <개인의 탄생> 중에서 -
자유롭고 평등하고 존중받는 삶을 살고 싶기에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은 내 인생의 필수 과업이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된 지금, 나는 경제적 독립을 이룬 상태일까?
어떤 작가분이 원룸에 사는 것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는 요지로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풀옵션 원룸에 산다는 것은 내 소유의 물건이라고 볼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살고 있는 공간도 당연히 내 것이 아니고, 풀옵션이라면 기본적인 가전, 가구들도 전부 다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계약기간만 끝나면 언제든 임대료 인상 통보를 받고 내쫓길 수도 있는 불안한 상태다. 그러니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으며 처음엔 공감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금세 뭔가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 집안에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고 해봐야 최대 몇백만 원 정도다. 300만 원짜리 최신형 냉장고를 사서 쓰고 있으면 경제적 독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반대로 30만 원짜리 중고 냉장고를 사서 쓰고 있으면 진정한 경제적 독립이 안된 걸까?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으면 경제적 독립을 한 거고, 국산 중고차를 타고 다니면 경제적 독립을 못한 걸까? 내 소유의 물건들이 얼마나 비싼지, 그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가지고 경제적 독립 여부를 판단하기엔 뭔가 좀 찜찜하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적 독립의 첫 번째 판단 기준은 "내가 내 경제력으로 나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놀고, 잘 쉬게 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번 소득(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이자 배당소득이든 뭐든 적법한 소득이면 상관없이)으로 나에게 적절히 균형 잡힌 식단을 먹일 수 있는지, 내가 잘 잘 수 있는 침실 공간, 침구류, 수면환경을 구비할 수 있는지, 나에게 적당한 문화생활과 취미생활을 즐길 여윳돈이 있는지, 잘 쉬게 하기 위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비록 풀옵션 원룸의 가전가구들과 공간이 내 '소유'는 아닐지 언정, 내 돈을 주고 빌려서 일정 기간 동안 내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 경제력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경제적 문제없이 살아냈다면, 일단 첫 번째 기준 충족이다.
경제적 독립의 두 번째 판단 기준은 "그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가?"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기준만으로 경제적 독립이라고 하기에 부족해 보이는 이유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아무래도 불안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본인 명의의 실물 자산과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A)과 실물 자산이나 금융자산이 전혀 없는 사람(B)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풀옵션 원룸에서 살면서 생활비나 씀씀이가 비슷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일상을 안정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느냐'에서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사고를 당했다던가, 해고를 당했다던가, 사기를 당했다던가 하는 큰 경제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보면, 아무래도 자산을 보유한 A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더 잘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독립을 위한 첫 번째 기준은 상대적으로 충족하기 쉽지만, 아무래도 두 번째 기준은 훨씬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린다. 첫 번째 조건 충족을 위해 필요한 돈보다 두 번째 조건 충족을 위한 돈이 (자산을 모아야 하기에) 월등히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첫 번째 조건 충족만으로도 진정한 독립을 위한 큰 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첫 시작이 가장 힘든 법이니까. 나는 이제 두 번째 기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기에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두 번째 조건을 충족한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졌더라도 '진정한'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진정한 독립이란 '경제적 독립'의 기반 위에 '정신적 독립'이루어져야 한다. 정신적 독립의 필요조건이 바로 경제적 독립이기 때문이다. 둘을 함께 추구해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경제적 독립도 밟아나가는 단계지만, 정신적 독립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정신적 독립은 답도 없고 기준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더 어려운 것 같다.)
누군가를 불행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이 내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도록 다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 이런 행동들을 많이 한다.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다. 부모님이든 형제자매든, 친구든 연인이든 엄밀한 의미에서 '나 자신'이 아닌 모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생각, 똑같은 감정, 똑같은 취향을 가진 타인은 아무도 없다. 정말 그 사람이 잘 되길 원한다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나 또한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하라는 데로, 사회가 하라는 데로만 살아온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혼자 결정을 내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정신적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데는 정말 오랜 기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어쩌면 평생 노력해야 하는 것일지도.. 끝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느낀다.
나는 자유를 얻고 싶어서 (물리적으로) 독립한 것 같다. 독립은 내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로 가기 위한 발판이었다. 내가 원하는 자유란 많이 회자되는 경제적 자유의 개념도 있지만 훨씬 더 넓은 의미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삶, 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삶, 독립적으로 경제적 정신적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삶을 나는 늘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