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장님이 처음 시합 나가자 했을 때, 나는 "저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했었고,
피아노 선생님이 어려운 곡을 주면서 연습해 보라고 했을 때, "이건 저한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라고 했었다.
왜 나는 그동안 항상 "저는 못할 것 같아요."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먼저 튀어나왔을까? 그 당시에는 어려워 보이는 일이긴 했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은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그동안 크고 작은 실패를 많이 해와서 실패의 고통에 무뎌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실패할까봐 무서운가 보다.
대학생 때 누군가 나에게 복수 전공을 해보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성적장학금도 타야 하고, 금융자격증 공부도 해야 하고, 과외도 해야 했기에 "나 복수전공하기는 힘들 것 같아."라고 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졸업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복수전공을 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다. 이 외에도 계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는 못할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로 내가 지금까지 인생에서 놓쳤던 기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분하고, 아쉽고, 안타깝고 복잡한 감정이 든다.
결국 첫 시합 나가서 우승도 했고, 처음엔 어려워 보였던 곡도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꽤 자연스럽게 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피아노는 (나무늘보 속도로) 정말 천천히 느리게 계속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예쁘게 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라? 이게.. 되네...?'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주변 분들의 도움이 컸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내가 시합 나가기엔 실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자신 없어하는데, 관장님은 "네 실력 정도면 충분해."라고 해주셨을 때,
처음엔 못할 것 같았던 연주곡을 몇 달에 걸쳐 연습한 걸 들으신 피아노 선생님이 "봐봐요. 할 수 있잖아요."라고 하셨을 때,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나만 뒤처지면 어쩌지, 걱정을 사서 하고 있는 내게 지도교수님께서 "너라면 잘할 거야."라고 해주셨을 때,
주변의 좋은 분들 덕분에 한번 도전해 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뭔가 찡하고 감동적이었는지 그분들의 그때 대사가 다 선명하게 기억난다. 전문가분들이라 몇 년간 보아온 내 모습으로 내가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파악하실 수 있으셨나 보다. 오히려 내가 못 믿었던 나를 믿어주신 분들이라 너무나 감사하다.
'한번 해볼게요.' 이 말을 요새 계속 되새긴다. 어려워 보이는 걸 누가 해보라 하거든 이 말이 자동적으로 먼저 튀어나올 수 있도록. 일단 한번 해보고 안되면 두 번, 세 번... 수십 번, 수백 번 그냥 계속해 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될 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어느 순간 이젠 하기 싫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다가 하기 싫어진다면 그때 안 해도 된다. 저절로 되면 돼서 좋고, 안되면 그래도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다. 실패했든 성공했든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