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후 새로 생긴 취미들 5화 : 피아노 치기
피아노는 원래 하던 취미긴 하지만 독립 후 약간 바뀐 점들이 있어서 써보고자 한다. 처음에는 집에 전자피아노를 두고 방진패드와 헤드셋을 사용해서 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서 하기에는 집중력이 좀 떨어질 것도 같고, 아무래도 방음이 완벽히 되기도 어려울 것 같아 그냥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집 근처에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피아노 학원은 대부분 거의 월 20만 원 해서 부담이 되던 차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동네 피아노 학원을 찾게 되었다. 딱 어렸을 때 다녔던 그런 피아노 학원이라 뭔가 정감이 갔다. 피아노를 빨리 다시 치지 않으면 금방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사 후 며칠 안 돼서 바로 학원부터 등록했다.
그전에 맨 처음 다녔던 학원은 실용음악 학원이었다. 그냥 본가 근처에 있는 학원이라 등록했었다. 실용음악 학원이라 피아노 선생님도 입시생들 위주로 가르치는 데다 보니, 나 같은 성인 초보를 가르쳐본 적이 거의 없으신듯했다. 초등학교 때 겨우 체르니 100 조금 치다 그만둔 나로서는 처음에 모든 것이 다 어렵게 느껴졌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거기다 설명하고 시범 연주 보여줘도 계속 안 되는 나를 보는 선생님의 '이게 왜 안돼?' 하는 것 같은 눈빛이란... 그리고 아무리 방음 시설을 해놨다 해도, 실용음악 학원에는 보컬, 드럼, 기타 소리가 다 들려서 피아노에 집중하기가 좀 힘들었다.
여기는 골목에 있는 작은 동네 피아노 학원이다 보니 아이들이 좀 시끄럽다는 것 빼고는 다 좋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을 많이 가르쳐보셔서 그런지 선생님도 더 쉽게 잘 가르쳐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떨 땐 진짜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 외에 성인은 한 세분 정도 더 계시는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다 초등학생들이다. 처음부터 이런 동네 피아노 학원 다니면 좋았을 것 같다.
독립하기 전에는 주 1회 1시간 레슨 시간 빼고 주 3일 주 8~9시간을 연습했었다. 독립 후에는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매일 학원에 간다. 하루에 2시간 반 정도씩 주 5일이니까 대략 주 12~13시간 정도 연습하고 있다. 내 피아노 실력은 여전히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다만 피아노를 꾸준히 치는 시간이 늘어나니 피아노와 더 친해진 느낌이 든다. 또 잘 안되더라도 '내일 더 해보면 되지' 하는 약간의 여유도 생겼다.
선생님은 혼자서 초등학생들을 다 케어해야 하니 정신이 없으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끝나고 집에 가고 나면 학원 뒷정리를 얼추 하신 다음에 맨 마지막에 나를 봐주신다. 전에 다녔던 학원처럼 주 1회 1시간 정해 놓고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매일 하루 10~20분 정도씩 봐주신다. 아이들이 대부분 집에 가고 난 이후니까 선생님도 나도 이 시간이 편하다.
성인이 취미로 배우는 사람 중에 나처럼 매일 나오는 사람이 없는가 보다. 이 학원에 몇 달 다니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인가 선생님께서 학원 열쇠를 주면서 혼자 더 연습하고 가라고 하셨다. 이제는 늘 맨 마지막에 내 레슨을 봐주시고 나서 선생님이 먼저 퇴근하신다. 그 후 아무도 없는 조용한 학원에서 나 혼자 더 연습한다. 전에 체육관 다닐 때도 관장님께서 체육관 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셨었다. 원래 체육관 문을 닫는 일요일에 혼자 문 열고 들어가서 그 넓은 체육관에서 혼자 운동하고 오기도 했다. 내가 요청한 적이 없는데 관장님도 피아노 선생님도 먼저 이렇게 나 혼자 연습할 수 있게 해 주시다니.. 내 얼굴에 '꾸준히 오래 할 사람'이라고 쓰여있나..? 아무튼 혼자 조용하게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감사한 일이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학원에서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만 울려 퍼질 때의 묘한 분위기가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나는 피아니스트가 된 것 마냥 스스로 심취해서 연주해 보기도 한다.(아무도 없으니 부끄러움은 저 멀리) 마음은 피아노를 더 치고 싶다만, 밤 10시쯤 되면 졸리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보통 10시 전후로 연습을 마친다. 커튼을 치고, 불을 다 끄고, 문을 잠그고, 집으로 간다. 학원에서 집까지 도보 5분 정도 거린데 피곤해서 비몽사몽 하면서 걸어간다. 집 가서 간단히 정리하고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나의 평일 일상 루틴이 마무리된다.
피아노 배운 지 대략 2년 반 정도, 이제는 잘 안된다고 스트레스받기보다 그냥 매일 피아노 소리를 듣고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좋아졌다. 혼자 피아노 연습하면서 내가 피아노 치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멜로디와 선율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냥 습관처럼 매일 치고 있다. 사실 하루, 이틀 안 나가도 괜찮긴 한데, 나는 그냥 습관처럼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친다. 하루만 안쳐도 그다음 날에 잘 안 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일 없으면 평일엔 매일 나간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노래처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연주하려기 보다 연주에 맞는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느끼면서 쳐야 한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에 연연하기보다 그냥 매일 연습하고 한 곡 한 곡 완성해 나가는 재미를 이제야 조금 느끼고 있는 중이다.
텅 빈 학원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혼자 상상을 한다. 내년엔 어떻게 치고 있을까, 내후년엔 어떻게 치고 있을까,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피아노 치고 있을 거야, 같은 상상들. 얼마 전에 친구가 유명한 클래식 곡을 쳐줄 수 있느냐 하길래, '나 그러려면 최소 3년은 더 걸릴 듯?'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마음속으로는 진짜 3년 뒤엔 그만큼 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에 혼자 배시시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