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후 새로 생긴 취미들 4화 : 반려식물 키우기
혼자 살게 되면 식물들을 키우며 베란다를 정원처럼 가꾸는 게 내 로망이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베란다가 있는 걸 보고 '여기 식물 키우기 딱이다!'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사 후 정리가 얼추 되었을 때, 나의 첫 반려식물들을 데려오기 위해 꽃시장에 갔다. 딱히 어떤 종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갔다. 단지 선인장이나 다육이들 말고 초록초록한 얘들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초보는 선인장 같은 키우기 쉬운 식물을 키워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남들이 하라는 거 하기 싫은 청개구리이기 때문이다. 식집사는 처음이지만 키우면서 배우면 되지 뭐.
마치 식물원 같은 꽃시장에서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것 같은 식물들을 보며 너무 신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종마다 하나씩 다 구매하고 싶었다. 잔뜩 신이 난 예비 초보 식집사는 간신히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초록초록한 화분 3개만 구입했다. 아파트 베란다만큼 큰 베란다도 아니고, 원룸 월세이기 때문에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일단 딱 3개만 잘 키워보기로 했다. 이 3개를 몇 개월 동안 별 탈 없이 잘 키워낸다면 나중에 더 데려오겠다는 꿈을 꾸면서.
화분 사러 가기 전부터 이미 반려식물들의 이름을 정해두었다. 첫째는 초롱이, 둘째는 다롱이, 셋째는 해롱이. 순서는 꽃시장을 둘러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애를 첫째(오렌지 자스민), 그다음이 둘째(꽃치자), 마지막을 셋째(로즈마리)로 정했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화분에 이름표도 만들어 붙여주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온 기념으로 물 샤워도 시켜주면서 하나하나 이름도 불러보았다. 만나서 반갑다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마음을 담아서. 식물에 무슨 이름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름 붙여주고 나니 정말 더 정이 가는 것 같다. 반려동물 이름 같기도 하고, 여자아이들 이름 같기도 한 초롱이, 다롱이, 해롱이. 나는 '우리 롱이들'이라고 부른다.
얘네들을 데려오고 난 뒤부터 바로 식물 공부도 시작했다.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식물 공부라니..!) 특히 우리 롱이들 종인 오렌지 자스민, 꽃치자, 로즈마리에 대해서는 더 자세하게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반려 식물 카페에 가입해서 나와 같은 종을 키우는 분들의 식물들도 보면서 나름 공부하고 있다. 초보 식집사네 집에 와서 얘네들이 고생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잘 자라주고 있다. 인터넷 검색해서 가장 좋다는 비료와 영양제도 주고, 매일 하루에 1~2번씩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물 샤워를 듬뿍 시켜준다. 베란다에서 아침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쪽에 식물 선반을 두고 그 위에 화분들을 두었다. 화분 방향도 매일매일 바꿔주고 있다. 통풍이 잘 되라고 방충망만 두고 베란다 문도 늘 열어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가서 우리 롱이들 보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초롱이, 다롱이, 해롱이 순서대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본다. 잎에 균이 생기거나 상한 데가 있는지 없는지, 벌레가 생기진 않았는지 요리조리 살펴보며 꼼꼼히 확인한다.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분무기로 잎이랑 줄기 쪽 흙에 물을 뿌려준다. 마치 얘들이 시원해하는 것 같은 게 보는 나까지 시원해진다. 물을 뿌려주면 상큼한 풀냄새 같은 게 올라온다. 겨우 화분 3개뿐인데 마치 숲 속에 있는듯한 느낌이다. 특히 셋째 해롱이(로즈마리)는 평소에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물만 뿌려주면 향긋한 허브향이 올라와 기분이 좋아진다.
내 주변엔 반려식물보다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귀차니즘이 심하고 게으른 나에게는 반려동물보다 반려식물이 딱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병원비에 간식비, 사료비도 많이 들고, 매일 놀아주고 산책시켜 주고 씻겨 주고, 어지른 것들이나 배변 같은 걸 치워주고 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강아지도 고양이도 다 귀엽고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직접 키우는 것은 별개다. 특히 반려동물이 외롭지 않도록 놀아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러니 이런 나에겐 반려동물보다 반려식물이 딱이다.
식물은 마치 나와 비슷하다. 과도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건 싫지만, 은근하게 가끔 작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그럼에도 무심한 듯 가만히 내버려 둬야 혼자 잘 자란다는 점에서. 그래서 식물에 더 애정이 가나 싶기도 하다. 무심한 듯 놓아두고 가끔씩 물만 주는데도 아주 보란 듯이 쑥쑥 잘 자라는 게 참 기특하다. 매일 보는데도 어느 순간 보면 갑자기 빛깔이 영롱한 작은 연두색 새잎들이 나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볼 때마다 점점 잎이 무성해지고 있는데 분갈이를 생각보다 일찍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잘 자라는 건 아마 초봄에 데려와서 날씨가 좋은 덕이 클 것이다. 둘째 다롱이(꽃치자)는 벌써 꽃을 4개나 피웠다가 졌다. 다롱이는 하얀 장미 같은 예쁜 꽃을 피우고 한 이삼일 되면 금방 갈색으로 변해져 버리는 게 참 아쉽다. (원래 꽃치자는 꽃이 금방 진다고 한다.) 다롱이를 데려온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꽃향기가 너무너무 좋다는 것이다. 겨우 며칠이지만 피어있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꽃향기를 맡는 게 너무 행복했다. 향이 정말 너무 좋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향기를 맡는데 질리지가 않았다.
한 번은 통풍 잘 되라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출근을 했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엄청 많이 부는 날이었다. 일하는 내내 롱이들 걱정이 계속 들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혹시 얘네들이 식물 선반에서 떨어지진 않았는지.. 하루 종일 걱정이 들어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서 베란다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얘들 다 멀쩡히 있어서 그제야 안도했다. 이제 곧 여름이 오면 또 벌써 걱정이다. 날씨가 너무 더우면 병충해가 생기기 더 쉽단다. 그리고 겨울에도 걱정이다. 추위를 잘 타는 얘들이라 겨울에는 실내에 들여놓고 키워야 한단다. 그때는 방안에 들여놓고 식물등을 살 예정이다. 사람처럼 너무 더운 여름과 너무 추운 겨울을 힘들어하는 식물들이라 벌써부터 바짝 긴장 중이다.
아무래도 다롱이(꽃치자)가 꽃을 피우고 질 때라 더 관심과 애정이 많이 간다. 다롱이는 꽃봉오리가 많은 걸로 데려왔는데 한 달도 안 돼서 향긋하고 예쁜 하얀 꽃을 4개 피워서 너무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 후에 나머지 꽃봉오리들은 피우지도 못하고 툭툭 떨어져 버렸다. 초보 식집사라 내 잘못인가 싶어 자책도 되고 마음도 아팠다. 그래서 검색해 보면서 원인을 찾고자 했다. 검색으로 찾은 대부분의 답변들은 비슷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또는 물을 너무 안 줘서 라든가, 통풍이 잘 안 돼서 정도의 답변 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게 마치 어디 아파서 병원 가면 의사가 꼭 '요새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나 봐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병원 갈 때마다 왜 아픈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던 그때와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다.
최근에 <아무튼, 식물>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저자는 반려식물을 많이 오랫동안 키워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자가 세심하게 관리해 주었음에도 개중에 꼭 일찍 죽어버리는 식물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롱이들을 보면서 늘 다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잘 보살펴 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힘을 못 쓰고 무너져버린다면, 그저 조금만 아파하고 보내주어야겠다고.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저릿하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면 그다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일테니. 그래도 역시 아프지 않고 잘 자라면 좋겠다.
왼쪽부터 초롱이, 다롱이, 해롱이. 건강하게 자라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