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점심 식사 때) 나 빼고 다 결혼했거나 또는 결혼 생각 있는 사람들이어서 결국 마지막엔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기혼인 사람 모두가 공감한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놀랍지도 않게) '내가 늙고 아프면 간호해 줄 사람은 가족뿐이니까'였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 + 아이는 낳아야 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꼽는 이유 3가지 중 하나다. 그 3가지는 첫째, 아이와 배우자로 이루어진 가족이 주는 행복감, 안정감이 크다. 둘째, 내가 늙고 아플 때 가족들만이 나를 돌봐줄 것이다. 셋째, 남들은 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나만 가족이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이다. 이 3가지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그들은 이미 결혼과 출산을 했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맞지만, 그런 본인의 생각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려고 한다는 게 문제다.
내가 늙거나 병들거나 아플 때 나를 간호해 줄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가 늙고 아프면 나를 간호해 줄 사람>이라는 제목을 보고 대부분 바로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왜 꼭 가족만이 나를 간호를 해줘야 하는가? 내가 만약 결혼하고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아도 내가 늙고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 가족이 나를 간병해 주는 것은 싫다. 간병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아픈 나를 보며 정신적으로도 힘들 것이고, 또 나의 간병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되어 본인의 인생을 돌볼 에너지가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도 위와 똑같은 이유에서 싫다. 간병하는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가족을 간병하는 일'로만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간병을 받는 쪽은 미안해하고, 간병을 하는 쪽은 힘들고 지친다. 서로에게 좋지 않다.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차라리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간병 서비스를 받는 게 낫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최소한 받은 만큼은 열심히 해주려고 할 것이고, 돈을 내는 것이니 미안해하는 대신 (돈을 내지만 그래도 궂은일을 해주는 것이니) 고마워하면 된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과 간병을 받고 싶은 사람 양쪽의 니즈가 딱 들어맞으니 누구도 손해 보는 것 없이 서로에게 좋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 내 간병비와 보험은 스스로 넉넉하게 모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늙고 아플 때 가족이 나를 간호해 줄 것이라는 혜택은 대부분 남성들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 평균적으로 여성들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더 길고, 아직까지 한국은 대부분 남편이 연상이고 아내가 연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다. 결혼은 대부분 두사람의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경우에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격차는 있을 수 있지만, 재벌이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크게 희생하거나 손해를 보게 되는 관계는 건강하지도 않고 지속되기도 어렵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의 돌봄은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까진 아마 돈만 있으면 간병인 고용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 다음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땐 아마 돈이 있어도 간병인을 고용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노인들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간병인이 되어야 할 텐데, 다들 알다시피 젊은 인구보다 노인인구가 훨씬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초등학생은 한 반에 20명도 안된다고 한다. 이 숫자가 늘어나기는커녕 유지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몇십 년 뒤엔 아마 노인이 노인을 서로서로 돌봐주는 공동체들이 많아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다들 당연히 얘기하는 '가족의 간병'이 그때쯤엔 "옛날에는 가족들에게(배우자에게 자녀에게) 간병을 받았었다고?!" 하면서 놀랄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