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다. 내가 뭐 해준 것도 없는데 먼저 무언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꼭 부탁해야 할 일이 있어 동기 언니에게 그냥 지나가는 말로 혹시 이것 좀 친구분께 부탁해 줄 수 있냐 물었다. 내 혼자 힘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꺼낸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흔쾌히 친구한테 물어보겠다 했고, 그 친구분도 나를 도와주겠다 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언니와 언니 친구분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특히나 그 언니 친구분은 실제로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이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내가 부탁드린 일은 간단한 서류 몇 가지를 작성해서 제출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언니 친구분께 이렇게 저렇게 작성해서 언제까지만 메일로 보내주시면 된다고 감사하다고 카톡을 드렸다.
며칠 뒤, 동기 언니와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그분이 내가 카톡 하나 틱 보내서 이거 해달라 하는 게 기분이 나쁘셨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소한 전화 한 통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 짧은 생각으로는 그분이 업무가 바빠 보이셔서 최대한 시간 뺏지 않고 방해 안 드리려고 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했던 것인데 그게 예의 없이 보였던 것이다. 언니에게도 그분에게도 너무 죄송했다. 그다음 날 그분께 전화를 드려 제가 너무 예의 없게 행동했던 것 같아 기분 상하셨으면 너무 죄송하다, 그리고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저를 도와주신 것 너무 감사드린다 등등 땀을 뻘뻘 흘리며 횡설수설했다. 한동안 가만히 내 횡설수설하는 얘길 듣고 계시다가 그분이 말씀하셨다.
"죄송하단 말보단 감사하단 말이 더 듣기 좋네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의 지인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겠노라 했던 거라고. 그래도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뭐 힘든 일이나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핸드폰을 붙잡고 연신 고개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잠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움받기 싫어했으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음을.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산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미안한 사람들이 많음을. 그리고 또 그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는 걸. 우리는 늘 그렇다. 미안한 사람들에게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대학교 때 늘 아르바이트와 과외하면서 바쁘게 지내던 나를 보며 엄마는 늘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미안하다는 엄마에게 나는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 후 힘든 시기를 거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잘해주어서 고맙다"라고. 나는 내가 일이 잘 풀려서 좋은 것보다, 고맙다며 웃어주는 엄마를 보는 게 더 좋았다.
그동안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하단 말이 더 먼저 나오곤 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미안해지게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서로의 마음을 따뜻해지게 하는 힘이 있다. 이젠 미안하단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