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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ul 25. 2020

우리 이제 미안하다 말고 고맙다 말해요.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다. 내가 뭐 해준 것도 없는데 먼저 무언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꼭 부탁해야 할 일이 있어 동기 언니에게 그냥 지나가는 말로 혹시 이것 좀 친구분께 부탁해 줄 수 있냐 물었다. 내 혼자 힘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꺼낸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흔쾌히 친구한테 물어보겠다 했고, 그 친구분도 나를 도와주겠다 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언니와 언니 친구분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특히나 그 언니 친구분은 실제로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이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내가 부탁드린 일은 간단한 서류 몇 가지를 작성해서 제출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언니 친구분께 이렇게 저렇게 작성해서 언제까지만 메일로 보내주시면 된다고 감사하다고 카톡을 드렸다.


  며칠 뒤, 동기 언니와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그분이 내가 카톡 하나 틱 보내서 이거 해달라 하는 게 기분이 나쁘셨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소한 전화 한 통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 짧은 생각으로는 그분이 업무가 바빠 보이셔서 최대한 시간 뺏지 않고 방해 안 드리려고 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했던 것인데 그게 예의 없이 보였던 것이다. 언니에게도 그분에게도 너무 죄송했다. 그다음 날 그분께 전화를 드려 제가 너무 예의 없게 행동했던 것 같아 기분 상하셨으면 너무 죄송하다, 그리고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저를 도와주신 것 너무 감사드린다 등등 땀을 뻘뻘 흘리며 횡설수설했다. 한동안 가만히 내 횡설수설하는 얘길 듣고 계시다가 그분이 말씀하셨다. 


  "죄송하단 말보단 감사하단 말이 더 듣기 좋네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의 지인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겠노라 했던 거라고. 그래도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뭐 힘든 일이나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핸드폰을 붙잡고 연신 고개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잠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움받기 싫어했으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음을.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산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미안한 사람들이 많음을. 그리고 또 그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는 걸. 우리는 늘 그렇다. 미안한 사람들에게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대학교 때 늘 아르바이트와 과외하면서 바쁘게 지내던 나를 보며 엄마는 늘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미안하다는 엄마에게 나는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 후 힘든 시기를 거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잘해주어서 고맙다"라고. 나는 내가 일이 잘 풀려서 좋은 것보다, 고맙다며 웃어주는 엄마를 보는 게 더 좋았다.


   얼마 전부터 별 거 아닌 일에 항상 미안해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일찍 출발했음에도 차가 너무 막혀서 조금 늦은 걸로 연신 미안하다 하고, 항상 일찍 자는 내가 자기 만나느라 늦게 자게 해서 미안하다 하고, 맛집이나 데이트 코스를 알아보고 오는 내게 자기가 먼저 알아봐 오지 못해 미안하다 하는 사람. 자꾸 그렇게 미안해하면 화낼 거라 하니, 그제야 웃으면서 고맙다하며 꼬옥 안아주는 사람. 


  그동안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하단 말이 더 먼저 나오곤 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미안해지게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서로의 마음을 따뜻해지게 하는 힘이 있다. 이젠 미안하단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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