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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Nov 07. 2020

억지로 인연을 만들지 않을래요.

  길고 힘들었던 취준 시기를 지나, 올해 들어서야 조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있던 중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이제는 ‘취업’ 다음 관문인 ‘결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결혼 다음도 뻔하다.) 도대체 결혼 적령기라는 게 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삼십 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에게 결혼은 빠질 수 없는 얘기인가 보다.


  어느 정도 연애하고, 서로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결혼하는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환상이 깨진 게 몇 살 때쯤부터 인지 모르겠다. 모든 게 노력만으로 안 되듯이, 결혼도 사랑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보다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들이 맞아야 했다. 정말 순전히 궁금해서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을 왜 하냐’고 물었었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 될 거 같아서’, ‘남들이 다 하니까’, ‘결혼을 해야 될 나이니까’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남들이 다 대학을 가니까 나도 대학에 갔었다. 취업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들 다 하니까 취업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결혼까지 그런 생각으로, ‘남들이 다 하니까’란 이유로 해야 한다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몰랐었는데 주변에 생각보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지인들이 많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는, 사회가 하라는 데로 정석 루트를 착실히 밟아온 그들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결혼’이라는 것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나서 결혼하는 게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뭐든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렇게 만나 결혼 한 사람들은 참 운이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도 결혼까지 할 인연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생각이 딱히 없던 나였지만, 나 또한 사람인지라 주변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더 늦으면 정말 결혼하기 힘들어진다는 둥, 더 늦기 전에 빨리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라는 둥.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나도 약간의 조급함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나중에 크게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외로움, 불안함, 조급함.. 그것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연을 만드려고 억지스러운 노력을 했던 것이. 지인들에게 소개팅을 받기도 하고, 소개팅 어플을 써보기도 하고, 미팅 모임 같은데도 나가면서 그렇게 나는 점점 '소개팅 봇'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큰 외로움과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만났던 사람들과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연인이 되었던 적도 몇 번 있긴 했다.) 남들 다 하니까(아.. 여기서도 또 '남들 다 하니까'란 이유라니..)하긴 했지만, 공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만남에서는 각자 만나기 전 상대의 나이, 직업, 외모(사진)를 보고 거르는 필수 코스를 반. 드. 시. 거쳐야 했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학벌, 직업, 재산, 외모 등을 가지고 아주 구체적인 등급을 매긴다고 한다. 소개팅 어플이나 지인 소개팅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원하는 '조건'으로 '사전 평가'를 마쳐야만 비로소 첫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 사람의 경험과 생각과 노력에는 점수나 등급을 매길 수가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학벌, 직업, 재산이라는 결과만 가지고 점수를 매겨서 만난 사람은 그 점수만큼의 가치만 있는 사람인 걸까. 조건 필터에서 걸러진 사람이, 조건을 전혀 모른 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나보기도 전에 조건을 먼저 보고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 싫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도 싫었고, 상대방이 그렇게 하는 것도 싫었다. 조건을 아예 보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에게 점수 매기고 등급 매겨가면서까지, 나 또한 그들에게 점수 매김 당하면서까지, 억지로 만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렇게 억지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새로운 인연을 만날 일이 아예 없다 하더라도, 그 또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결혼정보회사뿐 아니라 각종 소개팅 어플에 다 가입하고 거의 매주 새로운 상대를 만나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던 지인이 있더랬다. 그러다 그 사람이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 상대는 그 엄청난 노력의 성과(?)로 만난 사람이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내던 초등학교 동창이 더랬다.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 또 그 인연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해선 분명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 혼자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억지 노력 대신에 나는 나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했다. 혼자 산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혼자서만 보낼 수도 없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배우자와 같이 보낼 수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은 혼자 있는 대로 즐기면서 보낼 줄 알고, 또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된다면 그 누군가에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된다. 혼자 있을 때도 행복하고, 함께 있을 때도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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