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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Dec 13. 2020

하고 싶은 거 생기면, 그냥 하자.

  최근에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 아무래도 내가 대학원을 나왔기에 나의 경험과 생각을 듣고 싶어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놨을 것이다. 함께 고민을 많이 나누는 친구이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단지 내가 대학원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에게 대학원을 가는 것이 좋겠다, 안 가는 것이 좋겠다 하는 단편적인 얘기를 해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해서 좋았던 게 타인에겐 안 좋을 수도 있고, 내가 해서 안 좋았던 게 타인에겐 좋을 수도 있으니까. 친구는 대학원에 가고 싶긴 하지만 만만찮은 학비와 학위 취득 후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원에 가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 들인 시간, 노력, 비용 대비 얻는 게 없다고 느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얻는다.’는 것의 기준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만을 가지고 보았을 때뿐이었다. 석사 학위로 직장에서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다거나 연봉이 높아진다거나 하는 따위의 것들 말이다.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한 대학원 진학(대학과 전공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은 거의 쓸모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과정 자체를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는 시간으로 경험해보기 위함이라면 또 가볼 만한 곳인 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시간 낭비한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항상 ‘결과’만을 묻는 현실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면 쓸모없는 일이라고, 시간 낭비한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왔다. 오래 연애했다고 하면 꼭 결혼을 해야만 그 연애기간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학벌이 높으면 꼭 그에 맞는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시험 준비를 오래 했으면 꼭 시험에 합격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 결과가 없다면 그 시간들이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여러 가지 경험 중에 하나 일뿐인데. 당시에는 길게 느껴졌던 몇 년 정도의 시간은 몇십 년의 인생에서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인데.


  겉으로 보기엔 석사 학위로 내가 얻은 것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석사학위로 연봉이 높아진 것도 아니고, 주변에 석사를 했다고 굳이 말을 하지도 않는다. 특히 그 당시엔 취업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석사학위증은 오히려 나를 더 스스로 갉아먹게 만들었더랬다. 그럼 내가 대학원을 다닌 2년이란 시간을 통째로 날린 꼴인가 생각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다시 해보라 하면 다시는 못할 만큼 힘들었고 또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의 성취감도 느꼈었기 때문이다. 2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다. 20대라는 10년이 이렇게 후딱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데, 30대, 40대는 얼마나 더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 당시엔 시간 낭비했다고 자책했었지만, 돌이켜 보면 시간 낭비한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또 생각해보면 뭔가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들은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그냥 그 자체가 너무 즐겁고 재밌어서 할 때가 가장 좋았다. 건강과 예쁜 몸매를 얻기 위해 운동을 했더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재밌게 운동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했더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재밌게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걸 왜 하냐고 네가 그걸해서 얻은 게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나는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재밌으니까 하는 거라고. 그거면 됐다고. 그러니까 무언가를 할까 말까 하고 고민이 들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저 “해보고 싶냐 아니냐” 딱 이 기준만 놓고 판단해보면 어떨까.



하고 싶은 거 생기면, 그냥 한번 해보자. 까짓 거.

 

   하고 싶은 게 생긴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 30대 때는 그저 바로 코 앞에 해야 할 일들에 치여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조차 생각날 겨를도 없이 그냥저냥 살아가기 급급한 시기다. 그렇게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었다. 돈이 없어서, 두려워서,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포기했던 일들. 그냥 한 번 해본다고 큰일 나는 일도 아니었다.

  오래 고민할수록 오히려 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가 아닌가.” 그것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하고 싶다면 그냥 한번 해 보자. 까짓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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