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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an 10. 2021

내 새해 목표는 작년보다 더 신나게 노는 거야.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오랜 습관이 되어있다. 그래도 매년 12월 31일은 의례적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TV에서 카운트 다운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케이크를 불며,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 카톡을 돌리곤 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젠 카운트다운을 보지 않고 평소처럼 일찍 잠자리에 든다. 2020년 12월 31일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처럼 밤 10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31일이라는 날짜에 의미부여만 하지 않으면 그냥 똑같은 하루일 뿐이었다. 새해마다 단톡 방에나 갠톡으로 새해 인사를 보내는 것 또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계속 이어갈 인연이면 굳이 새해 인사 카톡을 하지 않아도 평소에도 연락하고 지내니까.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새해니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날 말고, “나에게 의미 있는 날”에만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어찌 됐든 한 해가 지나갔다고 하니 2020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핸드폰 카메라 앨범을 보니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하나씩 기억이 떠올랐다. 1월에는 연수를 받으며 노무사 동기들을 만났고, 2월부터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고, 꼬박꼬박 받는 월급으로 부모님 환갑도 잘 챙겨드릴 수 있었다. 재작년 남미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서울에서 다시 만났고, 그동안 바쁘다고 못 만났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많이 만났다. 여러 가지 모임도 꾸준히 나갔고, 혼자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오랫동안 장롱면허였는데, 작년부터 운전 연습한답시고 여기저기 많이 드라이브를 다녔다.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시작할 엄두를 못 냈던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모임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코로나 때문에 이것저것 제약이 많았던 것치곤 꽤 알차게 보낸 한 해인 것 같다.




  12월에 연말 인사, 1월에 새해 인사 이후로 의례적으로 하는 말들로 사람들은 새해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 ‘새해 목표? 난 그런 거 없는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어가는 걸로 20대를 전부 보내고 나니, 나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싫어졌다. 목표를 향해 온 힘을 쏟아 달려가는 것에 지쳤다. 그 목표를 이뤘을 때도, 이루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짧은 성취감 또는 허탈함 뿐이었다. 다이어리에 새해 목표를 매년 쓰기도 했었는데 그것조차도 이젠 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문득문득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나는 왜 사는 건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하는 생각들이 점점 커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점점 캄캄한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목표가 필요하긴 한 것 같다. 너무 깊숙한 아래까지 내려가버려서 다시 올라올 길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다만 그게 꼭 눈에 보이는 목표일 필요는 없었다. 내가 목표를 세우기 싫어진 게 그것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새해 목표’라고 하면 브런치 대상 수상, 자격증 취득, 대회 수상 등등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 만이 목표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목표는 날 위한 거라기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새해 목표가 떠올랐다.




  내 새해 목표는 나를 신나게 해 줄 일들을 찾고, 내 소중한 시간을 그런 일들을 하는 데 쓰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올해 한 새해 인사도 그거였다. '2021년에는 행복한 일만 있길 바란다'는 말도 안 되는 말보다, '2021년에는 더 신나게 더 재밌게 놀자'라는 현실적인 말로.

 

  “작년보다 더 신나게 놀기”라는 새해 목표를 잡고 나니,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피아노 꾸준히 하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운동 열심히 하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작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글을 더 많이 쓰기, 새로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과감하게 시작하기 등이다. 이런 일들을 하며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다면 물론 뿌듯하겠지만, 결과가 없어도 괜찮다. 요새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과정’은 길고 ‘결과’는 찰나니까. 과정이 즐거우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더 오랜 시간 행복할 수 있다.    


  2022년이 되어 2021년을 되돌아볼 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올 한 해도 정말 재밌게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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