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검열 중단하기
대부분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따돌림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는다. 본인의 언행이 어땠는지 매 순간 검열하며 필요 이상으로 본인의 행동에 주의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 생활의 최우선 순위는 업무가 아닌 ‘회사 사람들의 기분’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표정 변화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대화 중 상대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일그러지면 가슴이 빠르게 뛰면서 끝없는 고민을 한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이 질문의 답은 없을 수도, 너무 많을 수도 있다. 딱히 미워할 이유가 없더라도 만들려면 끝도 없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당신의 언행에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따돌리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당신과 잘 이야기해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는 뒤에서 무슨 욕을 하더라도 사회생활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당신과 잘 지내려 노력할 것이다.
내 사례를 예로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 때문에 자살하고 싶다 했던 디자이너가 있었다. 1년 이상 같이 일하면서 겉으로는 친했지만 대충 내게 뭔가 있다는 것은 예상했다. 전혀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먼저 마음이 풀렸을 때 말해주기를 기다리며 잘 지내려 몹시 노력했다. 결국 이런 노력에도 그녀에게 직접 듣기 전, 다른 사람을 통해 얘기를 듣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죽고 싶었다는 것도 충격이고,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그 말을 전달한 사람과 디자이너와 대면하여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 말을 한 이유를 물어보니 본인은 디자이너인데 내가 자꾸 마케팅에 대해 의견을 물은 것이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자기뿐만 아니라 발주 관리 담당자도 같이 스트레스받았다며 의견을 뒷받침했다. 기획서를 가져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가끔 점심시간에 스몰 토크로 했던 말에 이 정도로 스트레스받았을 줄 몰랐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죽고 싶었을 리는 없어 다른 이유를 묻자, 내가 너무 내 업무만 우선시했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보다 더 이해가지 않았다. 그동안 디자이너가 나를 싫어하는 게 느껴졌고, 업무가 버거워 보여 간단한 디자인은 내가 다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전문적으로 디자인 역량이 필요한 부분만 기획서에 디자인 레퍼런스까지 첨부하여 정중히 요청했었다. 오히려 그녀와 친한 팀장이 기획서도 없이 구두로 업무 요청한 것은 수도 없이 봤다.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본인의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이 바람을 펴서 헤어졌고, 그래서 본인은 피해자인데 그 남자의 새 여자친구와 친구들이 인스타 DM으로 계속 본인한테 욕을 보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기에 팀장도 자꾸 이상하게 일을 주고, 대표도 이상해서 본인의 스트레스가 최대치였다고 한다.
나는 왜 갑자기 본인 사생활 얘기를 꺼내는지 이해가 안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 내 앞에서 빠른 속도로
"님이 저한테 잘못한 거 20% 정도 되는데요. 그냥 스트레스받고 답답해서 님이 술자리에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어요. 죄송해요"라고 내뱉듯 말하는 것이다.
죄송하다며 황급히 마무리 짓는 그녀의 말에 그간 스스로 행동, 말투 하나하나 검열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그토록 고민하고 찾으려 했던 내가 잘못한 점, 왕따 당하는 이유는 사실상 없었다. 가해자 본인의 사생활 문제 등 여러 이유로 힘들어서 그냥 내 욕으로 스트레스 풀었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혹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당신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신에게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사내 괴롭힘으로 풀지 않는다. 직접 피드백받지 않는 이상, 자기 검열은 시간 낭비다.
후에 따돌림에 가담한 생산/발주관리 담당자에게도 나에 대한 불만을 물어보았다. 자꾸 재고를 물어본 것이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마케터가 재고 담당자에게 재고 묻는 것이 잘못인가? 백번 양보해서 '자꾸' 묻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였다면 솔직하게 얘기하고 함께 재고 시스템을 만드는 등 업무적으로 해결책을 찾았어야 했다. 나에게 '재고 없으니까 대표한테 다른 일 달라고 해보세요.'라며 무시한 것은 엄연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결론은 왕따 시키는, 왕따 당하는 제대로 된 이유는 없다. '그냥'이다. 그러니 당신도 이제 소용없는 자기 검열을 끝내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왜 이 회사를 다닐까?'
답 없는 자기 검열은 멈추고 이 질문에 포커스를 맞췄더니 왕따 시키는 그들이 ‘우물 안 개구리’로 보였다. 애초에 우스워지니 왕따 당하는 것에 대한 타격감과 스트레스가 급격히 줄었다. 이 경험은 후편에 이어서 작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