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의 로망이 있으신가요.
아주 어릴 적에는 '결혼'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를 환상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건 아주 오래 전 얘기다. 아마도 중2병이 걸려있던 그런 무렵쯤 정도.
반면에 성인이 되고나서 몇 번의 연애를 거치곤 어느샌가 내 머릿 속에 결혼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다. 일부러 머릿 속 생각을 없애려 손사레를 친 것도 아닌데 그냥 환상이라 불리우는 그 추상적 느낌이 자연스레 없어져버린 것 같다.
즉, 다시말해 현재 내 결혼도 환상으로 성사되진 않았다. 그냥 결혼 전이나 후나 별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뜬금없는 소리인데 그래서 결혼식날 눈물이 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암튼, 결혼 후에도 같이 저녁을 먹고 시덥지않은 얘기로 시시덕거리다 "잘자-." 하고 잠에 드는 일. 그와 별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결혼 한 달째인 어제도 오늘도 그랬다.
결혼식이 다가오던 시간들에 우린 종종 묻곤했다.
"실감이 나?"
결혼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요즘은 이렇게 묻곤한다.
"신혼느낌이 나는것 같아?"
그럼 "딱히" 라고 대답한다.
무언가 시덥지않은 일상이라 그런걸까.
사실 그냥 결혼 전부터 우리 사이가 다정했기 때문에 별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이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린 신혼처럼 사는거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지 싶다.
어제는 회사일에 치여 참 피곤한 날이었다. 일이 끝나니 괜시리 고춧가루 팍팍 들어간 칼칼한 찌개가 당겼다. 퇴근 길, 남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찌개끓여달라는 아내의 말에 "김치?" "된장?" 이라고 물어보는 착한 남편.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부대찌개를 끓이고 있었고 한 번 간을 보라며 국물은 한수저 떠 내게 먹여주었다. 2프로 부족한 국물에 라면스프를 조금 첨가하자 아주 그럴싸한 맛이났다. 제법 맛있던 부대찌개 탓에 과식을 해서인지 소화가 되기도 전에 잠이 솔솔와서 바로 침대에 누웠다. 팔베개를 하고서 이런 저런 말을 주고 받다 이내 남편이 물었다.
"오늘은 신혼 느낌 나는 것 같아?"
나는 평소처럼 "딱히?"라고 대답했다.
살짝 서운했는지 "찌개를 차려놓고 기다렸는데도?" 라고 반문했다.
'아차! 이런 게 신혼느낌이었구나!'
아마 나는 찌개가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남편이 단박에 알겠다고 대답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너무 익숙하게, 별다르지 않은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괜시리 다정한 나의 남편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게 아닌가 살짝 반성하며 잠에 든 날이었다.
그러나 신혼의 로망이 없었던 것과는 별개로 간과하고 있던 사실도 너무나 많다. 내가 그의 모든 모습을 알지는 못했다는 것. 그가 잠옷을 침대 위에 그대로 벗어두고 출근한다는 것도, 다 마시고 난 물컵도 쇼파 옆에 고스란히 놔두고 잔다는 사실도 말이다. 남편이 찌개를 끓여줬던 그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침대 위 남겨진 잠옷을 보고 순간 또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는 걸 한 번 더 깨닫는 순간이다.
신혼은 결국 로망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