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멱살을 잡고서
왜 그런 날 있잖아.
나만 그런가?
출근하기 너어무 싫어서, 세상에서 내가 증발 되어버렸으면 하는 날.
근데 나만 사라져 버리기엔 살짝 억울하다 싶어 차라리
이 세상이 훅- 꺼져서 모든 걸 집어삼켰으면 하는 날.
광활한 산맥도, 시커먼 바다도, 인류가 이룩해놓은 이 수많은 문명 기술도, 어린 생명체들도
지구 핵 속까지 빨려 들어가 모든 게 잠식되어 버리고
그 후에 남은 건 정적, 그리고 고요.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딱 이 한 줄로 정리되는 빠른 서사.
그리고, 지구가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 무의 상태에서 켜지는 cctv.
몇만 년 뒤에 풀이 자라나고, 또 몇만 년 뒤에 공룡이 움직이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그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되어 둥둥 표류하면서 그 일련의 모습들을 가만-히 관찰만 하고 싶은 그런 날.
배고픔도, 슬픔도, 외로움도, 욕심도 없는
없을 무 없을 무.
나만 그런가?
유독 지치는 날, 자주 생각한다.
딱 여기서 이 삶이 그만 끝났으면- 하고.
내일이든, 내년이든. 그 후가 궁금하지 않다고.
“그만 살고 싶다”
하지만 오해 마시라. 이것은 ‘죽고 싶다’는 위험한 말과는 절대 거리가 멀다.
‘죽고 싶다’는 내 생을 내가 끊고 싶을 만큼의 괴로움에서 발현된 강력한 능동적 표현이지만
‘그만 살고 싶다’는 지금 현 상황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고, 미래엔 딱히 더 바라는 것도 기대되는 것도 없어 그냥 내팽겨쳐버리고 싶은 수동적인 표현이다. 나를 대하는 한없이 게으르고 소심한 태도. 결국 나 스스로에게 향하는 비겁한 변명이다.
최근 몇 해가 그랬다.
매일 쳇바퀴같이 굴러가는 생활 속에서, 작은 행복과 소소한 성취들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땐 별다른 변화도, 발전도 없는 것 같은 연속선상의 그 어딘가.
삶이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 와중에도 밥은 먹어야 하고, 공과금은 내야하고, 사회적 체면(?) 유지는 해야 하니 매일같이 출근을 하고, 가진 몇 안 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인간은 왜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걸까. 왜 가만히 누워서 시간을 죽이며 보낼 순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정말 좋아서하는, 가치 창출 혹은 자기 증명을 위해 하는 형이상학적인 배부른 움직임 말고,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어디론가 가고 무언갈 구해오고 떼로 어울리면서 좋든 싫든 무언가를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엔 결국 굶지 않기 위한, 생존 때문이 아닌가. 결국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결국 ‘돈’으로 귀결되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돈,돈,돈하다 싸우고, 부정을 저지르고, 사람을 잃고. 그렇게 애써봤자 대부분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채 삶이 끝난다.
언제야 끝날까. 진짜 죽어야 끝나는 걸까.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제주도 가난한 잠녀(해녀)의 딸로 태어난 애순(아이유)은 말한다.
“난 그냥, 빨리나 늙었으면 좋겠어.”
그 맘,
내 맘이다.
그냥 빨리 늙어버려서 이 고통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대적 얄궂음이 다를 뿐,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라지만 그 발버둥이 너무도 괴롭다.
백 환을 벌어보겠다고 하루 종일 물속에서 전복을 찾으며 시간을 버텨야만 하는 60년대 애순의 엄마나,
매일 출퇴근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에 나를 갈아 넣는 오늘날의 미생들(나)이나.
주구장창 무언가를 해야만 삶이 계속된다.
그러니 내 인생에 내가 없다. 내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다.
눈 뜨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날이 좋은 날 볕을 쬐고, 뭘 안 해도 부족함 없는 일상을 누리고, 소중한 사람과 듬뿍 시간을 보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대다수에겐 주어지지 않을 자유다.
그래서, 차라리 빨리나 늙었으면 좋겠다.
더 살아봐야 인생의 큰 챕터가 새로 열릴 것 같지도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의 복붙이 이어질 텐데 그나마도 지금까지는 우상향 그래프였다면 이제부터는 나이로 보나 생의 주기로 보나 체력부터 삶의 만족도까지 모든 게 우하향 시퍼런 그래프밖에 남은 게 아닐까 두렵다. 그럴 바엔 그 하향길을 굳이 꼭꼭 즈려밟으며 겪어내느니, 빨리 점프해서 이 소설의 끝점으로 건너뛰고 싶다는 얄팍한 바람.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편안해져 있지 않을까.
나만 그런가?
그래서 이유를 찾아본다.
어쩌면 이런 게 번아웃일까. 잠깐의 쉼표가 필요한가.
하지만 얄궂게도 회사 규정엔 출산휴가, 육아휴직, 병가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쉼을 허락하기에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난 진짜 쉬고자 하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시다시피 스스로에게 비겁한 나는 역시나 오늘도 의미 없는 쳇바퀴를 돌릴 뿐이다.
그러던 와중,
결국 이번 주가 오고야 말았다.
새 시즌 프로그램 제작발표회부터 첫 촬영, 첫 방송, 시청률 확인까지 모든 게 이 한주 안에 휘몰아치는 역대급 스트레스 기간.
이번 주가 시작하기 전날, 일요일 밤부터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잘 끝나게 해주세요’ ?
아니,
[이 모든일이 무산되게 해주세요] 라고.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딱 이 한 줄로 정리되는 빠른 서사.
찾아볼라면 세상 사람들 다 볼 수 있는 이 얄궂은 방송국 일의 숙명이란. 결과물로 증명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결국엔 시청률과 화제성 지표로 평가받는다는 두려움에 늘 그랬듯이 너무도 숨고만 싶다. 도망치고 싶다. 방송 나가고 기사는 어떻게 뜰까. 댓글은 뭐라고 달릴까. 회사에선 어떻게 평가할까. 아니 필요 없고 나 멀쩡히 살아는 있을까?
세상에서 내가 증발되거나, 세상이 뒤집어지거나. 하나만 되라 제발.
이 모든 일이 없던 일처럼 되어라 제발.
나는 하필 왜 이런 직업을 골라서 이렇게 암 걸릴 것 같은 괴로움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걸까.
하지만 어김없이 다가온 그날,
이런 나의 비겁한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 짓이었는지.
제작진의 설득으로 고심 끝에 15년 만에 스튜디오를 찾은 출연자 A는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무대 울렁증이 심했던 출연자 B는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오랜만에 좋은 옷을 사 입고, 안정제 두 알을 먹고서야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출연자 C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본인 기존 스케줄을 다 바꿔가면서까지 이곳에 왔다고 한다.
이 와중에 MC는 첫 녹화에 감사하다며 스태프들에게 뛰어다니며 따뜻한 떡을 돌리고, 기사 예쁘게 써달라며 기자들한테 먼저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긴장되고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
저마다 무언갈 하며 세상에 기억되고자 하는 사람들.
근데 내가 감히 뭐라고 이 중요한 날이 함부로 무산되길 기도하느냔 말이다.
출연자 이외에도 한 번의 녹화를 위해선
피디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 및 출연자 소속사 관계자들, 카메라팀, 조명팀, 음향팀, LED팀, 영상팀, 보안팀, 외주 스태프들 등등 다 합해서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한다. 그 동시간에 모두가 각자의 전쟁터에서 각자가 가진 무기로 저마다 무언갈 하며 힘든 각개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그 안엔 파트별로 숨 막히는 긴장감과 안줏거리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결국 우린 모두가 한 팀이고, 이 모두가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이 많은 에너지들을 쓰는데, 내가 감히 뭐라고 이 중요한 날이 함부로 무산되길 기도하겠는가. 그것도 이 모든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PD라는 놈이.
“꺅 미쳤따!!!!”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하트하트”
“이번 회의 땐 제가 스벅 커피 쏩니다”
아침 7시, 팀 단체방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한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각성하고 다시금 정신머리를 챙겼다는 건,
다행히 녹화는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끝났고, 프로그램도 제 시간에 잘 나갔고, 마침 오늘 잘 나온 시청률까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늘 이렇게 앞뒤가 다르고 간사한 법이다.
본방송이 송출되는 그 시간까지, 커뮤니티 게시글이며 기사며 오픈톡방이며 안 좋은 반응은 없는지 노심초사하느라 긴장했고, 새벽에 시청률 나오기 전까지 밤잠을 설쳤으며, 그 후 출연자들의 피드백을 듣기까지 매 순간이 전전긍긍이었다. 근데 잘 끝나고 나니 이렇게나 마음이 충만할 수가. 세상 따뜻해진 날씨마냥 가슴 한켠이 사르르 녹고, 뿌듯함과 벅참에 몸이 붕 뜨는 기분이다. 클립마다 달린 댓글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훈훈한 어휘들로 장식된 기사 헤드라인에 세상 또 안심이 되고. 우린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시청자들이 잡아낸 재미 포인트에 같이 공감하며 그렇게 또 다음 녹화 분량을 고민하게 된다. 어휴. 이 도파민 천국. 내가 이 맛에 이 일을 하지.
나란 인간, 참 드럽게 간사하다.
이제 또 매주 매주.
다시 시작된 쳇바퀴다.
“언제야 끝날까. 진짜 죽어야 끝나는 걸까.”가 또 시작되겠지.
하지만, 진짜 끝나버리고 나면 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이 아쉬울 수도 있으니까.
또 모른다. 쳇바퀴가 좋은 방향으로 잘 굴러가서 금은보화 노다지 광산으로 인도해 줄지.
봄이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