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사실 나에게 하는 질문입니다만
글.
‘글’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저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내 글의 시작은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그림일기였을 것이다.
네모네모 칸에 띄어쓰기도 해야 하지, 맞춤법도 신경 써야 하지, 그림까지 그려서 색칠까지 해야 했으니 어린 나이에 꽤나 품이 드는 고강도 노동인지라 매번 끔뻑끔뻑 졸면서 겨우 써냈던 기억이 나지만, 그래도 가산점이 글에 있었는지 그림에 있었는지 기준은 살짝 애매하나 아무튼 담임선생님 픽으로 매주 <참 잘했어요> 도장과 함께 교실 뒤 게시판에 늘 붙었던 내 그림일기는 나(보단 우리 엄마의)의 훈장이었다.
지금 시작해 보면 소름 돋지. 왜 남의 일기를 허락도 없이 남들 다 보는 게시판에 걸고 난리람. 그것도 서열을 매겨서는. 선생님 말씀으로는 분명 ‘열심히 쓴 사람한테 주는 칭찬’이랬는데 이건 뭐 공개 처형이 따로 없어.
아무튼.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는 초3이 되면서 그림을 뗀 줄글로 진화했다. 매주 3번 이상 써서 월요일 아침마다 담임선생님 책상에 엎어서 제출해야 했던 일기는 돌아오는 빨간펜 피드백이 제맛이었다.
“발표를 못 했던 게 그렇게 속상했으면 선생님한테 말을 하지. 지슬이는 평소에도 많이 하니까 일부러 선생님은 평소에 장난만 치는 진우를 시킨 거였어^^”
“비 오고 힘들었던 소풍도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미있었다고 써주니 선생님이 너무 뿌듯하구나”
“어버이날에 탁상시계를 선물로 고른 게 그런 의미였다니. 정말 지슬이다운 훌륭한 생각인 것 같아! 엄마 아빠가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선생님이 안 봐도 다 보이는구나!”
평소 3,40명을 상대해야 하는 바쁜 담임선생님이 내 일기장에서만큼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 주는 기분이랄까. 학교에선 떠드는 아이, 말 안 듣는 아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공중에 흩어져버렸던, 선생님과 다 나누지 못한 아쉬운 말들이 일기장 속 빨간색 글씨로 다시 만나 단둘이 비밀편지를 주고받는 느낌. 그렇게 선생님께 내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거기서 느꼈던 감정들을 보고(?)하고, 돌아오는 빨간펜으로 선생님의 평점(!)을 받으며 뿌듯해했던 그 시절의 뽀작거림.
하지만 낭만은 거기까지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그 일기는 다소 형식적이고 겉만 맴도는 피상적인 주제들로 변질되어 가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중 검열’의 시그널을 간파해버린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일기를 제출하기 전, 엄마는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떤 식으로 써내는지를 이미 다 확인하는 게 분명했고, 선생님 또한 본인의 피드백을 학부모가 고스란히 다 확인한다는 걸 아셨기에 최대한 정성스런 티는 많이 나되 품은 덜 들이는 방식으로 본인만의 숙제를 매주 하고 계셨던 거라. 선생님과 나만의 비밀 편지인 줄 알았던 그 일기장이, 사실은 우리 엄마와 선생님이 주고받는 촘촘한 감시의 망이었달까. 열두 살 인생 고 어린것이. 벌써 그걸 파악해 버렸다.
‘뭐야. 그럼 대체 이걸 매주 왜 쓰고 앉아 있는 거야?’
내가 쓰는 이 글이 엄마도 만족시켜야 하고 선생님도 만족시켜야 하고, 결국 둘의 ‘안심’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면, 까짓거 나도 최대한 품을 덜 들이고 최소한의 퀄리티 유지만 한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일기는 보통 사건의 나열 뒤에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로 끝이 났다. 속상한 티, 불안한 티, 억울한 티 내지 않고 ‘내가 행복했다’하면, 둘 다 안심했을 테니까.
그렇게 초등 고학년이 지나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엄마가 청소하고, 아빠가 교복을 다려주던 그 시기엔 내 방도, 내 책상 위도 내 것이 아니었기에 늘 누군가의 검열과 감시를 의식해 일기는커녕 작은 메모조차 남겨두질 않았다. 그러다 다시 몰래 작은 노트를 꺼내 속마음을 적기 시작한 건, 고3 수험생 때였다.
졸음 방지를 핑계로 새벽에 라디오를 들으며 문제집을 쌓아놓고 풀어제끼던 시절.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서함 n번지’에서 ‘www.닷컴’으로 라디오 사연 전송의 세계에도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그 때. 방식은 여러 가지여도 사람들은 라디오에 구구절절 사연들을 참 많이도 보냈다.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저 좀 위로해 주세요’
‘토요일인데, 아직도 퇴근을 못 했어요... 힘 나는 노동요 틀어주세요’
‘마왕DJ는 야식 뭐 좋아하나요? 출출한 새벽이네요’
뭐야. 다들 먹고살 만하네. 뭘 이런 걸 고민이라고 시간 내서 힘내서 사연까지 보내고들 난리야.
뭐? 헤어졌어? 딴 사람 만나...
퇴근을 못 해? 내일 일요일이잖아 내일 놀아... 월급 받으면서 노는 거잖아..
야식? 난 졸릴까 봐 뭐 먹지도 못하는데 진짜 다들 행복하구나...
다들 하찮다 하찮아. 누가 지금 내 사연 들으면 진짜 위로 곡으로 온갖 비싼 악기 다 때려 박은 비장한 25분짜리 협주곡을 틀어놓고 DJ 퇴근해 버려도 될 만큼 길고 심오하고 장황하다고… 눈물이 흘러넘쳐 강을 이루고 그 슬픔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물고기가 떼로 익사한다고. 나 수능 150일도 안 남았다고. 모의고사 똥망했다고. 우리 집 재수할 돈도 없다고. 나 잘하는 거 하나도 없다고. 곧 수능 다음날 내 시체가 한강에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도 썼다.
사연 쓰듯, 일기장에.
나는 어디 사는 누군데, 지금 미래가 불안해서 너무 힘들다고, 아 근데 난 아직 학생이라고, 근데 마음은 다 산 할머니마냥 폭싹 삭았다고, 당장 비문학 푼 거 개망해서 너무 힘들다고, 왜 딴 애들은 쉽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아직 내 인생의 봄은 오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고, 아 이럴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게 맞는 것 같지만 졸리다고,
아, 그러니까 나 좀 살려달라고. 언젠가 이 일기 쪼가리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있게 해달라고.
썼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 모든 괴로움을 다 지나보내고 괜찮아져 있을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기도했다.
그때 이 글들을 보면서, ‘참 하찮네’하고 웃을 수 있기를.
남들의 헤어진 사연, 야근 사연, 야식 메뉴 추천 사연 마냥 세상 빵부스러기 같고 하찮은 일들에 그 시절엔 왜 그렇게 괴로워했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여튼 유난이었다고.
그렇게 성인이 된 나는, 지금도 일기를 쓴다.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을 꽉꽉 채워 쓰는 성실함일랑 진작에 포기했지만,
유독 나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시기에,
나에 대한 자책이 심한 날에,
이 우울함이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밤에,
쓴다.
그런 날의 일기란, 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늘 비슷한 푸념과, 자괴와, 걱정과, 후회와, 저주와,
끝에 가선 늘 같은 엔딩.
“이제 다 그만하고 싶다”
열 살 때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로 끝나던 일기가
“이제, 그만하고 싶다”로 솔직하게 바뀌었다.
진짜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난 아쉬울 게 없다,
내일 내가 눈을 뜨지 못해도 난 아쉬울 게 없다,
다만, 쪽팔리니까 이 일기들만 다 불태워버리고 갈 수 있는 시간을 내게 다오.
내가 떠나고 난 다음에 누가 이걸 읽을 일만 없으면 된다.
아, 그럼 난 사고사는 안 되겠네. 차 조심해야지.
아무튼 아쉬울 게 없다고 했지만 양심 없게도 하나만 요구한다. 내 기록을 내가 삭제하고 갈 수 있는 나의 존엄사(?)만 좀 약속해다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알쓸인잡>을 본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한다는 거거든요.
희망 없인 일기를 쓰지 않아요.
_법의학자 이 호
사실 일기에는 나의 미래는 없어 라며
절망적인 말들로 쓰고는 있지만
쓰고 있다는 것은 미래에 읽게 될
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_소설가 김영하
에잉.
매일 그만하고 싶다, 죽고 싶다는 말만 가득한 일기인데.
이 행위 자체가 결국은 미래의 나를 위한 거라니.
희망에서 발현된 것이라니.
거 똑똑한 양반들 다들 너무 해석만 좋은 거 아니요.
그래서 다시 붙박이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일기장 꾸러미를 꺼내본다.
폴더의 폴더의 폴더에 꼭꼭 숨겨둔 오래된 한글파일을 열어본다.
‘너의 대학 시절은 어땠어?’
‘너의 취업 준비는 어땠어?’
‘너의 사회 초년 생활은 어땠어?’
물어보면 한 단어로 대답할 수 없는 깊은 수렁 같은 질문에,
과거에 내가 기록해 둔 글들은 참 촘촘히도 빼곡히도 답을 해준다.
어떤 추운 겨울날은,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사 먹은 붕어빵이 너무 맛있어서 노래를 들으며 쓸데없이 엉엉 울었고, 어떤 더운 날은 스타벅스 에어컨 바람 밑에서 공부를 하려는데 체크카드 잔액이 부족해 커피 대신 바나나만 먹었다. 또 어떤 날은 독서실 마감 시간에 집엘 오다가 보름달이 너무 예뻐 나도 모르게 가방과 책을 다 내려두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했고, 또 어떤 날은 최종 면접 과정에서 등산하고 회식을 하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현타가 왔다.
그 수많은 날들이 다 어떻게 지나갔나 싶은데,
들여다보면 나 진짜 뭐라도 하고 살았구나.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던 날은 또 없구나.
나 기특하네. 나 애썼네.
미래에 읽은 나, 힘이 나긴 하네.
입에서 절로 나오는 이런 반응은,
현시점 내 인생이란 결과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종의 자기 위로일 수 있다.
‘나 열심히 살았잖아!’ 이 한마디로 퉁쳐지는 눈속임.
뭐 읽는다고, 그래서 결과물이 달라지긴 해?
그때 다른 과 갈껄, 그때 그 주식 살껄, 그때 그 사람 만나지 말껄, 그때 다른 팀 지원할껄
껄껄껄 껄무새의 요란한 가지치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나온 길을 나 스스로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다.
그 순간엔, 최선의 선택이었잖아.
잘 해보려고 했던 거잖아.
다시 돌아가도, 또 같은 판단을 할 지 모르잖아.
일기의 힘.
아니, 기록의 힘.
그래서 요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더 티 나는 여러 가지 기록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하고 있다.
1. 일기 쓰기 / 에버노트
매일 있었던 굵직한 일들을 적고, 시간 여유가 되면 감정 상태도 적는다.
(늘 긴 감정 상태를 적는 경우는 언제나 그렇듯이 화가 나고 우울한 일들에 국한되어 있다)
2. 아침 확언 선언 / 스타벅스 다이어리
‘나는 잘될 것이다’ 만세삼창으로 시작하는 하루
(늘 출근하느라 바빠 일주일에 세 번 적으면 많이 적는 게 함정)
3. 시간대별 일정 / 몰스킨 다이어리
하루의 To do List를 적고 시간을 알차게 써먹었나 한눈에 보기
(신기하게 왜 월요일과 금요일만 적게 되는 건지.... 중간은 어디 갔나...)
4. 10년 다이어리 / 같은 날짜의 10년을 한 페이지에 볼 수 있는 뚱뚱 다이어리.
작년의 오늘 내가 무얼 했는지 보기 쉽다. (근데 10년 후 나 자신 살아있으까...)
5. 기념비적 영수증, 티켓, 큐시트 등 종이 스크랩 / 회사 다이어리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나온 안현모의 방식 따라 하기. 모바일이 아닌 실물 종이를 만져보는 그날의 감촉이 나중의 나에겐 더 큰 선물이 될 것만 같다.
(가지가지 오만가지. 하지만 일단 해본다)
그렇다.
별 쇼를 다 한다.
하지만 늘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오늘 하루가 불만족스러운 나에겐 이런 기록 치료가 도움이 될 거란 믿음에서 오늘도, 사부작거려본다. 간헐적으로.
그리고,
이런 단순 일기에서 벗어나 나의 기록을 조금 더 확장시켜보고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예전엔 라디오에 사연 보내던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요즘엔 SNS에 자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나 많다. 긴 글, 짧은 글, 재밌는 글, 사소한 글. 다들 얼마나 할 이야기들이 많은지 그 양과 속도에 놀랄 뿐이다. 대체 이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나는 왜 이렇게나 할 말이 없을까. 죽기 전에 일기도 다 삭제시키고 갈 만큼 나는 세상에 남기고픈 말이 한 개도 없는데, 이게 건강한 걸까.
그래서, 오늘도 쥐어짜내서 뭐라도 써본다.
남들이 뭐래도 일요일엔 꼭 하나씩. 그렇게 올해 50개라도 브런치에 내뱉을 수 있으면 나 올해 좀 잘 산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글, 다들 왜 쓰세요?
전, 미래에 읽어볼 나를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