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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자. 칭찬을 들으면, 대답은 ‘고맙습니다’로.

by 토스트잼


녹화 중간중간 끊어가는 타이밍.

첫 번째 게스트를 맞이하고 계단을 내려오는 우리 MC의 입술이 삐쭉, 볼이 빵빵하게 나와 있다. 아, 뭐가 맘에 안 들었나 보구나. 자기 욕심만큼 다 보여주지 못하고 와서 속상하구나. 부랴부랴 백스테이지에서 대본을 달달달달 복기하는 그의 등짝에서 무게감과, 그보다 무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뿌엥.

잠시 후.

두 번째 게스트를 맞이하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어깨가 시옷(ㅅ)자로 축 쳐져있다. 아, 뭔가 더 베테랑인 게스트들 앞에서 기가 죽었구나. 예상된 그림이긴 했지만, 본인도 본능적으로 느꼈을 거다. 예능 선수들에게 말렸다는걸. 멍하니 바닥 한가운데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오만가지 아쉬움이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뿌엥.

어휴. 뭘 저렇게 욕심이 많을까.

충분히 잘했고, 잘해왔고, 더 잘해지고 있는데.

어화둥둥 칭찬 폭격을 퍼부어도 ‘더 잘할 수 있었다’며 자책하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동질감… 동병상련… 을 넘어선 동족혐오(?)랄까.

슬프지만 이 비슷한 풍경은, 정확히 지난주 내 모습이다.

리허설을 마치고 나오는 복도에서 입술이 삐죽, 볼이 빵빵.

어깨와 더불어 눈썹까지 시옷(ㅅ)자.

아,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감도 못 잡을 정도로 뭔가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된다.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겠는데 ‘뭐가’ 잘못됐는지를 모르겠다. 이걸 이렇게 고쳐라, 저걸 저렇게 고쳐봐라 오답 노트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 바닥에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카메라 앞에 선 출연자들이 그렇듯, 카메라 뒤에 선 PD들 또한 잘한다 못한다 점수가 매겨진다. 매 순간 평가받고 매 순간 외로운 자리.

그렇다 보니 날로 늘어나는 자아비판, 자학파티.

맘 같아선 복도의 쓰레기통을 이단옆차기로 날려 38선 넘어까지 차버리고 싶지만 여긴 회사다. 정신 차려 띠끼야.

입술 삐죽하지 말라고!

어깨 뙇 펴라고!

얼굴에 나 속상하다 티 내지 말라고!

죽상하고 있으면 진짜 죽이 된 것 같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라고!

엉엉 엄마. 나 못 하겠어…

하지만 회사는 날 ‘못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라면 하는 거다.

잘하든 덜 잘하든 일단 진행시켜.

그렇게 어찌어찌 녹화는 끝이 났고,

모두가 진이 빠진 상태에서 ‘오늘도 고생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를 반복하는 다독 다독의 시간.

나 : “(어깨 시옷) 고생하셨습니다…. 저 때문에 다들….”

너 : “(입술 삐죽) 저 쫌 아쉬웠죠”

나 : “엥? 무슨 소리야. 나 말하는 건데. 그대는 대체 왜요?”

너 : “아니 더 잘할 수 있었는데…(뿌엥)”

나 : “아니 무슨 소리야. 그댄 잘했다고!!! 난 그냥 나한테 너무 화가 나고 실망해서 그런 건데”

너 : “(덥썩) 저도요!!!! 저 진짜 아까 틀려서 너무 저한테 짬뽕나요!!”

와 얘 봐라, 진짜 짬뽕나네?

너는 충분히 잘했다구요. 설사 가만히 있었어도 그대 얼굴이 충분히 잘했다구요. 춤추고 노래하고 울고 웃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거 충분히 다 잘했는데 왜 자꾸 셀프 채찍질이야!

뭔가 리허설 때부터 우왕좌왕한 거랑 돌발상황에 대처 못 한 거랑 오늘 밤 무덤에 누워야 할 건 네가 아닌 나라고!!!

누가누가 더 못했나 자학파티가 열리는 와중에 듣다 못한 선배의 한마디.

“어휴 이 걱정인형들, 오늘 녹화 재밌게 잘 떠졌는데 왜들 난리야. 다들 빨리 집에 가!!!”

그렇게 인형 두 마리는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지만,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비슷한 파티는 계속될 거다.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될 파티. 아모르파티.

대체 난 왜 이 모양일까.

평소 대화 톤에서만 봐도

“오랜만이다! 요새 잘 지내니?” - “아유, 죽지 못해 살져 뭐”(잘 살고 있다는 거다)

“밥은 먹고 일해야지” - “어휴 제가 밥 먹을 자격이…”(하면서 다 먹는다. 많이 먹는다)

“불금인데 끝나고 어디가?” - “전 마포대교요…”(하면서 집에 간다. 불금은 나혼산이지)

“음료 뭐 마실래?” - “전 사약이요” - “??!!!” (그러면서 결국엔 달달이 음료를 마시고 있다)

친한 사람들이야 이미 익숙하지만, 처음 들으면 놀랄 말들.

큰 일이 나지 않았어도 ’망했어요, 전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다음 생에 만나요‘ 를 일상 말투로 사용하고, 혹여나 누가 칭찬을 해주거나 좋은 말을 해주면 듣기가 힘들(?)어서 무슨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상대방의 호의를 반사판으로 튕겨버리는 무례함까지.

그래서 고민해 봤다. 난 왜 이 모양일까.

사실, 내가 주로 하는 이 말들은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 아닐까.

망하기 싫어서 망했다고,

못하기 싫어서 못할 것 같다고,

잘하고 싶어서 기대하지 말라고

대충하기 싫어서 난 이미 틀렸다고

미리 튼튼하게 설치해 두는 방어벽.

내가 오히려 낮은 자세로 미리 밑밥을 던져두면, 결과물로 항상 비슷하게 돌아오는 답은 ‘에이 잘해놓고 뭘 엄살이야. 괜찮았어. 잘했어‘와 같은 반응들이다. 기대감을 잔뜩 낮춰놓고서 후에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패턴.

그렇다면,

결국 난 칭찬을 듣고 싶었던 거잖아?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실망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남의 평가’가 중요하기에 발동되는 방어 기제. 이게… 맞아? 너무 안 건강한데…?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릇이 크고, 자기애가 충만한 선배들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흔들리는 동공을 잘 숨긴다고 읽는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샤우팅 할 말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뒤에서 봤을 때 누가 봐도 ‘엇, 이게 맞아…?’하는 상황에서도 “네, 좋습니다. 너무 훌륭했어요”하며 오히려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을 안심시킨다. 나는 왜 이 연차가 되도록 저런 애티튜드가 도무지 장착이 안 되는 걸까.

지금이야 내가 당황하고, 흔들려도 바로잡아줄 선배들이 많고

알아서 더 정신 바짝 차려줄 스태프들이 있지만

한 해 한 해 연차가 찰수록 그들이 일할 현장 분위기를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데 언제까지 입술 삐죽, 어깨 시옷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태프들의 공적을 하나하나 나노 단위로 칭찬해서 일할 맛 나게 해야 할 사람이, 나 스스로 칭찬받으려고 일희일비하며 전전긍긍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당장 다음 주부터라도, 입술 삐죽 금지, 어깨 시옷 금지. 한 번에 안 바뀔 걸 알지만 그래도 걱정인형은 재활용 봉투에 곱게 싸서 굳이 겉으로 티 내는 파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안다. 한 번에 안 바뀔 걸. 하지만 노오력은 해봐야 한다는 거다.




후우.

녹화를 떴으니, 이제는 편집 파티다.

현장에선 정신없어서 못 봤던 그림들을 나노 단위로 2평 편집실 방구석에서 쪼개보는데, 문득 이런 멘트가 나온다

“오늘 처음 뵙는데, 근데 진짜 너무 잘생기셨고 진짜 성격이 되게 좋으신 것 같아요”

“아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라.

그치.

상대방이 칭찬을 하면 그 대답은 ‘감사합니다’가 맞다.

나 같으면 바로 “아유~ 아니에요”를 발사하는데. 그건 결국 상대방의 말이 틀렸다고 지적하거나,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자학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 이거다.

이게 먼저다.

외우자. 칭찬을 들으면, 대답은 ‘고맙습니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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