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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삽니다, 아니 건강을 삽니다

내일의 병원비는 오늘의 소비로 막는다!

by 토스트잼



“역시 선밴 인자강이네요”

“인자? 인자한 사람이 강하다구? (흐뭇)”

“아니...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하다고...


그게 바로 나다.

문제는 이 단어를 들은 게 내가 선배로서 굉장히 멋있는 일을 해냈을 때가 아니라,

코로나 시국에 유럽에서 멀쩡한 몸으로 PCR검사를 통과하고 바이러스들 속에서 혼자 살아 돌아왔을 때라는 거다. 강하긴 한데, 썩 멋진 강함은 아니랄까.


이런 나의 하찮은 인자강 히스토리를 살짝 읊어보자면

-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걸린다는 장염, 위염, 노로바이러스, 급체 등은 걸려본 적이 없고

- 독감은 무슨. 감기도 5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이례적 행사에 그마저도 목만 까끌거리지 오한이나 몸살까지 이어진 적은 없다.(예방접종도 맞아본 적이 없다)

- 코로나도 끝물에나 결국 걸렸으나 무증상 (되려 잘 먹어 살만 쪘다)

- 현대인 필수템 두통 / 생리통 / 소화불량 / 변비 없음 (이지엔6와 타이레놀의 차이란...?)

-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는 골절 사고 없음 (하지만 깁스하면 매직으로 뭘 쓸지는 고민해 봤다)

- 라식, 라섹, 렌즈, 안경 없이 쌩 눈으로 시력 1.0 (이 와중에 쌍꺼풀은 크면서 자동으로 생겼다. 개이득)

- 불면증, 우울증, 수면장애 없음 (잠이 안 와요? 전 늘 와요...)

- 사랑니 없음, 교정 안 함, 학창 시절 이후로 이 아픈 적 없음 (스케일링가서 우는게 함정)

- 해외여행 시차 없음, 물갈이 없음. (내가 있는 곳이 곧 고향)

- 비염, 알러지, 계절성 만성질환 없음 (계절이 바뀌면 들뜬 마음 누르느라 바쁨)

- 여드름, 뾰루지, 트러블 없음. 피부에 뭐 잘 안 남 (까만 편이라 태닝값도 벌었음)

- 숙취 없음(술을 안 좋아하니까) 금단현상 없음(아직 담배 안피니까)


“야. 너 무빙에 새로운 캐릭터로 취직해라. 안 아픈 너랑 상처 재생능력 있는 류승용이랑 누가 이기나”

(**무빙 : 강풀 원작의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에이,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제가 이기죠 ^-^. 근데 전 비타민 같은 거 먹어도 효과를 못 느끼겠는데... 돈 주고 사 먹기 아깝기도 하고...”

“효과를 못 느껴? 배부른 소리 한다... 그건 니가 건강하다는 거야... 내 나이 돼봐(한 살 위 선배). 안 먹은 날은 오후 2시만 돼도 바로 피곤하다니까? 안 먹을 거면 나나 줘”


그렇구나.

난 남들보다 확실히 건강한 편이구나.

난 내가 건강한 편이다 보니, 아니 잘 아프질 않다 보니 어린 시절엔 아파서 결석하거나 숙제를 못 해오는 친구는 [건강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 오해했고, ‘건강이 제일이다, 건강하고 볼 일이다’ 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날씨 대신 할 말 없을 때나 하는 [뻔한 인사치레] 정도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또한 나의 이런 건강이 내가 잘해서가 아닌, 운 좋게 부모님한테 좋은 유전자만 쏙쏙 골라 받아서 얻게 된 우연이란 것도.


이는 특히 방송국에 입사해서 더더욱 느끼게 되었으니 이 상급 종합병원(하아...)에 가까운 곳에 있으면 [과도한 업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 한 편도 쉽게 뚝딱 쓸 수 있을 정도다.

원인은 대개 아래와 같다.


- 만성 수면 부족 : 다 필요 없고 밤만 안 새도 사람은 살 만 하다. 유독 병신같은 실수는 잠을 못 잤을 때 이루어진다. 만병의 근원 = 수면 부족

- 불규칙한+질 낮은 식사 : 편집실에서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커피를 5잔씩 들이킨다. 피가 걸쭉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느껴진다.

- 부족한 휴식 시간 : 일주일에 하루 겨우 쉬면 빨래 한 바퀴 돌리고, 잠 보충하다 끝난다. 하지만 그렇게 몰아 잔다고 절대 개운해지는 법은 없다.

- 운동 부족 : 이 와중에 운동? 짜파게티에 트러플 오일 급 사치다.

- 타임어택에 가까운 마감 스트레스 : 오늘도 심장 쫄려가며 손 벌벌 떨며 편집하면서 또 느낀다. 이거슨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뒷목부터 시신경까지 폭파 직전.

- 그리고… 나를 갉아먹는 압박감 : 잘 해내야지, 보여줘야지, 나를 증명해 내야지 하다간 결국 내 사망 증명서로 출력될 판이다.


매주 이런 일상들을 반복하다 보니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기와 잦은 소화불량으로 늘 골골거리며 다니는 후배들이 수두룩하고, 젊었을 때 하도 밤을 많이 새서 잠을 잘 수 있는 요즘에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선배들이 수두룩하다. 안 걸린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디스크 3종 세트(목+허리+손목)에, 염증이 온몸을 돌아다녀 병원도 이곳저곳 투어를 다니며 중이염, 질염, 구내염 약을 동시에 처방받는 후배가 있는가 하면, 회식에서 술로 스트레스를 풀던 선배는 결국 위암 판정으로 잠시 병가를 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 몸 망가지는 거 뻔히 알면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이런저런 사례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그래도 난 아직 건강해서 다행이네...” 하며 안심하던 인자강 나.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 세상이 바뀌었다.





때는 몇 년 전, 어느 휴일 아침.

해가 중천에 뜬 12시쯔음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곧바로 소파로 날 내던진다. TV에선 다른 이들의 숭고한 피땀눈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쏟아진다. 크흐. 역시. 남이 만든 게 제일 재밌다니까. 오늘은 쉬는 날이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야. TV나 보며 뒹굴뒹굴거리다 낮잠도 자야지. 얏호.

“띵동 띵동”

끼약. 배달왔다!!! 나의 사랑 엽기떡볶이. 기다려라 갑니다요!!


“꽈직”


눈앞에 별이 번쩍.

악. 이게 무슨 느낌이지.

순간 허리를 다 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소파에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띵동 띵동”

밖에선 공동 현관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배달 기사님의 독촉이 이어졌지만, 난 인터폰 쪽으로 걸어갈 수조차 없었다. 뭐지. 영화도 아니고,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대체 왜??


눈물 줄줄. 허리디스크였다.

하루 온종일 편집실에 앉아 있고, 심지어 그 의자에서 엎드려 2-3시간 쪽잠을 자고, 운동은 일체 못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흔한 직업병. 그 상황에서 병원까지 혼자 어떻게 갔는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기억도 잘 안 난다. 다만 기억나는 장면은


“환자분, 환복 다 하셨어요? 왜 안 나오세요?”

“아니, 다리를 들어야 바지를 갈아입죠. 지금 허리 때문에 한쪽 다리가 안 들어 올려지는데 어떻게 옷을 갈아입어요 엉엉 ㅠㅠ” 하며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던 병원 탈의실 한켠의 서러움이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난생 첫 경험.

허리 따로 다리 따로가 아니었어! 온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구나 싶은 불편한 깨달음.

이럴 때를 대비해 날 병원에 데려다줄 반려남편이 필요해서라도 결혼이란걸 해야겠구나! 싶은 가치관의 변화.


위기 대 위기.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난 이제 허리디스크다. 엉엉.

수술대에 엎드려 얼굴을 박고 있던 그 잠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대로 내 인생은 끝나는 건가.

이렇게 결국 난 침대에 누워서 생을 마감하는 건가.

나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떡볶이도 아직 못 먹었는데!!

아니 이제 고작 30대인데, 이렇게 창밖에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만 바라보며(한여름이었다) 가슴 아파해야 하는 것인가...!


그동안 먹고 싶은 거 먹으러 돌아다니고, 해외든 바다든 가고 싶은 곳으로 당장 갈 수 있었던 자유가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힘들다 죽겠다 하면서도 건강한 몸 막 굴리며 촬영 다녔던 그 험한 시절이 참 행복이었구나...

있을 때 잘할걸... 그게 영원한게 아니란걸 알았더라면... 눈물 광광광.


행복했다 이번 생...

고생했다 애쓴 나...

묘비엔 뭐라 쓸까. ‘감기 조심하세요’ 대신 ‘허리 조심하세요’...? 하. 뭔가 없어 보이잖아. 요절한 사람들의 그 힙하지만 울림있는 그런 문구들 있잖아. 아니 근데 이 와중에 왜 이렇게 졸리지. 이거 전신마취 아니랬는데. 이상한데.


불현듯 이렇게 의식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유난) 오고 가는 간호사 언니들을 붙잡고 진상처럼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붙이던 그때, 날 향해 빙그레 웃으며 던진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가 꽤나 큰 위로가 되었다

“환자분? 아쉽지만 이런걸론 환자분 안 죽어요^-^. 아직 젊으시니까, 여기 다신 안 오시게 관리 잘하시면 돼요”


아하? 그렇구낭.

흑. 그래도 무서운 걸 어떡해.

나 겁쟁이인 거 이미 간파당했나.

흥. 선생님 거참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씀하시기는.


인생 처음으로 병원이란 곳을 제대로 경험한 나.

그렇게 시한부 선고받은 드라마 여주인공마냥 짙은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세상 시련 다 끌어안고서 돌아온 집.

‘그래 괜찮겠지. 지금까지 너무 건강했어서, 처음이라 놀란 거야. 남들 다 이렇게 병원 왔다 갔다 하며 살잖아. 나도 이제 나이 드는 거지 뭘’

애써 마음 다잡고,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파이팅을 끌어올려 본다.

이럴 땐 뭐다? TV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보이는 첫 화면.

와. 세상에. 이게 뭐야...?


지금껏 한번을 제대로 본 적 없던 <뮤직뱅크>는, 지금까지의 그 흔한 <뮤직뱅크>가 아니다.

몇 명인지도 모르겠는, 이름도 낯선 한 남자 아이돌 그룹 한 무더기.



가볍다 못해 날아다니는, 무대 전체를 휘젓고 장악하는 날렵한 몸
수십 명이 하나 되어 착착 맞춘 칼군무
무릎을 꿇고, 골반을 튕기고, 허리를 젖히고, 인간 탑을 쌓는 저 쌩쌩한 관절과 연골들.
생기 있는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저 가쁜 숨과 헐떡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의 기운.

아름답다. 그리고 눈부시다.
열심히 가꾸고 다듬은 몸이 만들어내는 행위 예술이 이렇게나 멋지구나.
통증 없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저 신체의 에너지란 정녕 축복이구나.
음악방송이... 음악을 듣는 게 아니었네. 몸을 보는 거였네...


스키즈점프.jpeg 어쩜 스트레이키즈는 이름마저 영한 '키즈'인지



얘들아... 부럽다. 너희의 그 젊음이, 건강한 신체가, 몸을 맘껏 쓰는 자유가. 엉엉.

난 이미 틀린 거겠지. 난 너희처럼 뛰면 무릎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뻐근하고, 골이 울린다구.

그러니까 얘들아... 있을 때 아껴 써... 그리구 짧게 활동하고 많이 벌어... 삐에로 완선 언니도 무릎에 연골이 없다잖아. 아껴 써야 오래 할 수 있고, 많이 벌어야 고쳐가면서 오래 갈 수 있어.

아름다운 청춘들아, 너흰 절대 아프지 마라... 늙지 마라...


...연예인 걱정하는 거 아니라더니. 당시 신인이었던 JYP의 [스트레이키즈]는 너무도 멋지고 건강하게 해외 투어를 돌며 수십 개국 외화를 쓸어 담고 있다. 끙. 누가 누굴 걱정하니. 나나 걱정하자. 제발 나나.





그래서 그 사건 이후 나의 허리는 어떻게 되었느냐.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이런걸론 절대 죽지 않았고, 시키신 대로 필라테스와 도수치료 등을 잘 병행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원을 다시 방문한 적은 없다. 물론 비행기를 오래 타거나, 회의실에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을 경우엔 어김없이 찌릿찌릿한 경고가 울리곤 하지만 이 정돈 ‘관리’의 대상일 뿐 ‘통증’엔 속하지도 않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후에 얻은 새로 얻은 병(?)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건강염려증>과 <노화 혐오>다.

안타깝게도 우린 기대 수명이 100세를 가뿐히 넘어서고, 자칫 잘못했다간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병원에 들락날락하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이제 고작 30대인데, 신체로서의 기능은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막막하고 억울할 따름이다.

그래서 더더욱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없다. 다만 당장 내일모레 죽더라도, 생의 마지막 날인 내일까지는 마음껏 돌아다니고,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죽기 위해선 다짐이 필요하다.

늘 몸과 마음을 젊게 유지할 것. 한 단어로


생기(生氣).

말 그대로 살아있는 기운.

돋아나는 새싹과 어린아이의 웃음에서 볼 수 있는 힘찬 에너지.


어설픈 볼터치로는 다 흉내 낼 수 없는 젊음이 있듯,

애꿎은 앞머리로는 다 가려지지 않는 노화가 있다.

30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마음만은 청춘일 모두에게 있어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최대 경쟁력은 앞으로 <생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쇼핑은 '마그네슘' 해외 직구다. 수면 질에 도움이 되며 피로 해소에 좋단다. 지지난주에 구매한 '클렌징쥬스'는 뭔가 몸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 재주문했고, 지난달에 주문한 '타이거 진저샷'은 아직 한 병이 남았으니 다 먹으면 또 재주문할 거다.


그렇다. 나는 생기를 주로 소비로 채우는 편. 그날 이후 건강염려증에서 시작된 나의 소비는 운동 수업, 땅콩 볼이나 괄사 같은 소도구, 약, 건강보조식품, 체질 검사, 연속혈당체크기, 보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대체 이렇게 짜잘하게 지출된 금액이 대체 한달에만 얼마인지. 이렇게 소비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는게 꽤나 이상한(?) 방법이란 건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번 겨울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마스크 한번 안 쓰고 잘 지나간 걸 보면 분명 나중에 들일 약값보단 지금의 소비가 싸게 먹히는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건강하게 삽시다. 미리미리 건강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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