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이 정해졌다.
아, 제발. 피하고 싶었는데.
심지어 우리 팀 출장도 아니고, 국 차원에서 연례행사로 해치워(?)야 하는 프로젝트성 출장 차출이다.
아. 올해 이렇게 잘 지나가나 싶었는데 하반기에 인생 난이도가 높아지는 느낌이네 이거.
‘해외 출장?? 부럽다. 회삿돈으로 해외 다녀오는 거 아냐’
‘와. 그런 나라를 출장 아니고서야 내 돈으로 가볼 일이 어딨겠어. 운 좋은 거지’
…쩝.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 해외 출장을 안 가봤거나
- 적어도 방송국 놈들의 해외 출장을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고생을 해도 말 통하는 조국에서 개고생이 낫지
그렇게 준비에 준비에 준비를 해가도, 무엇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입국심사에 걸려 입뺀(?)당하는건 일쑤에, 현금 털려, 다 찍은 메모리 잃어버려, 숙소 잘못 예약돼서 길바닥에 나앉아, 날씨 엉망이라 야외 촬영인데 실내로 다 돌려…
국가를 막론하고 늘 변수가 생기는지라
그렇게 회의에 회의에 회의를 해갔어도
늘 해외 촬영가면 또다시 호텔방에서 길바닥에서 출연자 앞에서도 대책 회의에 회의에 회의.
아침 6-7시 촬영 준비에도 새벽 3-4시까지는 대책 회의를 하다 겨우 잠들기 일쑤니
해외 촬영에서 필요한 건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다.
영혼이 나가 있는 우리 제작진을 보며
국가를 막론하고,
늘 현지 통역사분들이나 코디분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어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일밖에 모르세요?”
“진짜 한국 방송국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저희는…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피디님처럼은 못 살 것 같아요”
아. 죄송합니다. 한국에 대한 심심찮은 오해를 불러일으…
아잇, 저희가 다 이렇진 않아요.
이 바닥에서 배운 게 이 모양인데, 모두가 다 이렇게 배워서 그렇지…
아, 그리고 저희가 늘 이렇진 않아요.
오늘이 좀 위기인데, 사실 매일같이 늘 위기여서 그렇지…
아무튼,
또 낯선 나라 가서 또 색다른 대환장을 경험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비행기 멀미가 오고, 없던 외국물 알러지가 생길 것 같다.
심지어 영어도, 스페인어도 아닌 제3외국어 국가다.
하아. 아멘.
내 하반기 모든 운을 그저 무사 귀환에 몰빵해주세요.
그래도 신입 시절엔 <해외 출장>이란 말에 ’혹시 나에게도 그 기회가 오려나‘싶어 심장이 뛰고 눈빛이 반짝이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어떻게든 안 가고 싶어 꼼수니, 이미 나도 고인 물의 고인 건더기가 다 된 셈.
그런 의미에서, 난 내 첫 해외 출장을 잊을 수 없다.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그 찬 겨울바람의 연회색 빛 뭉글함.
솔직히 말하면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 연차가 되고 나니 내 첫 해외 출장이 얼마나 비현실적(p)이었는지, 이젠 알 것도 같다.
때는 정확히 10년 전.
난 햇병아리(라고 하기엔 아직 달걀껍질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핏덩어리 신입이었다.
너, 내 독일 출장 따라갈래?
엄밀히 말하면 출장은 아냐. 넌 그냥 놀러 다니면 되니까.
비행기 티켓만 네 돈으로 끊어. 나랑 숙소 같이 쓰고, 먹고 마시는 건 내가 다 사줄게.
독일???
해외 출장???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세상에. 이 무지렁이를 입사시켜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이렇게 해외를 보내준다고? 심지어 놀러 다니라는데… 숙박비도 식비도 안 든다고???
정확히 그게
내 해외 첫 방문이자, 첫 국제선 탑승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남들 대학 때 다 가보는 어학연수, 교환학생은 꿈도 못 꿔보고, 심지어 방학 때 유럽 여행, 아니 가까운 일본 구경 한번 못 가본 나였다. 여권이 있을 리 만무했고, 누가 비행기는 신발 벗고 타야 하는 거라고 하면 진짜 의심의 여지 없이 벗고 탈 기세였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
이번에 선배 뒤를 졸졸졸 따라만 다니면, 그 뉴스에서만 보던, 토익 LC문항에서나 보던
공항 얼굴 스캔하면서 검사하는 거, 캐리어 싣는 거, ‘치킨? 올 비프?’ - 비행기에서 기내식 고르는 거, 해외에서 택시 타는 거,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그래. 이젠 나도 이젠 비행기 타 본 사람이라고!!
그렇게 서른이 다 되어서, 남들보다 늦은 인생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했다. 선배한텐 비밀이었지만, 나 또한 들키지 않으려 애써 노력했지만, 그게 성공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준 선배에게도 비밀이 있었으니.
그게 비밀이었다는 건, 나도 선배 연차가 되고 나서야,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슬프게도.
당시 선배의 출장 목적은 수십 개국 대표 방송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방송사를 대표해 프로그램 국제 심사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즉 모든 회의는 영어로 진행되어야 했고,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자료와 PT와 토론만 어마무시했다. 다들 그런 거 아니냐고? 이게 어려운 이유는, PD란 작자들은 평소 이런 딱딱한(?)행사가 있다는 걸 알지도, 도전해 볼 리도 없는 작자들이란거다. 늘상 촬영하고 편집하고 가내수공업 돌리기만 바쁘지, 이런 격식 있는(p)자리에, 그것도 한국 대표로 품위와 체면을 잃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오기엔 영 손발이 오그라들고 토나와 못 견디는 사람들이란 거다. 나 같으면 절대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벌써 국장실에서 울고불고 다 했을 거다. 당시에 선배가 그걸 하고 싶어서 손들었는지, 아니면 강제 차출로 할 수 없이 참석한 건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결정된 날부터 현업도 바빠 죽겠는데 기초 회화 책을 들고 괴로워 머리를 찧는 걸 보면 역시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건 맞는 것 같다.
그런 선배가 괴로움에 잠을 자든 못 자든
날짜가 다가올수록 소화제를 자주 먹든 말든
해맑아도 재수 없을 정도로 해맑았던 신입인 나는 <저스트고_독일 편> 책을 사들곤 그저 신이 났다.
“Wie viel kostet das?“ - 이건 얼마입니까?
“Wo ist die Toilette?“ - 화장실은 어디입니까?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선배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펴며, 침대에 책을 들고 누운 나를 뒤로한 채 말했다.
“공짜 방이어도, 나 혼자 쓰면 돈 아깝잖아. 너도 여행 경비 굳고 얼마나 좋아”
그런 줄 알았다. 아니, 그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선배와 한참 더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서야 알게 되었다. 선배가 왜 나를 데리고 갔는지.
선배는 ‘혼자서’ 해외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미 남편에 아이들까지 있는 선배는 ‘혼자’ 낯선 방안에서 잠들지 못했다.
수시로 청심환인지 이완제인지를 복용하는 것 같았던 선배는, 그 낯선 땅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에 짓눌린 채 홀로 싸울 자신이 없었기에, 방 안에서만이라도 심리적으로 기댈 누군가가 필요했던거다. 그게 <저스트 고> 책을 뒤적거리며 내일 갈 맛집을 고르는 해맑은 핏덩어리 신입일지라도.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선배가 혼자 낯선 방안에서 잠드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선배는 열흘 동안, 단 하루도 침대에 제대로 누워서 잠을 잔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관광지를 돌아다니느라 내가 침대에 먼저 곯아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선배는 책상 앞에서 자막도 달려 있지 않은 해외 작품들을 보느라 밤을 새웠고, 부스스 새벽에 깨어 실눈으로 봐도 선배는 여전히 중얼중얼중얼 영어를 반복하며 뱉고 뱉고 또 뱉었다.
아침이 되어 먼저 말끔히 씻고 회의장으로 출근하면서도
”오늘도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사진 찍어 보내줘! 너라도 행복해야지. 무슨 일 있음 바로 연락하고!“
하며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게 인사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그땐 그 표정에 얼마나 많은 게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지금이라면 선배가 너무 안쓰러워 안아주고, 응원해 주고, 대신 내가 다 해주고 싶었을 텐데.
그렇게 우린 열흘간 선밴 호텔 심사장으로, 나는 관광지로.
각자의 출근과 각자의 퇴근을 하며 부부처럼 지냈다.
추운 겨울, 삭막한 회색빛의 베를린.
선배와 함께 먹었던 가장 기억나는 음식은 독일 학센도, 핫도그도 아닌 뜨끈한 쌀국수다. 후배는 돈 한 푼도 못 쓰게 하며 밥이고 간식이고 늘 다 사주던 선배는, 쌀국수를 먹으니 그나마 속이 좀 따뜻해진다며 간만에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어쩌면 그날은 선배에게 좀 더 고단한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눈치는 밥 말아 먹고 첫 해외여행에 들뜬 나는, 겨우 퇴근한 선배에게 오늘 있었던 여행담을 신나게도 풀어댔더랬다. 동독과 서독 분단선에 가서 본 풍경, 베를린 상수시궁전의 우아함, 말로만 듣던 독일 생맥주의 풍미, 공식 기념품점에서 산 우산 등. 심지어 2박 3일간은 그런 선배를 베를린에 내버려두고 신나게 국경을 넘어 체코 프라하까지 갔다 왔으니… 선배는 그저 천사였고, 나는 그저 천사가 천사인 걸 알고 내 맘대로 구는 신입의 탈을 쓴 악마였다. 진짜 할 수만 있으면 과거의 나를 호텔 침대에 매달아 곤장을 후려 쳐주고 싶은 심정.
늘 호텔방 그 좁은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여있던 페이퍼들,
잠깐 눈붙일 때마다 끙끙 앓던 잠꼬대,
수화기 너머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던 목소리,
그럼에도 나에겐 늘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웃음을 잃지 않던 선배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토록 열심히 한 이유가 뭐였어요?’
‘어차피 우린 직장인인데. 그냥 대충하고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난 나 같은 신입 데리고 가면 진짜 패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안 그럴 수 있었어요?’
어느덧, 올해 나는
베를린으로 떠났었던 딱 그 선배의 연차가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해외 출장을 앞두고 있다.
큰 공연이라지만, 어느덧 모시고 가는 선배들보단 데리고 가는 후배들이 훨씬 많은 연차다.
많이 봐왔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선배 피디의 얼굴만 쳐다본다.
결정을 해야할 때면, 모두가 선배 피디의 입만 바라본다.
이젠 너무 안다. 도망가고 싶은 그 마음. 다 때려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그 마음.
똥그랗게 눈알만 굴리고 있어도 되는 신입이 너무도 부러운 그 마음.
그런 마음에도, 난 나의 선배처럼 괜찮은 ‘척’, 밝은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까.
나의 불안한 마음에, 다치지 말아야 할 후배의 마음까지 챙길 여력이란 대체 언제쯤 생길 수 있는 걸까.
하아. 아멘.
내 하반기 모든 운을 그저 무사 귀환에…
아니, 무사 녹화와 무사 방송에 몰빵해주세요.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고,
누구의 설렘도 실망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