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층간소음 연대기
이 이야기는, 내가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가락으로 이사를 알아보던 중 너무도 맘에 드는 오피스텔을 발견했다. 그 당시에도 새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출근하던 터라 남들처럼 직접 여러 군데 가보고 비교하면서 집을 보러 다닐 여력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회의 중간중간, 편집하다 말고 새벽에 틈틈이 네이버 부동산을 무한 새로고침 하던 차, 놀랍도록 내가 원하는 가격과, 위치와, 이사 시기의 집이 턱 하고 나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오. 은혜로와라. 이거슨 데스티니…!
누가 잡아 채갈라. 곧장 녹화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주말 밤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곧바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그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 건물이다. 역세권이라는 단어가 아까울 정도로 도어(우리 집 1202호 문짝) 투 도어(지하철 스크린도어 문짝) 2분 반 컷, 지어진 지 2년이 채 안 된 신축, 1분만 걸어가면 산책하기 좋은 큰 공원에 쫌 만 더 애쓰면 5분 만에 한강공원까지 쌉가능. 게다가 단지도 커서 1층엔 카페, 빨래방, 미용실, 약국, 편의점, 은행까지 없는 게 없는 1인 가구에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기존 세입자 부부가 청약 당첨이 돼서 중간에 나가는 하는 바람에 같은 평수의 다른 집들보다 전세도 훨씬 저렴했으니 크흐-. 은혜로와라. 내 손꾸락 칭찬해. 이렇게 바쁜 와중에 혼자서 집도 턱턱 잘 구하고. 으른이 되어가는구나-. 실로 오랜만에 스스로를 칭찬할 일이 생겨 자기애 풀충전. 비록 80% 전세대출을 풀로 땡긴 남의 집이자 은행 집이었지만. 호호.
그다음 주. 계약금 송금 후 실제 눈으로 보게 된 나의 데스티니 집은 다행히 내부도 괜찮았다. 볕도 잘 들었고, 신축이라 모든 게 새것인 데다 심지어 앞 세입자분들께서 1년간 환경호르몬을 싹- 흡수하고 가주신 터라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내 심장을 강하게 때린 게 있었으니 바로 탁 트인 뷰. 손톱만큼이지만 머얼리 내다보이는 푸른 산이 맘을 편안하게 했고, 앞에 거슬리는 건물도 없어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고요함 그 잡채였다. 이 큰 우주 속에, 먼지 티끌 같은 내가 진짜 오롯이 혼자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가진 돈에 비해, 고를 수 있는 집에 비해 훨씬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 이 집에서라면 나는 진정한 힐링을 누릴 수 있으리라-. 퇴근 후, 아늑한 조명 아래 TV에선 유튜브 에센셜 음악이 흘러나오고, 소파에 편히 누워 먹는 초코송이와(반드시 얼려서 먹어야 함) 커피 우유 한 잔. 크흐-. 아무에게도 방해받을 수 없는 조용한 나만의 아지트.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다음 날, 퇴근 후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쿵, 쿵, 쿵, 쿵, 쿵”
“끼-익”
“쿵. 쿠궁”
뭐지. 윗집도 오늘 새로 이사 오신 건가.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근데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어제 시끄러웠을 텐데. 짐을 옮길 수도, 대청소를 할 수도. 다 같이 모여 사는 곳이니, 이런 사사로운 것쯤은 차가운 도시 여자로서 참아 줄 수 있지. 호호.
대신 난 내 TV 볼륨을 더 키웠다. 그저 새집에 이사 왔다는 낯선 설렘과 적응의 재미로 며칠간의 행복을 더 누리며.
하지만 늘어지게 늦잠을 자던 이사 후 첫 토요일 아침. 쿵쿵거리는 소리에 도무지 침대에서 더 뒹굴거릴 수 없게 된 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이웃 간 살인을 부른다는,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층간소음인가. 근데 이렇게 심하다고?
일주일 정도 지내다 보니, 쿵쿵거리는 벽에서의 울림 뿐만 아니라 쾅-하고 문 닫히는 소리, 이따금 샤워기나 변기를 사용할 때 나는 물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와. 잘못 걸렸다. 이거 뭐지.
평소 카페에서 의자 끄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다니는 소리 등에도 예민한 나였기에, 혼자 있는 집에서의 낯선 소음이 감지된 순간, 굉장한 불쾌함이 치밀었다. 내 집인데. 나만의 공간인데. 내 통제하에 모든 것이 질서 있게 평화로와야 할 내 집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의 불쾌한 소리를 ‘당해야만’ 한다니. 내 온 신경은 언제 어디서 날지 모르는 그 소음을 쫓기 시작했다.
특히나 다른 소리는 다 참아줘도, 그 묵직한 발망치 소리.
“쿵. 쿵. 쿵. 쿵.”
이 발뒤꿈치의 울림은, 여러 층으로 켜켜이 쌓여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압축적 고도성장국의 상식적이고 선량한 시민이라면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유의해야 할 최소한의 배려와 매너 아니던가!!! 내 밑에 다른 이웃이 산다는 기본 인지 감수성만 있어도, 얼마든지 슬리퍼 착용만으로도 가릴 수 있는 매너인 것을!!
내 모든 촉수가 소음을 통해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쿵. 쿵.]
이 묵직함은 여자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백퍼 남자 (신원 추정)
[쿵. 쿵. 쿵. 쿵. 쿵.]
아하. 지금 방에서 거실로 걸어갔다 갔네. (위치 추적)
[끼익- 끼긱 끽]
의자를 밀지 말고 들라고!!! 의자 밑에 테니스공(!) 붙이는 건 기본 아냐?(행동 감지)
[문 쾅-]
이제 출근하니? 오늘은 좀 늦구나(루틴 파악)
혼자 사는데, 누구와 함께 사는 기분이다.
혼자 살지만, 그럼에도 더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 이 집을 택한 건데 시작부터 망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좋아. 전쟁이다!!!!
(박력있게 쾅.쾅.쾅.)
"띵동띵동~ 나와 1302호 이 X새끼야!!"
‘누...누구시죠?’
"띵동띵동~"
‘(둥절)...?’
"누구긴 개뿔! 네 발밑에서 괴로워하는 아랫집 이웃님이시다. 빨리 안 나와!
어디 집구석에서 런웨이를 하고 자빠졌어!!! 어디 그 잘생긴 발뒤꿈치 한번 보자 얼른 안 나와!!!"
...
...라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내가 깽판 칠 순 없는 노릇이다. 하. 어떡하지.
그래서 더욱 스마트하고 세련되게 고민한다.
‘어떻게 조질 것인가.’
차가운 도시 여자로서 어떤 방법을 써야 품위와 체통을 잃지 않고 1302 그놈에게 당혹감과 모멸감을 주어 사태를 안전하고 쾌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1. 건물 내 안내방송 : 아무도 안 듣는다. 정작 1302 그놈은 자기 들으라고 하는 건 줄 모를 거다.
2. 경비실 전화 :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유난한 사람 취급받을 수 없다. 일단 보류.
3. 직접 방문 : 1302 그놈이 생각보다 무섭게 생겼으면 … 울지도 모른다. 안돼 안돼.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부탁을 공손하게 담아 손 편지를 써서 슬리퍼 선물과 함께 1302호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AI시대에 진심을 눌러 담은 손 편지는 1302놈에게 나의 고통이 절절하게 전달될 것이고, 슬리퍼를 선물한다는 건 ‘쿵쿵대지 말라’는 부정의 메시지보다는 ‘이걸 신고 따뜻하게 지내주세요’라는 긍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터다.
…와씨 나 천잰데? 이 21세기에도 갬수성을 잃지 않는 우리네 참된 이웃의 모습이라니…! 몽글몽글.
자, 이제 남은 건 전달의 방법과 타이밍이다.
발망치 소리가 나는 시간대와 윗집 불이 꺼지는 시간 등을 주기적으로 확인한 후, 1302이 집에 주로 상주하는 시간대를 파악해 이 선물 폭탄을 언제 전달해야 효과적일지 고민했다. 다급한 출근길에 발견하면 1302님 기분이 잡쳐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그가 퇴근한 후 여유로운 시간대에 발견할 수 있게끔 조심스럽게 현관문 문고리에 투척하는 전략. 하. 이렇게 하면 감히 산타도 걸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잡힌 D-day.
내 성별과 신상이 털리지 않기 위해 전 국민이 다 쓰는 이마트 쇼핑백을 골라 다이소 편지지에 쓴 손 편지와, 270mm의 뽀송한 슬리퍼, 그리고 쇼핑백 빈 공간이 아쉬워 밀어 넣은 초코과자를 담아 놓고는 조용히. 다들 출근하고 없는 오전 11시께 1302호 문고리에 걸어두고 튀었다.
하악하악. 요동치는 새가슴. 오늘 밤이면, 1302가 퇴근 후 이 폭탄을, 아니 쇼핑백을 확인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반응은 직후 소음의 정도로 파악이 될 것이고, 소음이 줄어들면 ‘콜. 접수’의 뜻. 반대로 만약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새가슴인 나는 폭탄을 걸어두고 출근한 하루 종일 걱정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설마. 내 악필 때문에 편지를 못 읽고... 뭔 소린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겠지?
하악. 되려 미움만 사서 더 크게 쿵쿵 뛰어다니는 거 아냐?
설마. 또라이한테 잘못 걸려서 나 보복당하면 어떠카지!!
하악. CCTV에 내 모습이 다 찍혔을 텐데. 이러다 괜히 내 신상만 털리는 거 아니고?
설마. 퇴근해 보니 내 문 앞에 막 똥 뿌려져 있고 이런 거 아니겠지!!!!
하악. 괜히 까불었나?? 그냥 참고 살걸 그랬나?? 엄마 나 무서워. 어쩌지!!! ㅠ_ㅜ
일을 끝내는 둥 마는 둥.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던 난, 정신없이 퇴근해서 12층이 아닌 13층에 내렸다.
조심스레 엘리베이터 쪽 벽 뒤에 숨어 고개를 쑥- 빼고 1302호 문짝을 흘깃 훔쳐본다.
어랏...?
내가 아침에 걸어둔 쇼핑백이 그대로 있다. 뭐야. 아직 퇴근을 안 한 건가? 아니면... 보고도 그냥 가만 냅둔건가?.. 편지를 읽긴 한거야? 아님 알맹이 다 가져가고 쇼핑백만 그대로 걸어둔 건 아니겠지? 그럼 내가 수거해야 하나? 슬쩍 수거하려다 마침 문 열고 나온 1302 놈이랑 마주치면 그땐 뭐라고 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계단을 통해 12층으로 돌아온 나.
집에 들어가니 사방이 조용하다. 발망치 소리도, 물소리도 없이 정적만이 집 안에 머문다. 그토록 원했던 고요함인데. 되려 맘은 요동을 쳐서 이건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1302는 퇴근을 안 한 걸까. 자정이 다 됐는데. 멀리 출장 가거나 해서 오늘은 집에 안 들어오는 건가. 아니면 편지도 읽고, 내가 준 슬리퍼도 신고서 미안해서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건가. 상상에 망상을 더해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귀가를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날은 촬영이었다.
늦게 일어난 덕에 어제의 폭탄 선물은 생각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진이 빠져 집에 돌아온 난, 문 앞에 걸려있는 낯선 무지 쇼핑백을 발견했다.
...!!! 뭐지!
놀라서 열어본 쇼핑백 안에는 작은 메모지와 함께 비타민C 건강식품이 놓여있었다. 하아. 일단 똥 테러도 폭탄도 아니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문을 열고 들어가 옷과 가방도 벗지 못한 채 읽어내려간 편지는 글씨체부터 너무 따수웠다.
안녕하세요 1302호입니다.
먼저 이렇게 편지를 받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제가 워낙 집에서도 가만히 못 있고 돌아다니는 성격인데
신축인지라 소음이 발생할 거란 건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 때문에 많이 괴로우셨다니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할게요. 주신 슬리퍼도 잘 쓰겠습니다. 과자도 감사해요.
날이 많이 춥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뿌엥-
살아있다 살아있어. 우리 민족 인류애 ㅠㅠ 그래,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야 엉엉.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앞으로 층간소음이 줄어들 것이라는 목표 달성의 성취감보다, 나의 의도가 오롯이 전달되었고, 그 의도를 반영하겠다는 이 상식적인 피드백에 너무도 큰 감격이 몰려왔다. 층간소음 관련된 흉흉한 소식들을 뉴스에서 너무 많이 접해서인지, 이렇게 얼굴 모르는 이웃과 글자로 소통했다는 것 자체가 이 연말에 사랑의열매 이상으로 폭발적인 이웃 사랑이었다. 심지어 손 편지 답글이라니. 아무래도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확연한 여성의 향기는 내 상상 속 1302호를 소도둑 같은 100kg 깡패에서 얼굴도 마음도 글씨도 예쁜 장원영으로 변신 시켰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슬리퍼 좀 작은 걸로 살걸. 호호.
그렇다면 폭탄 선물, 아니 장원영 사태 그 후, 나는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었느냐?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물론 첫 주 정도는 정말 오랜만에 혼자 사는 사람 집답게 고요했으나, 그 뒤로도 미약한 쿵쿵 소리나 물건 끄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본래 사람 습관이란 게 한 번에 바뀌긴 어려운 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발뒤꿈치로 걸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걸음걸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운 여름철까지 슬리퍼를 억지로 신기란 이타심만으론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층간소음이 디폴트가 된 채 그곳에서 4년을 살고, 집주인의 실거주 이슈로 나는 같은 건물에서 층만 바꿔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 이번엔 5층. 그래도 동네는 살기 좋으니, 호수를 옮기면 층간소음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봤으나 역시나. 뽑기 똥손인지라 그런지 어쩜 골라도 또다시 발망치 윗집을 만나게 되었다. 분명 호갱노노에는 ‘공원이 가까워 살기 좋아요’ ‘깨끗하고 조용해서 너무 좋습니다’ 등의 후기들만 올라와 있는데 왜 나는 매번 존재감 어필 넘치는 윗집 이웃님들만 골라 만나게 되는지.
1302와 달리 이번 607의 특장점이 있다면 자기 계발에 정말 열심히라는 거다. 화장실에서 경제 유튜브 채널을 1.5배속 정도로 크게 틀어놓고 출, 퇴근 준비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이용하는지. 바쁘다 바빠 현대인들의 엄청난 멀티플레이어에 나 또한 폭풍 자극을 받게 된다.
가끔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 경비실을 통해 연락을 하면
‘어머나, 요새 살이 쪄서 스테퍼를 샀더니 거기서 나는 소린가 봐요. 죄송해요’ 혹은
‘제가 요새 일이 너무 많아서 밤늦게 집안일을 하다 보니 죄송해요’ 정도다.
그래. 뭐 어쩌겠는가. 내 주변 이웃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국가 경제에 열심히 이바지하고, 고령화 시대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데. 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바짝 정신 차려야 할 노릇이다.
그러던 며칠 전,
난데없이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TV에는 온통 뉴스와 속보뿐이고, 인터넷에는 ‘밤 11시 이후 통행금지’라는 시뻘건 자막의 가짜 뉴스가 돌았다.
‘뭐야. 이 21세기에 밖에도 나가지 못한다고? 지금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창밖을 내다보니 사위가 너무도 조용하다. 흔하던 배달 오토바이 소리도 들리질 않고, 사람 하나가 지나다니질 않고, 1층 맥줏집 음악 소리도 들리질 않는다. 늘 쿵쿵대던 윗집마저 사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조용하다. 뭐지. 이 불안한 정적은.
“카톡 카톡”
자정 넘어 울리는 메시지에는 온통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만 쏟아져 나온다.
“공연, 행사 모두 취소 중이래요. 연말 시상식 어떻게 되는지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타사 팀은 낼 답사 가는 거 다 취소래. 너네 회사는? 방송 어떻게 한대?”
“당장 이번 주 예능 결방 소리 나오겠다. 일단 상황 보자”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럴 때.
혼자 사는 1인 가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나만큼이나 누군가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동질감, 그 또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일체감을 확인하고 싶은 거다. 네모난 TV나 핸드폰 창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허상이 아닌, 실제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데서 나오는 안도감이 절실한 거다.
모두의 핸드폰에서 재난 문자가 크게 울려 퍼졌던 어느 날 아침 7시의 공포처럼, 이 두려움을 나만이 느끼는 게 아니란 게 확인이 되어야 괜찮다는 안도감이 들 텐데, 이렇게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상식적인 그림이 눈앞에서 펼쳐진 지금. 사위가 무서울 정도로 너무 조용한 이 상황이 문득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거기 누구 없어요..?
어쩜 창밖으로 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인다.
나가볼까. 아냐. 괜히 뭘....근데 설마 진짜 11시 넘어서 돌아다니면 다 잡아가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럴 때 윗집에서 익숙한 발망치 소리라도 들렸으면, ‘아, 저 사람도 지금 속보 보면서 화내고 있겠구나’하고 상상이라도 해서 사람의 온기라도 느껴볼 텐데. 되려 이 적막을 깨는 건 멀리서 들리는 무서운 헬기 소리다.
이런 순간에야 비로소 깨닫는 게, 바로 일상의 소중함이다.
우리가 늘 느끼는 소음은, 어쩌면 내가 별 탈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다행스러움 일 것이다. 늘 들리던 배달 오토바이 소리도, 누군가 술에 취해 흥겹게 부르는 노랫소리도. 윗집의 익숙한 발망치 소리도. 그 순간순간은 짜증 나고 싫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건 평소의 규칙과 패턴 안에서 일상이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다.
그다음 날 아침.
파이팅 넘치게 쿵쿵거리며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화장실로 출근을 준비하는 607의 발소리에 잠에서 깬다. 이럴 수가. 하루아침에 세상이 아무 일 없었단 듯이 다시 돌아왔다. 오늘따라 윗집의 발망치 소리가 얼마나 고맙던지. 그래, 나도 힘내서 얼른 출근해야지. 출근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사무실 밖 늘 익숙했던 시위소리가 요즘 따라 더욱 크고, 어수선해지겠지만 그래도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층간소음이야 뭐. 이젠 하도 익숙해져서 괜찮다.
강남의 그 비싼 아파트들도 층간소음은 다들 있다고 하니, 어쩌면 우린 모두가 평등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그럼에도, 다음 집은 조금은 덜 파이팅 넘치는 윗집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고,
그럼에도, 다음 집은 발망치 소리가 조금은 분산되는. 지금보단 더 넓은 집이었음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이 벌고, 더 열심히 모아야 한다.
나도 607을 따라 열심히 경제 유튜브 보며, 멀티태스킹 하며. 자기계발해야겠다. 쿵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