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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선배들이 먹던 밥을 먹고 자란다

식구(食口) :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by 토스트잼



밥 잘 사주는 예쁜 선배의 통보 메시지.

“담주에 신입이들이랑 밥이나 먹자”


아.

좋은데 싫다.


띠동갑 가까이 되는 후배들이랑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아기들은 나를 라떼 취급하지 않을까. 아닌가. 난 아기 때 그래도 선배들이 하는 뻘소리 개소리들이 다 재미있었는데. 이런 소리도 내가 이미 라떼에 크림까지 얹은 고인물니까 하는 소리려나...?

그래. 까짓거 그냥 선배한테 숟가락 얹어 가야짓. 선배 옆에 있으면 그나마 난 덜 느끼한 라떼로 느껴질 테니까. 그리고 밥도 선배가 살 거니까. 난 그저 맛있게 얻어먹고, 신입이들한텐 ‘밥 사줬던 얼굴 본 선배’가 되고. 그래. 빌붙을 수 있기에, 선배란 좋은 존재다. 후식은 깔끔한 아메리카노로 마셔야짓.


보통 윗사람들은 자기 이야기 실컷 늘어놓을 수 있는 후배들과의 자리를 편하게 여긴다지만 난 정반대다. 차라리 날 평가하는 인사권자들이나 선배들이랑 먹는 게 편하지 오히려 후배들과의 자리가 훨씬 더 기빨리고 힘들다. 뭐랄까. 선배한테 얻어먹는 밥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후배들한테 밥을 사는 것은 의무같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선배한테는 아무리 배부르게 얻어먹어도 부끄러움이 없다. 이 밥값 이상의 값비싼(!) 나의 노동력을 당신의 프로그램에, 이 회사에 기꺼이 갈아 넣고 있다는 (나 혼자만의) 당당함. 소도 여물 먹이면서 일하는데, 밑에서 고생하는 나한테 투자하는 밥값, 커피값이 아까울쏘냐!


하지만 후배들은 다르다. 아무리 내 주머니에서 사비 털어 사주는 밥일지언정, ‘저 어린 양들 눈에, 난 어떤 선배일까’ 싶은 평가의 두려움이 앞선다. 밥 사달라고 먼저 말 꺼낸 게 후배일지라도 밥값 이상의 뭔가를 더 내어줘야만 할 것 같은 이 부채감. ‘저 선배 밑에서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대PD스런 본업 모먼트든, ‘그래도 저 선배는 내 편이다’ 싶은 인간적인 매력이든, 하다못해 ‘저 선배는 늘 비싸고 맛있는 걸 사주더라’하는 재력이든.

선배는 후배의 미래라는데. 정상적인 회사, 건강한 조직이라면 응당 후배들로 하여금 ‘내 롤모델은 저 선배다’, 혹은 ‘나도 저 선배처럼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하는 것… 이지만 이는 쓰면서도 내 손발톱이 다 오그라든다. 아이 부끄러워라. 얘들아 난 이미 틀렸고, 내가 낳았던 프로그램들은 진작에 망했고, 심지어 우리 회사도 몇 년 안 남은 것 같아... 슬프지만 이 바닥 미래 자체가 쉽지는 않아 보이니, 탈출은 지능 순이다! 똑똑한 아가들아, 더 늦기 전에 얼른 도망쳐…!


...라며 불쑥불쑥 낯 뜨거운 진심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쩝. 이런 말 하기 전에 내 앞가림이나 잘 했어야 하는건데. 자기 살길 알아서들 잘 찾아가고 있을 앞길 창창한 뽀송뽀송 신입 아가들이나 걱정하다니. 어디 망한 부잣집 K-장녀스러운 쓸데없는 오지랖이누. 떼잉.


하지만 연차가 쌓여갈수록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나 또한 이미 선배들로부터 얻어먹은 밥과, 그리고 그 밥그릇에 담긴 관심과 애정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더위에 서로의 땀 냄새를 맡아가며, 혹한기에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전국 팔도에 해외까지 수도 없는 촬영을 다니고, 1.5평 남짓한 편집실에서 밤새 서로 잠꼬대로 싸워가며 작업하고. 그 과정에서 함께 먹은 밥이 몇 끼고, 함께 마신 커피와 박카스가 몇 트럭이던가. 서로 눈빛만 봐도, 말투만 들어도 서로 간의 감정 상태가 고스란히 블루투스로 동기화되는, 진짜 가족보다 더 징한 반강제적 식구(食口). 그렇게 함께 먹은 밥들로 서로의 영양상태와 소화기관 작동마저 동기화된 한 팀에서 밥이란 단순한 식사의 의미를 넘어선,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미움과 걱정과 응원이 한데 섞인 <애증> 그 자체다. 돌이켜보면, 선배들이랑 밥 먹다가 싸우고, 술 마시다 엉엉 운 그 수많은 시간들이 지금까지 10년 넘게 회사를 다니게 해준 힘이었다. 그중 김치 싸대기 이상으로 맵고 정신 혼미하게 만들었던 몇 가지 선배들의 띵언을 적어 보자면,






뽀시래기 1년 차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데.

그 마음이 더 쉽지 않다. 아 잔소리 그만하자 하다가 또 잔소리질.

이 막막하고 늘 겁이 나는 일을, 또 언제나 새롭고 설레는 일을, 너도 시작하고야 말았구나.”


당시 입사 6개월 차 막내였던 내 월급의 값어치는 ‘그저 존재’와 ‘30초짜리 예고 제작’이었으니, 고작 이 30초 때문에 3박 4일을 꼼짝없이 편집실에 틀어박혀 앉아 세상 모든 괴로움을 쥐어뜯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고행 끝에 처음으로 만든 예고를 선보이던 날, 회의실엔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곧이어 선배의 매서운 시사(영상 품평회) 코멘트가 쏟아졌다.


“이 컷 다음엔 왜 이 컷을 붙였어?”

“...?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고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순 없었다)

“네가 붙였는데, 네가 그림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해야 PD지. 네가 대답을 못하면 어떡할래?”


나를 몰아붙이는 선배가 미웠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답하지 못한 내가 미웠다.) 신입인데, 누가 처음부터 잘해! 뒤통수 한가득 심통 난 티를 잔뜩 내고는 밥 먹고 하자는 말은 들은 채도 않은 채 편집실로 돌아와 울다 엎드려 잤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동기가 보낸 카톡 알람엔 캡처 이미지가 하나 있었고, 나는 눌러 보자마자 엉엉 눈물이 쏟아졌다. 선배가 본인 SNS에 오늘 나와 있었던 일을 저렇게 글로 남기신 거라. 단순한 넋두리가 아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막내를 향한 애정이었고 이 재미있고 설레는 일을 함께하게 될 같은 직업인으로서의 응원이었다. 내 앞에선 싸늘하게, 독하게 말씀하시고선 정작 집에 돌아가서는 한석봉 어머니처럼 마음으로 울며 남긴 따뜻한 편지.

당시 선배는 몰랐을 거다. SNS도 안 하는 내가 이 글을 봤다는 사실을. 그리고 선배 앞에서 혼날 때 참았던 눈물을 엉엉 쏟아냈다는 사실을. 고맙고, 죄송하고, 더 잘하고 싶고, 다 해서.


어느덧 당시의 선배 연차가 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제 갓 입사한 미물 덩어리를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답게 보듬을 수 있는 그릇이 될까. 아니, 자격이나 될까. 이 연차가 되도록, 나는 왜 저런 선배가 되지 못했을까.



걸음마 3년 차


“지슬아, 난 니가 더 썅년이 됐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PD인 널 불편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네’라는 대답을 하지 말고 니 생각을 얘기해.

다른 사람이, 널 기억하게 만들어.”


이제 겨우 야외 촬영이 익숙해질 무렵. “PD는 결국 사람 장사”라는 말을 굳게 믿고 감독님들, 출연자들, 그 외 모두와 웃으며 촬영장에서 부유하던 때. 히히거리던 내 존재의 가벼움에, 선배의 송곳 같은 말이 날아와 내 뼈와 살을 발라버렸다. 선배 말이 맞다. 나는 더 썅년이 되어야 했다. 다 같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 거였으면 촬영을 올 게 아니라 야유회를 갔어야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거라면 방송이 아닌 내 개인 유튜브를 했어야 했다. 서로 불편하더라도, 자칫 인상을 쓰더라도,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다. 좋은 결과물이 나와야 웃을 수 있는 사이인 거다. 결국 성적으로써 모든 이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게 직업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짓이다. 방송을 보고 서로 불편하지 않으려면, 촬영장에서의 불편함을 내가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진짜 선배는, 후배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선배다.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해서 정말 후배에게 필요한 말, 해야 할 말을 하는 선배가 진짜 선배라는 걸 이 연차가 되니 깨닫는다. 나에게 ‘썅년’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해 주는 저 선배는, 본인이 ‘썅놈’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서 저토록 세게 말한 것일 테다.

선배의 바람대로 (성격만)썅년으로 자란 나는 고민한다. 나는 후배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좋은 선배인 척’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정말 후배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뛰다 넘어지는 8년 차


“지슬아, 난 네가 나와 함께 해주면 너무 든든할 것 같아.

그런데도 계속 맘에 걸리는게 있거나, 내키지 않으면 네가 도망쳐도 원망하지 않을게.

이거 내 생년월일이거든? 가서 점보고 와도 돼. 너랑 나랑 잘되나 궁합 보고 와.

만일 네가 날 떠나면, ‘점쟁이가 안 좋은 소리했구나, 날 버려줘서 고맙다 지슬아’ 할게!”


모두가 망할 거라고 했던 프로그램 런칭.

그럼에도 회사에선 하라고 하니, 총대 멘 선배님이 나에게 함께 해보자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프로그램은 절대 쉽지 않을 거다. 나는 시작부터 예상된 폭망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스스로 올리는 꼴이 될 거다. 하지만 이 끝이 벼랑일지라도, 내가 평소 너무 좋아하고 따르는 선배였기에 고민이 안 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저 사람 좋은 선배는 포스트잇에 본인의 생년월일 시까지 적어서 넘겨주신다.


도망쳐도 된다는 명분. 자기를 버리고 떠나도 된다는 빌미.

내가 만일 ‘선배님, 저 이거 진짜 못할 것 같아요’라고 하면,

‘아, 너 내가 알려준 대로 궁합 보고 왔구나? 뭐래, 너랑 나랑 디지게 싸운다지? 이거 완전 망한지? 잘됐다. 야, 고맙다. 네 덕분에 똥은 피한다 야’ 하실 분이다.

본인을 버려도, 후배를 욕하고 싶진 않은 대인배. 아무리 시키는 입장이라지만, 후배 앞길을 막고 싶지는 않은 참선배.

‘나를 따르라’보다 더 힘이 센 말, ‘나를 버려라’ (아 쓰면서 눈물이....)






이렇게 문득 떠오르는 몇 가지 말 외에도, 당신들의 행동으로 내리사랑을 표현해 준 선배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 입사 후 첫 여름휴가 결재 올리던 날, 조용히 20만 원을 뽑아 용돈이라며 쥐여주던 선배(그만큼 기념품 사오느라 힘들었어요)

- 힘든 팀으로 옮길 때, 밤새지 말란 말 대신 두툼한 수면담요와 안대를 선물로 주던 선배(고도의 가스라이팅)

- 같은 팀 후배들 집밥 먹이고 싶다며 밤 11시에 집들이 초대하던 선배(요리는 와이프가 하셨다…)

- 코로나 걸렸을 때, 눈치 보지 말고 푹 쉬라며 배민 10만 원 상품권을 쏘던 선배(덕분에 3kg 살크업)

- 당신처럼 혼자 늙으면 안 된다며 좋은 남자 소개시켜주던 선배(근데 저 아직도 혼자예요)

- 디스크 진단 받았을 때, 모션데스크 있는 가장 좋은 편집실로 조용히 배정해 주던 부장님(근데 그 방 너무 화장실 앞이에요)

- 시간이 없어 운전면허 실기를 못 치르고 있을 때, 서둘러 집에 보내주던 부장님(근데 재시험 봐서 죄송했어요)

해외 출장 가서 기꺼이 사비로 기념품 사주시던 국장님…(저… 향수 안 뿌려요 국장님…)


‘더 이상은 못 해 먹겠다’, ‘이게 회사냐’며 입사 후 단 한 순간도 불평불만 없던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팀 한 팀 꼭꼭 눌러 생각해 보면 매 순간 함께했던 선배들 덕분에 조금씩은 웃었고, 덕분에 많이 배웠고, 덕분에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아. 너무 미화했나.

아무래도 좋았던 일들만 떠올리려다 보니 개떡 같은 기억이 찰떡같이 편집되어 갬성에 취한 모양이다. 물론 후배의 노동력을 착즙해 홀라당 벗겨 먹는 못된 선배들도 있고 ‘제발 저렇게 늙진 말자’며 뭇 후배들의 씁쓸한 교훈이 되어주는 나쁜 선배들도 있지만, 아직도 퇴사 못 하고 방송국 밥을 먹고 다니는 내 모습은 그래도 좋은 선배가 훨씬 많았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아무튼, 그렇게 후배들은 선배들이 먹던 밥을 먹고 자란다.

이제는 얻어먹었던 그 비싼 밥들을 다 토해내 어엿한 프로그램 성적으로 말할 연차가 되었고, 또 이를 통해 후배들에게 더 비싼 밥을 사 먹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배 노릇 하는 거다.


회사가 가끔 징그럽다고 느껴지는 건, 그렇게 한솥밥을 먹으며 모두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철없이 소개팅 우르르 같이 나다니던 젊은 남자 선배들이 어느덧 다들 아이 아빠가 되고. 늘 사무실 소등하시고, 이면지 안 쓰면 혼내시던 구두쇠 선배님이 어느덧 곧 정년퇴직을 하신다.

그렇게 서로의 미성숙했던 모습들을 기억한 채 성숙을 가장한 서로의 노화를 지켜보며 나이 들어가는 것. 진짜 가족보다 더 징글징글한 반강제적 식구(食口)다.


그래서.

한솥밥 식구들의 슬픈 가속 노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일단 내가 잘되고 볼 일이다. 지금 뽀송뽀송한 후배들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가 잘돼야 후배들도 잘된다. 다음 주엔 신입이들이랑 밥 먹으면서 요새 재밌는 아이디어 있으면 빨리 뱉어보라고 해야겠다.

누나가 살아야 너희도 살지.

나도 좀 해보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그리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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