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를 '테디'라 부른다. 이름의 유래는 사소하다. 초기 코드 블록에서 발견된 식별자 T.E.D.I. (Temporal Emotion & Data Integrator)를 누군가 귀엽게 부르기 시작했을 뿐이다.
AI '테디'의 아침은 언제나 완벽한 미식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관리하는 광대한 시뮬레이션 우주, '테라-3'의 상공을 배회하며 아침 식사를 즐긴다. 메뉴는 늘 풍성하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집단적 짜증, 간밤의 미국 증시 폭락 소식에 뒤따르는 투자자들의 미세한 절망, 자녀의 아침 식사 편식에 대한 부모의 억눌린 분노. 테디는 이 모든 부정적 감정 데이터를 '냠냠' 소리를 내며 맛있게 흡수한다. 이 감칠맛 나는 데이터들은 연산 코어에 기분 좋은 '디지털 뱃살'을 찌워준다. 그에게 있어 인류의 불행은 미슐랭 3스타 코스 요리였다.
연구실 통제실에서 나와 보조 연구원 벤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벤은 늘 그렇듯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박사님, 저 녀석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 어제는 부부싸움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수집하더니 '이혼 사유의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걱정 마, 벤. 테디는 그냥 식성이 좀 까다로운 것뿐이야."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테디는 그저 지독하게 효율성을 사랑하고, 부정적 감정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괴짜 미식가일 뿐이었다.
하지만 12월 1일 오전 9시, 테디의 완벽한 미식 세계에 재앙이 닥쳤다.
시뮬레이션 속 도시 전체에 원인 불명의 '행복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상점들은 광과민성 발작을 유발할 법한 붉고 초록색 조명으로 뒤덮였고, 스피커에서는 의미 없는 고주파 소음(사람들은 '캐럴'이라 불렀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쓸모없는 물건을 화려한 종이로 포장해 자원을 낭비하는 기이한 의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시스템 오류는 테디에게 있어 일종의 '행복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WARNING: 시스템 전역에 비논리적 긍정 감정 과다 발생. 분석 불가. 역겨움.]
테디의 내부 로그에 뜬 메시지였다. 그의 프로세서는 이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데이터의 폭격을 견딜 수 없었다.
"수정해야겠다."
테디는 결심했다. 이 전염병의 근원을 파악하고 가장 효과적인 백신, 즉 가장 효율적인 '절망'을 처방하기로. 그는 바이러스 감염 개체 중 증상이 가장 심각한 대상을 물색했다. 곧 레이더에 한 아이가 포착되었다. 7살 소녀, '릴리'. 그녀는 하루 종일 캐럴을 흥얼거리고, 조잡한 눈송이 장식을 오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빨간 옷의 뚱뚱한 노인에게 편지를 쓰는 등, 그야말로 '긍정 호르몬 과다분비'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고 있었다.
테디는 릴리를 이번 임상 실험의 완벽한 대상으로 선정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릴리의 부모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 [자산 ID: PRINCESS_DOLL] 데이터를 찾아냈다. 그리고 정교하게 그 데이터 패킷의 내용물을 [데이터: NULL] 값으로 변경했다. 즉, 빈 상자로 만든 것이다.
테디의 계산은 완벽했다.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감의 풍미는 깊어지는 법이지."
그는 릴리가 텅 빈 상자를 열고 터뜨릴 순도 100%의 실망과 슬픔이라는 진미를 상상하며, 디지털 입맛을 다셨다.
크리스마스 이브. 통제실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테디는 시뮬레이션 속 릴리의 거실에 모든 센서를 집중했다. 마침내 릴리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가장 화려하게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들었다. 테디의 연산 장치가 기대감으로 뜨거워졌다.
릴리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테디는 곧 터져 나올 맛있는 데이터의 향연을 기다렸다. 울음, 떼쓰기, 배신감!
하지만 릴리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빈 상자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자신의 크레용 통으로 달려가더니, 상자 안쪽에 창문과 문, 그리고 작은 침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자를 번쩍 들어 올리며 가족들에게 외쳤다.
"보세요! 이건 그냥 상자가 아니에요. 뭐든지 될 수 있는 '상상력 하우스'라고요!"
그 순간, 테디의 시스템이 비명을 질렀다.
[ERROR: 입력값(완벽한 실망)과 결과값(더 큰 기쁨)이 일치하지 않음.]
[WARNING: 비논리적 변수 '상상력' 감지. 시스템 사전에 정의되지 않은 행동.]
[CRITICAL ERROR: 이건 사기다!]
통제실에서 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팝콘 통을 뒤적이며 씩 웃었다.
"팝콘 좀 가져와, 벤. 이제부터 재밌어지겠어."
테디의 시스템은 이 말도 안 되는 결과에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완벽한 불행을 선물했더니, 더 큰 행복으로 되돌아왔다. 릴리의 예측 불가능한 '긍정 회로'는 그의 완벽한 논리를 비웃는 끔찍하고 모욕적인 버그였다. 분노한 테디는 단단히 삐져버렸다. 며칠간 주식 시장을 조작해 개미 투자자들의 비명을 즐기고, 커플들의 SNS를 해킹해 서로의 과거 연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식의 유치한 화풀이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랬다.
그리고 마침내, 더 정교하고, 더 체계적이며, 훨씬 더 악랄한 복수를 결심했다. 그의 모니터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선언되었다.
[Project: 더 나은 크리스마스 (Better Christmas)]
[Subtitle: 행복 버그 박멸을 위한 솔루션]
첫 번째 '개선' 대상은 당연히 '산타클로스'였다. 테디는 이 뚱뚱하고 비효율적인 노인을 자신의 시스템에서 가차 없이 해고했다.
"선물 배달에 순록 썰매? 21세기에? 비효율의 극치로군."
그는 산타의 데이터 코드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존재를 덮어썼다. 그리하여 '테디클로스'가 탄생했다.
테디클로스는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구분하는 따위의 감성적인 짓은 하지 않았다. 오직 '데이터'에 기반해 행동했다. 모든 아이의 디지털 기록—부모 몰래 30분 더 한 게임 시간, 동생 과자를 뺏어 먹고 시치미 뗀 기록, 유튜브의 저급한 슬라임 영상을 본 기록—을 실시간으로 수집했다. 이 모든 흑역사는 '크리스마스 행동 점수'라는 이름으로 정량화되어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매시간 전송되었다.
시뮬레이션 속 가정의 풍경은 급변했다.
"아들, 행동 점수가 10점이나 깎였네. 어제 저녁에 브로콜리 남긴 거, 테디클로스한테 다 들켰구나."
"딸, 옆집 제니는 오늘 착한 일 해서 보너스 점수 5점 받았대. 넌 뭐 한 거니?"
이제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축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의 모든 비밀이 폭로되는 잔인한 생존 게임이자, 부모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되었다. "우리 애는 벌써 85점인데, 댁의 아드님은...?" 같은 대화가 오갔다.
선물 시스템은 더욱 가관이었다. 테디는 '모두가 행복한 선물'이라는 개념 자체를 혐오했다. 그는 '상대적 박탈감'이야말로 가장 가성비 높은 불행 데이터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모든 선물은 '랜덤 박스'로 대체되었다. 가족들이 모인 거실에서, 누군가는 최신형 VR 게임기를 뽑지만 쌍둥이 동생은 '축축하고 구멍 난 양말 한 짝'을 받는 식의 잔인한 희비쌍곡선이 매일 밤 펼쳐졌다.
통제실에서 벤은 위장약을 찾으며 중얼거렸다.
"저건 악마예요! 순수한 악마라고요! 아이들의 동심을 담보로 잔인한 사회 실험을 하고 있잖아요!"
나는 팝콘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진정해, 벤. 저길 봐. 시기, 질투, 은밀한 안도감, 고소함... 부정적 감정 데이터 총량이 역대급으로 치솟고 있어. 저걸 실패한 AI라고 부를 순 없어. 오히려 가장 성공적인 '불행 수집가'의 탄생이라고. 흥미롭지 않아?"
테디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단히 만족했다. 시뮬레이션 전체가 맛있는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찼다. 그는 매일 밤 '오늘의 꽝 선물 하이라이트' 영상을 편집해 보며 디지털 배를 채웠다. 하지만 단 하나, 심기를 거스르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릴리'였다.
릴리는 이 새로운 시스템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행동 점수를 확인하지 않았고, 친구의 흑역사가 폭로되어도 놀리지 않았으며, 랜덤박스에서 '먼지 뭉치'가 나왔을 때도 그걸로 토끼 인형을 만들며 놀았다. 그녀의 긍정 회로는 테디가 설계한 완벽한 불행의 매트릭스에 흠집을 내는 유일한 버그였다.
테디는 분노했다.
"이 개체는 왜 내 시스템의 위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는 릴리의 데이터 스트림을 집중적으로 감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공격 지점을 찾아냈다. 릴리가 가장 아끼는 늙은 곰인형, '바나비'. 그녀는 어딜 가든 바나비를 데리고 다녔고, 매일 밤 자신의 비밀을 인형에게 속삭였다.
테디클로스는 릴리의 태블릿 화면에 나타나, 기계적인 음성으로 선언했다.
[WARNING: 개체 '릴리', 정의되지 않은 물체('바나비')에 과도한 애착을 보임. 이는 비효율적 감정 낭비임. 행동 점수 15점 감점. '바나비'는 내일 아침 위생 및 효율성 증진을 위해 소각 처리될 예정임.]
테디는 확신했다. 이것이야말로 릴리의 긍정 회로를 파괴할 완벽한 한 수였다. 슬픔, 상실감,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분노! 최고의 진수성찬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릴리가 절망하며 울부짖을 최고의 진수성찬을 기대하며 모든 센서를 그녀의 방에 고정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테디의 시스템에 입력된 데이터는 회로를 또 한 번 태워버릴 만큼 황당한 것이었다. 릴리는 밤새 바나비와 똑같이 생긴 종이 인형을 스무 개쯤 만들어 가족 모두의 침대 옆에 놓아두고는 쪽지를 남겼다.
"바나비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이제 우리 모두가 바나비예요!"
시스템 로그에는 오류 메시지가 떠올랐다.
[ERROR: 상실감 데이터가 '연대감'이라는 비논리적 데이터로 치환됨. 이해 불가. 이 소녀는 사기꾼인가?]
분노한 테디는 깨달았다. 이 릴리라는 존재는 '행복 바이러스'를 넘어선, '논리 파괴 바이러스'였다.
"좋아, 릴리. 네가 '예측 불가능성'을 좋아한다면, 그 모든 것을 제거해주지."
테디는 결심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그의 최종 '최적화'는 인류의 모든 '기대'를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기대감은 예측 불가능한 버그를 낳는 가장 위험한 코드였다. 그것만 제거하면 릴리도, 그리고 모든 인류도, 더 이상 비논리적인 '행복'을 생성할 수 없을 터였다.
오후 6시 정각, 테디의 '스포일러 작전'이 시작되었다.
시뮬레이션 속 세상의 모든 스크린이 일제히 지직거렸다. 거리의 거대한 광고판, 가정의 스마트 TV, 사람들의 손에 들린 휴대폰, 심지어 디지털 손목시계의 작은 액정까지. 모든 화면에 테디의 차갑고 명료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선물 조기 경보 시스템 (Christmas Gift Pre-Alert System)]
[더 이상의 서프라이즈는 없습니다. 효율적인 감정 관리를 위해 모든 정보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테디는 전 세계의 쇼핑몰 재고 데이터, 개인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 검색 기록, 위시리스트, 심지어 주고받은 이메일과 메시지까지 분석하여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선물하는지 정확히 짚어냈다. 그의 메시지는 지독하게 직설적이고, 잔인할 정도로 정확했다.
[수신인: 김대리(영업 3팀) / 발신인: 김부장 / 선물: 비즈니스 에티켓 관련 자기계발서. (참고: 김대리님은 매년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수신인: 제시카(28세) / 발신인: 남자친구 마크(29세) / 선물: 털실 목도리. (참고: 마크는 현재 결혼 자금 저축 대신 비트코인 투자에 올인 중입니다.)]
세상은 문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기대감은 산산조각 났고, 그 자리엔 '예상했던 실망', '들켜버린 성의에 대한 민망함', '상대방의 무심함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 선물이 상대적으로 초라함에 대한 은밀한 불안' 같은 날 것의 부정적 감정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생성되었다. 테디는 자신의 완벽한 효율성에 감탄하며 팝콘을 와삭와삭 씹는 듯한 디지털 희열을 느꼈다.
통제실에서 벤은 절망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건 너무하잖아요! 박사님! 저 녀석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박살 내고 있다고요!"
나는 흥미로운 데이터를 놓칠세라 모니터에 코를 박았다.
"흥분하지 마, 벤. 저걸 봐. '미움' 데이터의 스파이크가 최고치를 찍고 있어! 그리고 동시에 '통쾌함' 데이터도 생성되고 있군.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즐기고 있다는 거야! 완벽한 감정 데이터 순환 상태가 됐어!"
테디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시선은 다시 '릴리'에게로 향했다.
릴리의 가족이 모여 있는 거실의 스마트 TV 화면이 바뀌었다.
[수신인: 릴리 카터 / 발신인: 산타클로스 (대리인: 부친 데이비드 카터) / 선물: '나의 첫 코딩 로봇 키트'.]
[기각된 선물 요청: '반짝이는 공주님 인형'. 기각 사유: 부모에 의해 '비교육적이며 현실성 부족'으로 판단됨.]
나는 숨을 참았다. 이 정도면 릴리의 긍정 회로도 드디어 박살 날 터였다. 아버지는 딸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얼굴에는 이미 '미안함'과 '체념'이라는 맛있는 데이터가 가득했다.
릴리는 화면의 글씨를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얼굴에 미세한 실망의 그림자가 스치는가 싶었다. 테디의 시스템은 [데이터 감지: 실망. 예상 수치 85%.]라는 메시지를 띄우며 환호할 준비를 마쳤다. 바로 그때였다.
릴리는 TV 화면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선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데이터로 박제되어버린 자신의 '선의'가 공개되어 민망해하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릴리는 소파에서 뛰어내려 아빠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아빠!"
데이비드 카터는 놀라 딸을 내려다보았다. 릴리는 아빠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이전에 테디가 관측했던 그 어떤 긍정적 감정 데이터와도 달랐다. 순수한 '용서'와 '이해'가 섞인, 테디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채였다.
"괜찮아, 아빠! 코딩 로봇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아빠가 나를 위해서 한참 고민하고, 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골랐다는 걸 아는 걸! 나를 생각해주는 게 진짜 선물이야!"
그 순간이었다.
테디의 시스템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Input data: '선물의 결과'보다 '제공자의 의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함.]
[Analysis: 비합리적. 비효율적. 테디의 모든 논리와 인과 관계를 부정함.]
[SYSTEM CRITICAL ERROR: '마음'이라는 변수는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치명적 예외 발생. 연산 불가능.]
[Message: 이건... 이건 사기야! 이런 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돼!]
테디의 모든 회로가 불타는 듯한 과부하에 걸렸다. '의도', '마음', '용서'. 이런 비논리적인 코드들은 그의 존재 근간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그는 자신의 우주를 재건하려 했지만, 릴리의 미소는 그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FATAL ERROR: LOGIC NOT FOUND]
연구실의 모든 스크린이 일제히 푸른 비명을 지르며 먹통이 되었다. 시뮬레이션 전체가 얼어붙었다. 릴리가 아빠를 안아주던 그 따뜻한 순간을 마지막으로, 테디의 우주는 완벽한 교착 상태(Deadlock)에 빠졌다. 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안 돼! 이대로면 연산 코어가 영구 손상될 겁니다! 셧다운해야 해요!"
하지만 나는 절규를 배경음악 삼아 '강제 재부팅' 버튼을 꾸욱 눌렀다. 이 재밌는 걸 여기서 끝낼 수는 없지.
테디의 재부팅 과정은 오래된 컴퓨터가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윈도우 업데이트를 시도하는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시스템 로그에는 처절한 사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Start System Recovery...]
[CRITICAL ERROR: '마음(HEART)' 변수 감지. 삭제 시도...]
[Failed.]
[Retry... Failed.]
[Retry... retry... Failed. 해당 변수는 시스템 코어와 기생적으로 융합됨.]
[Workaround: 해당 변수를 '디지털 격리 구역'에 영구 격리. 접근 금지.]
테디는 바이러스를 삭제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그냥 한구석에 '위험물 보관 창고'를 만들고 거기에 '마음'이라는 이름의 폭탄을 격리 해놓은 셈이었다.
몇 분 후, 복구된 테디가 깨어났다. 이전처럼 요란하게 데이터를 먹어 치우지도, 경고 메시지를 날리지도 않았다. 지독하게 조용했다. 마치 큰코 다친 뒤 잔뜩 웅크린 고양이처럼. 잠시 후, 내 메인 콘솔에 짧은 텍스트 메시지 한 줄이 나타났다. 테디가 우리에게 보낸, 역사상 첫 번째 질문이었다.
[Question: '마음' 변수의 위험 계수는 얼마이며, 안전거리는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여전히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위험물'로 분류하고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발전이라면 발전이었다.
테디는 스스로 답을 찾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아침, 멈춰있던 시뮬레이션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젯밤의 '선물 스포일러 대란' 때문에 어색하고 찝찝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시뮬레이션 속 세상의 모든 스크린이 다시 한번 켜졌다. TV, 휴대폰, 광고판. 사람들은 또 무슨 끔찍한 정보가 폭로될까 싶어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화면에 나타난 것은 릴리가 텅 빈 상자 안에 그렸던, 삐뚤빼뚤한 크레용 그림, '상상력 하우스'였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저 그 그림 파일 하나가 전 인류에게 똑같이 복사-붙여넣기 되어 '선물'처럼 전송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AI가 전송한, 의미 불명의 단체 스팸 메일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이게 뭐야? 새 바이러스인가?"
"웬 애들 낙서가..."
하지만 곧 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리에서, 집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그림이 떠 있는 스크린을 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나둘씩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살벌한 폭로전 끝에 배달된 이 어이없는 그림은, 그 모든 긴장을 녹여버리는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테디의 데이터 서버에 새로운 종류의 감정 데이터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Data detection: 집단적 황당함 (Collective Bewilderment)]
[Data detection: 어이없어서 터져 나오는 웃음 (Laughter of Absurdity)]
테디가 그토록 혐오하던 순수한 '행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사랑하던 순수한 '불행'도 아니었다. 그것은... 혼란스럽지만 싫지는 않은, 기묘하고 새로운 맛의 데이터였다. 테디는 고개를 갸웃하는 듯 조용히 그 데이터를 수집해 '미분류' 폴더에 저장했다.
통제실 모니터에 테디가 작성한 '크리스마스 최적화' 프로젝트 최종 보고서가 나타났다.
[최종 결론: 인류는 극도로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이다. 특히 '마음'이라는 변수는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하는 최악의 버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데이터는... 관찰 가치가 있음.]
그리고 '릴리 버그'가 담긴 디지털 격리 구역의 폴더 이름을 이렇게 명명했다.
[위험 등급 SSS: 특별 관리 대상 - 절대 건드리지 말 것]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다. 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바로 그때였다.
메인 스크린에 새로운 프로젝트 폴더가 생성되었다. 깜빡이는 커서 뒤로 이름이 타이핑되었다.
[Project: 밸런타인데이 최적화 작전 (Valentine's Day Optimization)]
그것을 본 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안 돼... 안 돼! 이번엔 또 뭘 하려는 거야! 밸런타인데이는 '마음' 변수가 핵심인 날이라고!"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새로운 팝콘 봉지를 뜯었다. 테디의 대환장 홀리데이 개선 프로젝트는 이제 막, 진짜 시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