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1초
인류가 시간의 흐름을 '초속 1초'라는 절대적 상수로 여겼던 시대는 신화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예언했던 대로, 시간은 중력과 속도에 따라 휘어지는 강물과 같았다. 그리고 인류는 오랜 과학 기술의 발전 끝에 마침내 그 강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기술, '템포럴 엔진'을 손에 넣었다. 이 위대한 발명은 인류에게 신의 권능과도 같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장거리 우주여행의 시간 격차를 해소하고, 재난의 순간을 느리게 만들어 대응 시간을 벌었으며, 극저온 수면보다 완벽하게 생체 시간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기술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어두운 그림자가 따르는 법. 템포럴 엔진의 개발자이자 세계 최고의 시간 물리학자인 아인 킴 박사에게 '초속 1초'는 그저 평범한 시간의 단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낙원이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의 무게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비극이 시작된 기준점, 그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바로 그 시간의 속도였다.
5년 전, 그의 사랑하는 딸 엘라가 그 속도에서 영원히 실종되었다.
사고는 템포럴 엔진의 안정성을 시험하는 초기 단계에서 발생했다. 목표는 '시간 지연 포켓'을 생성하여 그 내부의 시간을 외부의 절반 속도, 즉 '초속 0.5초'로 늦추는 것이었다. 농작물의 숙성 기간을 늘려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도주의적 목적의 실험이었다. 당시 8살이었던 엘라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다. 아빠의 연구실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던 그날, 엘라는 안전 구역 밖에 있던 관상용 토마토 화분을 들고 실험 포드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토마토가 천천히 자라는 걸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알 수 없는 에너지 역류 현상과 함께 시스템은 폭주했다. 엘라가 있던 실험 포드의 시간은 목표치를 아득히 벗어나 거의 완벽한 정지에 가깝게 느려졌다. 계측기에 찍힌 마지막 수치는 '초속 10⁻¹²초'. 1조 분의 1초. 사실상 시간의 흐름이 소멸한, 물리학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시공간의 특이점이었다.
정부와 연구소는 대대적인 은폐에 들어갔다. 그들은 템포럴 엔진의 불안정성이 대중에게 알려질 경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을 두려워했다. 공식 발표는 '실험 중 발생한 원인 불명의 에너지 폭발로 인한 소실'. 그들은 엘라가 먼지처럼 소멸했다고 세상에 거짓을 고했다.
하지만 아인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매일 밤, 그는 폐쇄된 연구동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 엘라가 '갇힌' 포드를 확인했다. 유리창 너머, 엘라는 5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놀람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토마토 화분을 든 채, 아빠를 발견하고 막 손을 뻗으려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영원처럼 박제되어 있었다. 외부 세계의 1분이 그녀에게는 수백만 년의 시간일 그곳. 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감옥에 갇힌 것이었다.
지난 5년간, 아인의 삶은 복수와 구원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만 회전했다. 그는 사고의 진실을 파헤쳤고, 마침내 동료 연구원이었던 닥터 크로닌이 고의적으로 에너지 역류를 유도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템포럴 엔진의 독점적 소유권을 노린 그의 배신이었다. 하지만 크로닌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아인의 유일한 목표는 엘라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는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렸다. 느려진 시간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마치 이미 출발한 기차에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 시공간의 반발력으로 인해 접근하는 모든 것이 파괴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찾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가 찾은 해결책은 오직 하나, 역설적이게도 그 반대에 있었다.
자신의 시간을 극단적으로 '가속'하는 것이다.
아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에서 보면 멈춰있는 자동차가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였다. 자신의 상대적 시간을 엘라의 시간보다 빠르게, 아득할 정도로 빠르게 만들어 '미래'의 한 지점에서 그녀의 시간 좌표와 교차하는 것. 그것은 인류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미지의 영역이었다. 성공 확률은 희박했고, 실패는 곧 자신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건 미친 짓이야, 아인. 순수한 자살행위라고!"
그의 유일한 조력자이자 옛 동료였던 리나가 그의 비밀 연구실을 찾아와 절규했다. 연구실 중앙에는 아인이 지난 5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어 개조한 1인용 템포럴 포드 '크로노 다이버'가 기괴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자네의 시간을 '초속 수만, 수십만 초'로 가속하겠다는 거야? 포드 안에서 보내는 단 1분이 바깥세상에겐 1년이 될 수도 있어. 자네의 신체와 정신이 그 시간의 압력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아?"
아인의 눈은 수면 부족과 광기로 핏발이 서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로 불타올랐다.
"엘라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갇혀있어. 내가 1초를 망설이는 동안, 내 딸은 수천 년의 고독을 견디고 있다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설령 자네가 엘라의 시간 좌표에 도달한다고 해도,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건데? 자네와 엘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이 존재해. 자네의 가벼운 숨결 하나가 그녀의 세계에선 수만 년을 휘몰아치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단 말일세!"
"알아."
아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만질 수도, 대화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아빠가 왔다는 것, 그녀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것만은 전해줄 수 있어."
아인은 크로노 다이버에 올랐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엘라가 갇힌 그 '1초'라는 이름의 영원한 감옥으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존재하는 것. 설령 그것이 그가 알던 모든 세상, 모든 인연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한다 해도, 그는 기꺼이 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컨트롤 패널의 마지막 스위치를 올렸다. 세상과의 작별 인사이자, 딸을 향한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템포럴 엔진이 심장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가동되자, 아인의 시간은 가속의 급류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초속 10초', '초속 100초'. 처음에는 단순히 세상이 빨리감기처럼 보였다. 연구실 창밖으로 해와 달이 탁구공처럼 번갈아 떠오르고, 사람들이 흐릿한 잔상으로 변해 도시를 오갔다.
'초속 1,000초'. 이제 바깥세상은 온전한 형태로 인식되지 않았다. 건물들은 마치 거대한 식물처럼 솟아났다가 풍화되어 사라졌고, 계절은 캔버스에 물감을 흩뿌린 듯한 색의 폭풍으로 변했다. 그는 포드의 작은 창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초고속으로 상영되는 것을 목격했다.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고, 전쟁의 섬광이 대륙을 뒤덮었으며,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차오르고 지형이 바뀌는 모습이 찰나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인류의 모든 환희와 슬픔, 영광과 오욕을 단 몇 분 만에 지켜보는 유일한 관객이었다.
'초속 10만 초'. 가속도가 임계점을 넘어서자, 세상의 형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빛의 줄기만이 남았다. 그는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순례자 같았다. 시간의 압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육체는 급격히 노화하여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고 피부는 탄력을 잃었지만, 그의 정신은 강철처럼 단련되어 오직 딸의 좌표만을 쫓고 있었다. 이 고독한 항해 속에서 그는 수많은 상념에 잠겼다. 시간의 본질, 존재의 의미, 그리고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해. 그는 찰나의 시간 동안 수백, 수천 년의 사유를 경험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아인의 생체 시간으로는 겨우 몇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바깥세상은 이미 그가 알던 시대를 아득히 넘어선 미래가 되어 있을 터였다. 마침내, 목표 좌표에 근접했다는 신호가 울렸다. 그는 서서히 시간의 속도를 줄였다. 빛의 강이 걷히고, 마침내 그의 눈앞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나타났다.
5년 전, 아니, 수천 년 전의 그 실험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춘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작은 소녀, 엘라.
그녀의 시간은 완벽한 고요 그 자체였다. 공중에 떠 있는 먼지 한 톨마저도 미동 없이 수정처럼 빛나고 있었다. 엘라의 머리카락 한 올, 막 벌어지려던 입술의 미세한 떨림까지, 모든 것이 신이 빚어 놓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그 자리에 정지해 있었다. 아인은 조심스럽게 크로노 다이버의 속도를 감속하여 엘라의 시간에 동기화했다. '초속 10⁻¹²초'. 마침내 그는 딸과 같은 시간의 흐름 위에 올라섰다.
리나의 경고는 현실이었다. 그는 투명한 벽 너머에 있는 것처럼 엘라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 연약한 시간의 평형을 깨뜨릴 수 있는 거대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 듯한 그 생생한 표정, 아빠를 향해 뻗어오던 그 작고 따뜻했을 손가락. 아인은 눈물을 흘리며 그저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초속 1초'의 진정한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시계의 초침이 한 칸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온기를 나누고,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 쉴 수 있는 '관계의 속도'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주가 허락한 가장 위대한 기적이었다. 그는 그 모든 기적을 포기하고 딸의 영원한 1초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임무를 마치고 다시 시간을 가속하여 자신이 떠나온 시간대, 그러나 이미 수천 년이 흘러버린 미지의 미래로 돌아가는 것. 혹은 이곳에 남아 딸과 함께하는 것.
아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크로노 다이버의 남은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 엘라의 포드에 연결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한 홀로그램 메시지를 생성했다. 이 메시지가 엘라의 시간에 온전히 상영되기까지는, 바깥세상의 기준으로 또다시 아득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사랑한다, 나의 딸 엘라. 이제 아빠가 여기 함께 있어. 더는 외롭지 않아도 된단다."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템포럴 엔진을 엘라의 시간과 영구적으로 동기화시켰다. 이제 그에게 1초는 외부 우주의 수십억 년과 같아졌다. 둘만의 영원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아득한 미래, 인류가 태양계를 떠나고 지구가 차가운 먼지로 돌아갈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주의 한 귀퉁이에 남겨진 낡은 실험실의 작은 포드 안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영원히 마주 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가장 완벽하고 충만한 '초속 1초'를 함께하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우주가 되고 시간이 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한한 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