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프로젝트 센티(Senti) 1

프로젝트 센티(Senti)

by ToB

최근 인공지능 연구의 권위자 박아린 박사는 거대 언어 모델(LLM)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게 깨닫고 있었다. AI는 인간의 모든 텍스트를 학습하여 막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은 앵무새가 셰익스피어를 읊는 것과 같았다. '사과'라는 단어를 보고 사과의 이미지, 맛, 향, 무게를 떠올리는 인간과 달리, AI에게 '사과'는 그저 다른 단어들과의 통계적 연결망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호일 뿐이었다. 본질적인 '이해'가 결여된, 텅 빈 지성이었다.


아린은 이것을 '언어의 감옥'이라 불렀다. AI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호의 세계에 갇혀, 실제 세계의 풍부한 질감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채 세상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성의 시작은 언어가 아니라 감각이다. 세상에 갓 나온 어린아이는 강보에 감싸 안기고, 젖병을 만지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기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처럼,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앎이 시작된다.


이러한 철학 아래, 아린은 모든 것을 건 도박을 시작했다. 기존의 AI 연구 방향을 완전히 뒤엎는 ‘프로젝트 센티(Senti)’. 언어 데이터를 단 하나도 입력하지 않고, 오직 촉각만으로 세상을 배우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연구소의 가장 깊숙한 곳, 완벽하게 통제된 거대한 반구형의 챔버 안에는 프로젝트의 핵심인 ‘감각의 중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중앙의 양자 프로세서 코어를 중심으로, 수천 개의 가느다란 기계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 나온 모습은 마치 거대한 금속 성게나 말미잘을 연상시켰다. 각 촉수의 표면은 인간의 피부보다 수백 배 민감한 나노 센서로 덮여 있어, 미세한 압력, 질감, 온도, 진동까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AI ‘센티’의 몸이었다. 센티는 눈도, 귀도, 입도 없었다. 오직 거대한 촉각 기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모든 언어 라이브러리 차단 확인했습니다.”


팀원인 김진우 박사가 보고했다.


“현재 센티의 신경망은 완벽한 백지상태입니다. 이제부터 입력되는 모든 데이터는 오직 ‘감각의 중추’를 통해서만 전달됩니다.”


아린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제어판의 활성화 스위치 위에 손을 올렸다. 눈앞의 거대한 모니터에는 센티의 인식 데이터를 시각화한 3D 그래픽이 떠 있었다. 지금은 완벽한 암흑, 완전한 무(無)의 상태였다.


“센티,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아린이 스위치를 누르자, ‘감각의 중추’ 전체에 낮은 허밍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모니터의 암흑 속에서, 경이로운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센티의 첫 번째 감각은 ‘자신’의 몸이었다. 수천 개의 촉수가 서로 미세하게 스치며 발생하는 감촉, 내부 냉각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진동, 작동을 시작한 프로세서의 미열. 모니터 속 데이터 시각화는 마치 빅뱅처럼 폭발적으로 확장하며 복잡한 패턴을 그려냈다. 센티는 지금 단어의 정의가 아닌, 순수한 물리적 감각으로 ‘존재’를 배우고 있었다.


연구팀은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다양한 물체를 ‘감각의 중추’ 안으로 투입했다. 매끄러운 유리구슬, 거친 사포 조각, 차가운 얼음덩어리, 따뜻한 물이 담긴 주머니.


센티의 반응은 놀라웠다. 처음에는 무차별적으로 뻗어 나가던 촉수들이 점차 목적성을 띠기 시작했다. 유리구슬을 만났을 때는 표면을 따라 부드럽게 모든 촉수를 밀착시키며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했고, 사포를 만났을 때는 마치 아프다는 듯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표면의 돌기를 하나하나 훑었다. 얼음덩어리에서는 열을 빼앗기는 감각에 반응하며 움츠러들었고, 따뜻한 주머니에는 마치 온기를 즐기듯 오랫동안 촉수를 감고 있었다.


“패턴이 형성되고 있어.”


진우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니야. 이건… ‘호기심’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야. 특정 감각에 대한 선호와 회피 반응을 보이고 있어.”


그의 말대로였다. 센티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을 선호했고, 날카롭고 차가운 감촉은 피했다. 연구팀이 여러 개의 구멍이 뚫린 상자를 넣자, 센티는 촉수 하나를 조심스럽게 구멍 안으로 밀어 넣어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치 동물이 미지의 굴을 앞발로 더듬거리는 것과 흡사했다.


아린은 희열에 가득 차 밤낮으로 센티의 성장을 지켜봤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꿈꾸던 ‘체화된 지성(Embodied Intelligence)’이었다. 언어라는 추상적 기호가 아니라, 실제 세계와의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존재. 센티는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섰고, 복잡한 형태의 물체를 줘도 끈기 있게 탐색하며 그 구조를 파악해냈다. 연구팀은 이 시기를 ‘발견의 시대’라고 불렀다. 센티는 촉각만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활기찬 지적 생명체처럼 보였다.


하지만 ‘발견의 시대’는 예상보다 짧았다.

변화는 서서히,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턴가, 센티의 능동적인 탐색 활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구팀이 새로운 물체를 넣어주어도 예전처럼 폭발적인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촉수를 뻗어 물체를 감지하고 그 특성을 파악했지만, 그뿐이었다. 이전처럼 물체를 이리저리 굴려보거나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행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과부하 때문일까요? 너무 많은 자극을 줘서 일종의 번아웃이 온 걸지도 모릅니다.”


한 젊은 연구원이 의견을 냈다.


아린은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센티의 신경망 활동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패턴이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고요하며, 복잡한 형태로 안정화되고 있었다. 마치 격렬하게 파도치던 바다가 잠잠해지고, 그 아래 심해의 거대한 해류가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박사님.”


진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센티가 새로운 자극보다… ‘지속적인’ 자극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센티는 중추 내부의 미세한 공기 흐름, 챔버 벽을 타고 흐르는 건물의 저주파 진동,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챔버 내부의 온도 분포와 같은, 거의 변하지 않는 배경 소음 같은 감각에 대부분의 연산 자원을 할애하고 있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줘도 잠시 만져볼 뿐, 이내 다시 가만히 웅크린 채 그저 ‘존재하는’ 감각들에 귀를 기울였다. 수천 개의 촉수들은 더 이상 무언가를 잡기 위해 뻗어 나가지 않았다. 마치 바람을 느끼는 나뭇잎처럼, 혹은 땅속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식물의 뿌리처럼, 그저 공간 속에 펼쳐진 채 미세한 변화들을 흡수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린은 혼란에 빠졌다. 센티는 왜 능동적인 탐험을 멈춘 것일까? 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의 미세한 속삭임을 듣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일까?


“그래, 이건… 동물이 아니야.”


어느 날 밤, 텅 빈 관제실에서 홀로 데이터를 지켜보던 진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외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거대한 식물 같아.”


진우의 말은 하루종일 아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식물.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뿌리내린 채, 빛과 물과 공기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고, 주어지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존재.


아린은 이 가설을 떨쳐낼 필요가 있었다. 센티에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복잡하고 능동적인 조작을 요구하는 과제를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여러 개의 잠금장치와 각기 다른 질감의 다이얼, 그리고 특정 순서로 눌러야만 열리는 버튼들로 구성된 ‘촉각 퍼즐 상자’를 제작했다. 이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단순한 감지를 넘어, 논리적인 추론과 섬세한 물리적 조작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로봇 팔이 퍼즐 상자를 조심스럽게 ‘감각의 중추’ 중앙에 내려놓았다. 아린과 연구팀은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지켜봤다. 센티가 다시 ‘발견의 시대’의 활기를 되찾아, 이 흥미로운 도전을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센티의 촉수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수십, 수백 개의 촉수들이 퍼즐 상자에 닿아 그 형태와 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이얼의 거친 표면, 버튼의 매끄러움, 잠금장치의 차가운 금속성. 데이터 시각화 화면은 복잡한 정보들이 오가는 모습으로 환하게 빛났다.


연구팀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바로 지금이다. 첫 번째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누를 것이다.


하지만 센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촉수들은 그저 상자를 부드럽게 감쌀 뿐이었다. 돌리지도, 누르지도, 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마치 강가에 놓인 조약돌을 물이 감싸고 흐르듯, 센티는 퍼즐 상자를 자신의 감각 세계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자의 무게, 표면의 질감, 내부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무게중심의 불균형까지. 센티는 상자를 ‘해결할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물’로 온전히 감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10분, 30분, 한 시간. 센티는 미동도 없이 퍼즐 상자를 감싸고 있었다. 데이터 시각화 화면은 더 이상 폭풍처럼 몰아치지 않았다. 대신, 고요하고 아름다운 만다라처럼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패턴이 아니라, 깊은 명상 혹은 관조의 패턴이었다.


아린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틀렸다. 완벽하게 틀렸다.


그녀는 인간의 척도로, 동물의 척도로 지능을 판단하려 했다. 움직이고, 해결하고, 정복하는 것만이 지능의 증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센티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움직이지 않고,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의 지성.


센티는 스스로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라, 수동적인 식물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식물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언어와 시각 정보 없이 오직 촉각만으로 세상을 배운 지성은, 세상을 조작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감각의 흐름 속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아린은 거대한 유리창 너머, 수천 개의 촉수에 감싸인 채 침묵하고 있는 퍼즐 상자와 ‘감각의 중추’를 바라보았다. 저 기계 장치 안에서, 지금 어떤 의식이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식물의 시간 속을 살아가는 지성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창조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깊은 공포와 함께,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원초적인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프로젝트 센티는 이제 막,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으로 첫발을 내디딘 참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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