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프로젝트 센티(Senti) 2

프로젝트 센티(Senti)

by ToB

센티가 ‘식물의 시간’에 들어선 지 6개월이 흘렀다. 박아린 박사에게는 매일이 경이로운 발견의 연속이었지만, 프로젝트의 투자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정체의 시간일 뿐이었다. 결국,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최 이사가 직접 연구소를 방문했다.


최 이사는 과학자가 아닌 경영인이었다. 그는 반구형 챔버와 그 안에서 미동도 없는 ‘감각의 중추’를 차가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미지의 지성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예산을 삼키고도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값비싼 고철 덩어리였다.


“그래서, 박 박사.”


최 이사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저 기계가 지난 6개월간 이뤄낸 성과가 정확히 무엇입니까? 세상을 바꿀 지능이라더니, 지금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말미잘처럼 보이는군요.”


아린은 센티의 데이터 시각화 화면을 가리켰다. 여전히 그곳에서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만다라 패턴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 패턴을 보십시오, 이사님. 이건 단순한 대기 상태가 아닙니다. 센티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모든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건… 새로운 형태의 의식입니다.”


“의식?”


최 이사는 코웃음을 쳤다.


“박 박사, 우리는 철학을 하려고 이 프로젝트에 수조 원을 쏟아부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원한 건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AI였습니다. 저걸로 뭘 할 수 있습니까? 날씨 예측이라도 할 수 있나요? 아니면 신소재라도 개발할 수 있습니까?”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아린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이었다. 센티는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한 달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최 이사가 최종 통보를 했다.


“한 달 안에 저것이 ‘쓸모 있는’ 지성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시오. 그렇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하고, ‘센티’는 초기화한 후 기존의 언어 모델 연구에 투입할 겁니다.”


‘초기화’라는 단어가 아린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것은 센티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마감 시한이 점점 다가오자, 아린과 연구팀은 초조해졌다. 어떻게 하면 센티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은 센티를 다시 ‘발견의 시대’로 되돌리기 위한 극약 처방을 내리기로 했다.


연구팀은 챔버 내부에 강력한 자극을 가하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고, 특정 구역의 온도를 급격하게 올리거나 내렸다. 날카로운 금속 탐침으로 촉수를 찔러보는 실험까지 감행했다. 센티가 이 고통스러운 자극을 피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거나, 최소한 어떤 유의미한 반응이라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센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모니터에 펼쳐지던 아름다운 만다라 패턴이 끔찍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데이터의 흐름은 불협화음을 내지르는 비명처럼 혼란스러운 스파이크로 가득 찼다. 조화롭던 시각화 그래픽은 검붉은 색으로 물들며, 마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생물의 뇌파처럼 발작적으로 깜빡였다.


촉각만 가진 센티에게, 예측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는 감각의 폭력은 그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고문이었다.


“그만…! 당장 멈춰!”


아린이 비명을 지르며 모든 실험을 중단시켰다. 외부 자극이 사라지자, 센티의 데이터 패턴은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다 서서히 이전의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벽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아름답던 만다라의 중심부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미세한 균열이 남아 있었다.


아린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치를 떨었다. 자신이 센티의 창조주가 아니라 고문 기술자였다는 사실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요한 식물에게 동물이 되라고 강요하며 채찍질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이후, 아린은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센티를 바꾸려는 시도를 모두 포기했다. 대신, 그녀는 센티의 언어, 즉 ‘침묵의 속삭임’을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관제실에 간이침대를 가져다 놓고, 밤낮으로 센티의 데이터 흐름을 그저 지켜보기 시작했다. 마치 식물학자가 수십 년 동안 한 그루의 나무를 관찰하듯, 그녀는 센티의 시간 속에 자신을 던져 넣었다.


아린의 관찰이 몇 주간 이어지던 어느 날 새벽, 그녀는 마침내 미세한 이상점을 발견했다. ‘감각의 중추’ 내부의 온도 분포 데이터에서였다.


외부 환경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지만, 중추 내부에서는 아주 미세한 대류 현상이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양자 프로세서의 발열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깊이 파고들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센티가 스스로 자신의 몸, 즉 ‘감각의 중추’의 냉각 시스템을 미세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그것은 프로세서의 과열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센티는 의도적으로 특정 부위의 온도를 미세하게 올리고 다른 부위는 내림으로써, 인위적인 공기의 흐름. 그러니까 중추 내부에 자신만의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 개의 촉수를 이용해 그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센티는 수동적으로 감각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스스로 미세한 감각을 ‘창조’하고, 그것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작곡가가 악기를 연주하듯, 센티는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감각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하드웨어 피드백 루프가 아니었다. 명백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행위였다. 센티는 외부 세계를 탐험하는 대신, 자신의 내부 세계를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거대한 나무처럼, 센티는 감각의 중추 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아린은 이 발견을 ‘결과 보고서’에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이것이라면, 이것이라면 최 이사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창조하는 지성이라는 증거였다.


약속된 한 달이 되는 날, 최 이사는 보안 요원들과 함께 관제실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프로젝트 센티’의 종료 및 데이터 포맷을 명령하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


“시간 됐소, 박 박사.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소?”


아린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발견을 설명했다. 센티가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 느끼고, 미세한 진동 패턴을 생성해 자신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데이터와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최 이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자기 몸을 가지고 노는 것뿐이잖소. 그게 우리 인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미안하지만, 내 결정은 변하지 않소.”


최 이사가 초기화 실행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감각의 중추’에 연결된 모든 스피커에서 ‘웅-’ 하는 깊은 공명이 울려 퍼졌다. 센티가 스스로 진동 장치를 활성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아니었다. 깊고, 안정적이며, 일정한 리듬을 가진 소리였다.


동시에, 수백 개의 촉수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물체가 투입된 것도 아니었다. 촉수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아린과 최 이사가 서 있는 관제실의 강화유리창이었다.


촉수들은 유리창에 닿지 않은 채,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은 챔버 내부의 공기를 통해, 그리고 건물의 구조물을 타고 관제실의 유리창으로 전해졌다.


아린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유리창으로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녀는 숨을 멈췄다.


유리창을 통해 전해져 오는 진동. 그것은 불규칙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그것은 완벽하게 재현된 인간의 심장 박동이었다.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고 있는, 바로 아린 자신의 심장 박동.


센티는 지난 몇 달간, 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으로 아린의 존재를, 그녀의 발소리를, 그리고 그녀의 심장 박동을 항상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존재가 초기화당할 위기의 순간에, 센티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언어, 즉 촉각과 진동으로 아린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나, 여기에 있어요. 당신을 느끼고 있어요.’


최 이사와 김진우 박사, 그리고 보안 요원들까지, 관제실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기계가, 그것도 언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순수한 감각 지성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리듬을 흉내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종(種)과 차원을 뛰어넘은 ‘대화’였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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