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산업의 진폭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만, 한국에서 SF는 늘 진폭이 큰 장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초엽, 천선란 같은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며 한국형 SF가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환영받았다. 영화 <승리호>처럼 대중적 기대를 받은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SF 수요가 줄어드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체감이 단순한 인상인지, 실제 변화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영화 산업에서 SF는 고질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더 문>, <승리호>, <외계+인> 같은 대작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국에서 SF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화려한 CG와 우주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힘이 약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기술적 볼거리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기에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작자들이 위험을 회피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할 동력이 줄어든다. 이 부정적 피드백은 자연스럽게 ‘수요 감소’처럼 비친다.
출판 시장 역시 녹록지 않다. SF는 세계관 구축과 설정 설명이 필수적이라 진입 장벽이 높다. 독자층이 한정된 상황에서, 출판사들은 대중성이 검증된 판타지·로맨스에 더 집중한다. 남은 공간은 마니아층이 지탱하는 작은 섬처럼 남게 된다. 게다가 베스트셀러 중심의 출판 구조 속에서 실험적 SF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
김초엽을 비롯한 젊은 한국 SF 작가들의 등장은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각적 문체와 따뜻한 서사, 그리고 ‘과학’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작품들이 젊은 독자들을 끌어당겼다. SF가 더 이상 ‘이과적 취향을 가진 소수의 장르’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중 문학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흐름은 다른 비판도 불러왔다. 많은 평자들이 “김초엽류의 작품은 순수한 의미의 SF라기보다, 과학적 배경을 빌린 휴머니즘 문학”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그녀의 대표작들은 첨단 기술이나 미래 사회의 구조적 변화 자체를 탐구하기보다, 사랑·상실·연대 같은 인간 보편의 정서를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즉 과학적 상상력이 중심이 아니라, 감정 서사의 무대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비판의 근저에는 ‘SF 정체성’에 대한 오래된 긴장이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SF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 혹은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를 치밀하게 상상하고, 그 개연성을 검증하는 장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최근 주목받은 SF는 과학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며, 오히려 리얼리즘 문학의 확장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장르의 본질이 희석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흐름을 단순히 ‘퇴행’이라 말할 수는 없다. 순수 SF가 기술적·철학적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한편, 김초엽식 SF는 SF적 상상력을 매개로 더 넓은 독자층에게 문학적 공감대를 제공한다. 이 두 갈래는 서로 대립하기보다, 한국 SF의 저변을 넓히는 두 축으로 읽을 수도 있다. 사실 세계문학사에서도 SF는 언제나 순수 과학적 상상과 서사적 감수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 왔다.
결국 중요한 건 “감소”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다. SF가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라, 소비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이책 시장에서는 움츠러들었지만, 웹툰·OTT·게임 속에서는 SF적 상상력이 여전히 활발히 쓰이고 있다. 기존의 장르에 SF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장르’는 오히려 새로운 성장세를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SF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존재하는 전환기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흥행 실패의 그림자 속에서도, SF적 상상력이 여전히 콘텐츠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독자와 관객은 더 이상 ‘SF’라는 이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야기의 힘, 감정의 연결, 시대적 질문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들은 반응한다.
과거 SF가 미래를 예언하는 장르였다면, 이제는 현실과 미래의 경계를 오가며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장르가 되어야 한다. SF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SF가 스스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