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세계와 인지적 과부하
SF 작가(비록 출판물은 아직 없지만...)로 살아가며, ADHD 성향과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이 둘의 교차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내가 세상을, 구체적으로는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식이다. 나에게 SF는 단순한 창작의 영역을 넘어,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해독하기 위한 일종의 분석 도구로도 기능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ADHD의 뇌가 현실 세계의 사회적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부터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ADHD의 핵심적인 어려움은 흔히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의 저하에서 비롯된다. 실행 기능이란 뇌의 전두엽이 담당하는 고차원적 인지 능력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 감정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의미한다.
흔히 도파민의 노예라는 표현이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인데, ADHD 증상이 심한 사람은 말 그대로 도파민이 하라는 것만 하고, 도파민이 먹으라는 것만 먹으며, 도파민이 보라는 것만 본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당연히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일 수 있다. 다만 가장 큰 차이점은 ADHD 환자들은 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참지 못해서 하는 것이며, 할 일을 귀찮아서 미루는 게 아니고, 하지 못해서 미뤄지는 것이고, 쇼츠를 재밌어서 보는 것이 아니고, 끄지 못해서 계속 보는 것이다. 도파민의 자극이 요동칠수록 이들의 수용체는 점점 더 둔감해지면서, 뇌를 망치는 피드백 루프만 강화되기 십상이다.
이런 도파민 시스템의 고장은 사회적인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보통 ADHD 환자들은 외향형, 내향형의 차이만 있을 뿐, 흔히 말하는 '찐따'(누군가를 비하하려는 표현이 아닌,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표현을 가져왔을 뿐이다.)에 가깝다. 눈치 없고, 상황에 맞지 않는 대화나 행동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점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작업 기억의 한계
작업 기억은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다. 가령 여러 명이 참여하는 회의 자리에서, A의 발언 내용과 B의 비언어적 반응, 그리고 다음에 할 말을 동시에 기억하고 처리하는 데에는 상당한 인지적 자원을 소모한다. 이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리면, 대화의 핵심 맥락을 놓치거나 이전 논의를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대화에 집중하지 않거나 무성의하게 보일 수 있는 지점이다. 심지어는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2.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의 부족
대화의 주제가 예상치 못하게 바뀌거나, 농담과 진담의 경계가 모호할 때, ADHD의 뇌는 새로운 상황에 맞춰 사고를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정해진 논리나 예상 경로를 벗어나는 것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며, 이로 인해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부적절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3. 정서 조절의 어려움
이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흔히 T형 인간의 묘사)과는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 감정의 강도를 조절하거나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상황에 맞게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다. 사소한 비판에 과도하게 위축되거나, 토론이 격해지면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논점을 흐리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실행 기능의 문제들은 결국 타인의 생각, 의도, 감정을 추론하는 능력인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을 실행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편인 나에게도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수많은 변수가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수많은 데이터가 뒤섞인 참조표를 해독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떤 맥락과 데이터에 기반하여 발생하는지를 파악하는 '인지적 공감'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불투명하고 암묵적인 규칙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의 상호작용은 높은 수준의 인지적 과부하와 에너지 소모를 요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명료한 규칙과 시스템을 가진 SF라는 잘 설계된 세계로 눈을 돌려 나만의 분석 도구를 찾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