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배운 사회성
1부에서 언급한 현실 세계의 인지적 과부하는, 역설적으로 내가 SF 장르에 깊이 몰입하게 된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사회성을 글로 배웠냐'고 표현하는데, SF는 특히 그 글로 배우는 역할(그것이 효과적인지는 별개로 치더라도)을 담당한다. 눈치 코치를 몸으로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읽으며 상상과 사고실험을 통해 먼저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SF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 실험실'을 제공한다. SF가 타자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어떻게 구체적인 분석 도구가 되는지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
첫째, SF는 명확하게 정의된 변수로서의 '타자'를 제시한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개인의 역사, 감정, 숨은 의도 등 무한에 가까운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SF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이나 인공지능은 작가에 의해 명확한 설정값을 부여받는다. 예를 들어, 오직 논리만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종족, 혹은 화학적 신호로만 감정을 교류하는 사회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처럼 변수가 통제된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따라가며, 독자는 '만약 소통 방식에서 모든 비언어적 요소가 제거된다면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까?'와 같은 가상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이는 복잡한 현실의 상호작용에서 핵심 변수를 추출하여 분석하는 훈련이라 할 수 있다.
둘째, SF는 사회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거시적 모델이다.
많은 SF 작품, 특히 디스토피아 장르는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예: 절대적 효율성, 완전한 평등, 감정 통제)가 사회 전체를 지배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마치 과학 실험에서 다른 모든 조건을 고정하고 하나의 독립 변수만을 바꾸어 그 효과를 관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사를 통해 현실에서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파악하기 힘든 사회 규범, 권력 구조,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을 명료한 모델을 통해 학습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셋째, SF는 '다름'에 대한 체계적인 자기 이해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SF의 주인공들은 종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거나, 남들과 다른 인지 구조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ADHD를 가진 독자는 이들의 서사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소외감이나 부적응의 감각을 개인의 결함으로 내면화하는 대신, '시스템과 개인의 인지적 불일치'라는 객관적인 프레임워크 안에서 이해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다름'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어떤 환경에서 자신의 강점이 발휘되고 약점이 드러나는지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SF를 읽고 쓰는 행위는 단순한 현실 도피나 창작 활동을 넘어서는 자아성찰, 사회 탐구 방법이다. SF 소설을 쓰는 순간, 그리고 읽는 순간 나는 그 상상 속의 세상을 탐닉하는 관찰자이자 체험자가 된다. 노이즈가 가득한 현실 세계의 사회적 데이터를,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 안으로 가져와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SF라는 명료한 매뉴얼을 통해 사회와 타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 셈이다. 이 사회 실험실에서 얻은 분석 결과는 비록 현실의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혼란을 마주볼 수 있는 내면의 질서와 방향성을 제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