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소설이 아닌 과학 ‘소설’ 쓰기
SF 장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과학이라는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닐 수 밖에 없다. 줄임말부터 Science를 포함하지 않느냐고, 동어 반복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S가 어떤 뜻을 함의하는지는 작가마다, 독자마다, 심지어는 시대마다도 너무나 다르다. Speculative(사변적)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Science Fantasy(과학 판타지)라 주장하는 작가도 있다. 그렇더라도 기본적으로 SF의 뿌리는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순 과학 소설로 오해하며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적인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SF의 본질과 매력은 단순히 미래 기술을 나열하거나 과학 이론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잘 쓴 SF 소설과 못 쓴 SF 소설을 구분 짓는 것에는 여러가지 잣대가 있겠지만, 읽기 힘든 SF 소설을 지목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자신의 상상 속 이론과 논리를 독자에게 강요하며, 한참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독자는 도입부터 그 막중한 업무에 숨이 막혀 몇 장을 넘기다 결국 포기한다. 결국 작가의 혼신이 담긴 중후반의 놀라운 결과물은 빛을 발하지도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상상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달려있다. 독자는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다. 아무리 기발한 설정이라도 그것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지 않는다면 단순히 글자의 나열에 그칠 뿐이다. 설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한 출발선이어야 한다.
결국 SF의 본질은 '만약에'라는 사고 실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탐구하는 데 있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특정 과학 지식이 아니라, 바로 '과학적 방법론'이다.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명칭이 부담스럽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직접 만든 김치찌개가 어딘가 맛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어떤가? 우선 먼저 '왜 맛이 밋밋할까?'라고 문제를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소금을 덜 넣어서 그런가?' 혹은 '김치가 아직 덜 익었나?'와 같은 나름의 가설을 세운다.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소금을 더 넣어보거나, 김치를 바꿔보는 작은 실험을 진행한다. 그 결과 찌개의 맛이 좋아졌다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이처럼 관찰, 가설, 실험, 그리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이다. 우리는 방법론을 철학적인 논증이나 해석이 아닌 실제 체험으로 익히곤 한다.
이렇게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하나의 명확한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세계관 속에서 세운 가설과 규칙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이자, 그 세계의 법칙을 가장 성실하게 따르는 관찰자여야 한다. '만약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다면?'이라는 가설을 세웠다면, 그 세계에서는 인구 문제, 자원 분배, 가족 관계, 삶의 의미, 권력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몰라도 괜찮다. 작가가 세운 '영생'이라는 규칙이 만들어내는 논리적 결과를 독자가 납득할 수 있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SF의 '과학적 태도'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과학자가 아닌 사회학자, 심리학자, 철학자의 시선을 갖게 된다. 하나의 기술적, 사회적 변화가 개인의 내면과 인간관계, 나아가 사회 전체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 세밀하게 추적하는 것이다.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초래한 인간 조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출 때, 이야기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감동하는 이유는 양자역학의 완벽한 고증 때문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 때문이다.
과학을 모른다는 두려움은, SF를 너무 좁게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당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최신 이론의 해설이 아니라, 낯선 세상에 던져진 인간의 고뇌와 선택에 대한 것이라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SF를 쓸 가장 중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만약에'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지적 성실함과 인간을 향한 깊은 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