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마 애들아

여름날, 크리스마스 ep.17

by 씨이

사막 투어의 붉은 여운을 뒤로하고 찾아온 다음 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로 향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도착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두바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회로 기판 같았다.


하지만 화려한 야경과 아찔한 높이보다 더 아찔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쌓여가는 여행의 피로와 그 틈을 타고 터져 나온 아이들의 '남매 전쟁'이었다.


"오늘은 아빠랑 엄마 좀 쉴게. 너희끼리 숙소 거실에서 재미있게 놀아"


빡빡한 일정 속에 하루 정도는 숙소에서 쉬어가는 '쉼표'가 필요했다. 알 바르샤의 쾌적한 숙소는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충분히 넓었기에, 나는 모처럼 가계부 앱 대신 가벼운 읽을거리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빠! 오빠가 자꾸 화내!"

"아니, 그게 아니라! 지유 너 진짜...!"


거실에서 들려오는 날 선 목소리에 결국 책장을 덮었다.

나가보니 아들은 이미 얼굴이 씩씩거리며 붉어져 있었고, 막내는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빠가 동생이랑 잘 놀아주라고 했잖아"


내 말에 아들의 서운함이 폭발했다.


"아빠는 맨날 지유 편만 들어! 아까부터 지유가 하자는 대로 인형 놀이만 계속해줬단 말이야

벌써 한 시간도 넘었어!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싸움 놀이 한 번만 하자고 하는데, 지유는 절대 안 한대

이건 불공평하잖아!"


아들은 억울함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도 오빠라는 이유로 양보를 강요받았다는 생각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터진 모양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들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여동생이랑 무슨 싸움 놀이야.

지유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좀 더 부드러운 걸로 놀아야지"


"거봐, 또 지유 편이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나도 못 하고 맨날 맞춰줘야 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놀이가 있다니까!"


결국 아들은 제 방으로 쾅 소리를 내며 들어가 버렸다.

식사 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으로 나가는 길에도 아들의 입은 대포알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두바이의 정오 햇살은 여전히 자비가 없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짧은 거리조차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숨이 턱 막혔다. 이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아들의 속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했다. 자리에 앉아 현지 음식을 주문했지만, 아들은 포크만 만지작거릴 뿐 통 먹질 않았다.


"아들, 맛있는 거 먹고 기분 풀어

아빠가 아까는..."

"됐어. 아빠는 어차피 지유가 인형 놀이 하자고 하면 또 나보고 참으라고 할 거잖아

싸움 놀이는 나쁜 거라고만 하고"


뜨거운 커리 향이 코끝을 찔렀지만, 식탁 위의 공기는 밖의 날씨보다 더 팽팽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밖은 40도를 육박하는 열기로 가득한데, 우리 가족의 식탁 위에는 차가운 모래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다.


문득 아들의 손을 보니, 동생과 인형 놀이를 해주느라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보였다.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동생과 놀아주는 법'에 대한 훈계가 아니라, 낯선 타국에서 오빠라는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것에 대한 짧은 격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두바이의 태양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 뜨거운 열기를 식혀줄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여야 할까. 나는 묵묵히 난을 찢고 있는 아들의 옆모습을 보며, 어떻게 이 식어버린 마음을 다시 데워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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