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에 핀 행운

여름날, 크리스마스 ep.16

by 씨이

두바이 공항의 입국장을 나서는 순간, 후끈한 공기와 함께 석유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의 위용이 우리를 압도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에게, 사방이 번쩍이는 이 도시는 마치 거대한 미래 도시 같았다.


지레 겁먹었던 물가는 다행히 절반의 성공이었다. 발품 팔아 예약한 알 바르샤 지역의 숙소는 넓고 쾌적했으며 가격도 한국의 웬만한 비즈니스 호텔보다 합리적이었다. 게다가 숙소 근처 현지 식당에서 먹은 커리와 난은 푸꾸옥의 해산물만큼이나 우리 입맛에 착 붙었다.


"생각보다 살만한데?"


덕구와 나는 두바이의 거지가 벤츠를 끌고 다닌다는 등의 풍문에 걱정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복병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액티비티' 비용이었다.


"덕구야, 부르즈 할리파 전망대랑 사막 투어 예약하려고 보니까...

4인 가족 비용이 장난이 아닌데?"


한국과의 시차 5시간. 서울의 가족들이 이제 막 점심 식사를 마쳤을 시간에 나는 두바이의 이른 아침부터 노트북 앞에 앉아 가계부를 두드리고 있었다. 블로그 조회수가 폭발하며 애드포스트 수익이 늘긴 했지만, 온 가족이 움직이는 세계 일주 중인 우리에게 인당 10만 원을 훌쩍 넘는 투어 비용은 가슴 한구석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블로그에 등록된 내 이메일로 국내 한 대형 여행사의 제안서가 도착한 것은.


[푸꾸옥 여행기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혹시 두바이 사막 투어 협찬 가능하실까요?]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담당자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시차 때문인지 한국은 벌써 퇴근 시간 직전이었지만, 다행히 연결이 닿았고 여행사 측에서는 신규 상품이니만큼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세부적인 협의를 더 해보자고 제안해 왔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금이었다.


"저희가 두바이 일정이 그리 길지 않아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먼저 현지에서 경비를 지출하고,

나중에 지원해주신다는 100만 원 한도 내에서 사후 정산해주시는 방식은 어떨까요?

꼭 필요하신 부분만 알려주시면 그 부분은 반드시 포함시킬께요"


제안을 던져두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했다. 행여나 무리한 제안은 아니었을까 걱정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마침내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좋습니다. 믿고 맡길게요.

사막 투어 다녀오시면 그 이후에 정산 진행하시죠!

대신 가족분들 모두가 다 나오는 사진이 5장 이상 포함되셔야 하고,

드시는 음식과 이동하는 장소의 사진은 꼭 부탁 드려요"


그 연락을 기다리다 기분 좋게 예약 버튼을 눌렀고, 드디어 사막 사파리 투어 당일이 되었다.

화이트 컬러의 육중한 랜드크루저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언덕에 들어서자 운전사 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엔진 소리를 높였다.


"Are you ready?"


본격적인 듄 베이싱이 시작되려는 찰나, 나는 아이들을 위해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Slow, slow please! For my kids!"


아저씨는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엑셀에서 발을 조금 뗐다.


"Slow? Really? Okay, no problem."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아저씨의 눈빛에는 못내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이 언덕은 훨씬 더 스펙터클하게 넘어야 제맛인데'라고 말하는 듯한 아저씨의 표정. 가끔 백미러로 나를 보며 '더 달려도 괜찮겠어?'라고 묻는 듯한 아쉬운 미소를 풍길 때마다, 아빠인 나도 마음속으로는 '저도 마음 같아서는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어요!'라며 입맛을 다셨다.


비록 조금은 얌전해진 오프로드였지만, 덕구와 아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모래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아저씨의 아쉬움 섞인 눈빛조차 즐거운 여행의 양념처럼 느껴졌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시간. 우리는 붉은 사막 한가운데 내려 나란히 섰다.

지평선 너머로 타오르는 노을은 푸꾸옥의 바다와는 또 다른 장엄함을 선사했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며 서로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우리 오길 정말 잘했다, 그치?"


덕구가 내 어깨등에 기대며 조용히 속삭였다. 노을빛을 받은 아내의 손목 위에서 푸꾸옥의 진주 팔찌가 영롱하게 반짝였다. 저 멀리 모래 썰매를 타느라 온몸이 모래 범벅이 된 채 뛰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노을 속에 그림자처럼 걸렸다.


가계부를 고민하며 메일을 기다리던 아침의 초조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막의 고요하고 붉은 공기가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나는 덕구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월요일 연재
이전 15화우리에게도 행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