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크리스마스 ep.1
"오늘 왜이렇게 춥지"
10시가 조금 넘었고 나는 그제야 회사 정문을 나섰다. 나섬과 동시에 느껴지는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집에서 뒹구는 아들과 딸이 떠올랐고 나는 슬쩍 웃음을 품으며 지하철에 올랐다.
삑, 삑, 삑, 삑, 띠리링, 매일 듣는 그 소리가 그날따라 크게 들렸던 건 기분 탓이려니. 안방 문을 열까하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깨면 안 되지라며 작은 방으로 향했다. 집은 정리되지 않은 듯한 부산스러운 느낌이 조금 있었지만 야근 때문에 지친 나는 그런 부산함마저 자연스러움으로 둔갑시켰다.
천천히 옷을 벗으며 시계를 봤다. 11시 24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에 서둘러 옷을 벗고 씻었다. 잠에 들기 전 살짝 아이들과 덕구에게 인사하려던 나는 안방 문 앞에 섰다. 그리곤 안에서 훌쩍이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불이나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는 듯 숨죽이는 울음소리, 아내였다.
그제야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아내의 메시지가 생각이 났고, 그제야 아들이 보챈다며 언제 오냐며 전화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정말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미안함이 몰려왔다.방문 앞에서 서성이던 나는 그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나는 내가 왔음 알렸다.
"덕구야, 나 왔어"
"응 왔어?, 자기 피곤하겠다 일찍 자."
울음을 감추는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덕구는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짧은 소설을 쓰며 우리는 같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작가로서 작지만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약속하곤 했었다. 그런 덕구에게 내가 준 첫 번째 선물도 싸구려 만년필이었다. 덕구는 그 싸구려 만년필을 받고 눈물을 흘렸던 마음이 여린 소녀였고, 완성된 작품 하나 없지만 꾸준함을 무기로 글을 쓰던 작가 지망생이었다.
나와 결혼을 하고 나서는 덕구는 캘리그래피를 썼다. 같이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글도 쓰고 좋아하는 문장을 캘리그래피로 만드는 작업을 덕구는 좋아했었다. 언젠가 덕구는 포인트를 다 채워서 작가가 되는 것을 꿈꿨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 둔 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덕구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덕구가 울었던 게 언제였지? 천천히 지난 시간을 되돌리니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늦게 출퇴근하는 나를 위해 새벽 도시락을 싸가며 뒷바라지하던 덕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안함'이라는 단어가 초라해졌다.
안방 문 앞에 걸어둔 트리에서 희미하게 불꽃이 반짝였다.
덕구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다.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케이크를 먹으며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를 했었다.
"내년에는 우리 돈 많이 벌어서 꼭 해외여행을 가자!"
"그래 좋아!"
'로또가 되었으면 좋겠어'와 같은 말이었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혼하고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덕구의 울음을 마주했던 나는 차마 문을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방으로 와서 자리에 눕고는 휴대폰을 켰다.
12월 3일, 올해도 이제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