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크리스마스 ep.2
"그만두겠습니다"
다음 날 회사를 나가 첫 회의 시간에 내가 한 첫 마디였다.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집에 일이 조금 있어서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내와 먼저 상의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덕구의 성격 상 그만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았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다시는 시도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만큼 어제의 감정은 강렬했고 생각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회사는 내 예상처럼 그다지 나를 잡지는 않았다. 그냥 적당히 일하던 직원이 그만둔다기에 적당히 잡다가 어쩔 수 없다며 아쉽다는 인사를 건네며 받아들였다. 팀장님은 이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나는 한 달 가량을 이야기했다. 약간의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였지만 그게 꼭 나를 위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던 모든 일이 단순해졌다.
쩔쩔매던 소송 업무도 일률적으로 해내기 시작했고 굉장히 크게 느껴지던 보고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오히려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이 녀석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하는 듯한 눈빛에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고 있었을까 반추했다. 소심하고 눈치보는 내 성격 때문에 나는 결국 회사 일에 올인했음에도 인정도, 보상도 받지 못한 바보같은 직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인계인수 자료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평소에도 일을 하면서도 정리하면서 해왔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자료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추가로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인계를 받아야 하는 대리님은 인계인수 자료 만들면 알려달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자기 일에 몰두했다. 모두가 주목하지만 모두가 신경쓰지 않는 애매한 상황 속에서 나는 인계인수 자료를 정리했다.
다섯시가 넘어가자 한 두명씩 소식을 들은 동기들, 선후배들에게 쪽지가 도착했다. 다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괜찮은지 걱정하며 어디로 이직하게 되었는지, 비법이 무엇인지 등 궁금할만한 내용들을 물었다.
[잠시 쉬려고요]
이 말과 동시에 다들, 다시 말이 없어졌다. 다소 걱정하는 몇몇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잦아들었고 금세 여섯시가 되었다.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자 다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고 팀장님과 부장님은 들어가보라며 손을 휘휘저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는데 그동안엔 이 말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일이 없었음에도 괜히 눈치를 보며 늦게 들어간 시간들이 너무 아쉬웠다.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덕구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와 함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어디야, 오늘도 늦어?]
덕구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 같으면 바로 읽고 답변을 했겠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몰라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다. '회사를 그만뒀어',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이야', '오늘은 일찍 끝났어' 여러 말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적고 전송을 눌렀다.
[가고있어 오늘 우리, 맛있는 것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