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그리고 고생했어

여름날, 크리스마스 ep.3

by 씨이

"아빠?!"

"아빠다! 엄마 아빠 빨리왔어!"


아이들이 신이 난 얼굴로 엄마를 찾았다. 한 손에 과자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어지간히 반가워했다. 그 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그동안 늦게 오느라 함께하지 못한 아빠가 일찍 왔다는 사실 그자체가 너무 즐거운 듯 보였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건네주고 한번식 꼬옥 안아주곤 아내에게로 갔다.


"오늘은 빨리왔네?! 왠일이야?"


아내는 의외라면서도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어쩌면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만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빨리 아이들을 재우겠다며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동안 계속 늦었던 내 덕분에 빨리 재우다보니 이제 겨우 8시 남짓한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자러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배달 앱을 켜며 무엇을 먹을 지 고민했다.


한 시간 가량 지났을까? 덕구가 조심스럽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같이 누워서 배달앱을 켜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뭐 먹을까?"


나는 계속 덕구에게 물었지만 덕구는 계속 정하지를 못했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어떤 걸 먹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일찍 왔으니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아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선택을 강요하는 게 아내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냥 내가 시켰다.


치킨을 시키고 오랜만에 생맥주도 같이 시키면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서로 꼭 안고 있었다. 말이 안아줬지 내가 반쯤 안긴 상태에서 우리는 한동안 재잘재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다. 덕구는 주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 주변 엄마들과 나눈 이야기를 말했고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들어 댔다.


그러다 문득 침묵이 찾아올때쯤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치킨이 도착했다.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치킨을 먹으면서 우리는 또다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마치 서로 아무 일도 없이 행복했던 것처럼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숨죽여 울던 아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나 역시 회사를 그만 둔 사람치고는 아무런 걱정없는 것처럼 떠들었다.


얼마 시키지 않은 맥주가 다 떨어져 갈 때쯤 그제야 나는 오늘 회사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차마 아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데 잘 인정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더 오래되면 아이들과 진짜 멀어져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오랫동안 하염없이 말했다. 아내는 아무 말없이 내 말을 들어줬다.


"잘했어, 그동안 고생했네"


아내가 내뱉은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내 때문에 그만뒀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를 위해서 그만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 스스로가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억울하다고, 나 진짜 열심히 하고 노력했는데 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똑같은 잘못을 해도 유독 혼나고, 나만 유독 만만하게 보고 짜증내고 뭐라하는지 모르겠다며 나도 모르게 울컥 쏟아냈다.


아내는 그런 나를 꼬옥 안아줬다. 잘했다는 듯이, 고생했다는 듯 토닥토닥해주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안겨 계속 눈물을 쏟았다.


아무런 계획없이, 그냥 모든 걸 버리듯이 내려놓아 버린 그 날이 내 생각보다 따뜻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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