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불안하지 않을까?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어?
건축설계 전공인 내가 안전관리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기에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였던 것 같다. 그때는 일을 통한 자아실현보다는 그저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을 먹으러 다니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먹고사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만 할 것 같은 시기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배고픈 생활을 감당하며 찾아볼 배짱도 없었다.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라면만 먹고 지내며 오랜 무명을 거쳐 유명한 배우가 된 이야기. 최저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꿈을 좇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제적인 안정감이 어느 정도 확보돼야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인 듯했다. 그렇게 2년의 취업재수를 거쳐 좋은 회사에 취업을 했고 나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사라져 갔다.
그러나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음에도 나는 도전적인 사람이 되진 못했다. 먹고 살만 하긴 했지만 여유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돈을 모으는 대로 전셋값을 올려주기 바빴다. 집을 사기라도 한다면 더욱더 일의 노예가 돼야만 할 것 같았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취준 생일 때는 돈을 벌지 못함에 불안했고, 7년 차 대리가 됐을 때에는 더 많이 벌지 못함에 불안했다. 이러다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60대나 돼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불안하지 않을까?
입사 1년 차, 쿠웨이트 현장에서 3개월간 신입사원 트레이닝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 근접지역으로 위험지역에 속했고, 위험수당에 현장수당을 합하면 급여가 꽤나 높았다. 트레이닝 중인 나는 해당이 안됐지만 동기의 급여를 보니 내 급여의 거의 두배였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부장님들은 꽤나 많은 급여를 받고 계셨다. 어느 날 10년 가까이 해외에서 일을 하신 어느 부장님이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해외 급여에 맞춰 씀씀이가 커졌고 이제 국내 현장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돼 돌아갈 수도 없다고 하셨다.
문득 '아,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더 많이 쓰면 그만이었다. 기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걸까? 도대체 얼마가 있어야 먹고살 수 있는 건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1년 동안 꾸준히 엑셀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그냥 쓰고 있는 돈 말고, 없으면 굶어 죽는 수준이 얼마인지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해외여행 비용, 과도한 외식비, 쇼핑비 등을 뺀 금액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생각보다 많지 않네. 좀 더 리스크를 안고 도전해도 되겠다 생각했다.
최저생계유지비용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낮출 수 있었다. 그럼 조금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기긴 하지만 생각보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당분간 집을 살 계획이 없으니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조금은 자제를 해야 한다는 것. 특히 후식 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신랑의 경우 좋아하는 옷을 최소한으로 사야 했다. 이렇게 아껴서 사니 힘든 것도 있지만 동시에 좀 더 자유로운 느낌도 들었다. 덜 벌어도 된다는 사실은 내 선택지를 넓혀 주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더 우선시해도 된다고 말해 주는 듯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안의 불안을 내려놓기로 했다.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 딱 그만큼만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다만 이만큼이 확보된다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 같은 것이었다. 이것을 알고 모르고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이런 기준이 없을 때에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 나갔다. 무작정 수익을 늘리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쓰고 있었다.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인데, 목적이 될 뻔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 부부는 이 최저생계유지비용을 Passive income(자동화 수입)으로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다. 돈이 돈을 벌게 해서 내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것. 임대수익, 주식 배당금과 같은 소득으로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주말 데이트는 부동산 투어일 때가 많다. 네이버 부동산으로 살펴본 곳을 직접 찾아가 보고, 그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즐긴다. 이렇게 자동화 수입으로 최저생계유지비용을 확보하고 나면 더 많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4년 안에 단순히 돈을 위한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60대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던 상황을 30대 안에 만들겠다는 것. 이건 어디까지나 최저생계유지비용을 정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만큼만 확보하면 내가 먹고살 수 있다는 기준을 아는 것은 쓸데없는 불안을 줄여줬다. 용기 없던 내가 안정감을 딛고 용기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 새로운 도전을 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최저생계유지비용은 내 발목에 묶어놓은 돌멩이의 크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돌멩이일수록 훨훨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자동화 수입으로 만든다는 건 돌멩이를 아예 빼 버리는 것과 같았다. 나를 가볍게 만들어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더 이상, 돈을 핑계로
도전을 망설이지는 않기로 했다.
[다음편] 오랫동안 망설인 일을 시작하려면
안녕하세요.
퇴사 후, 방황 중인 인생여행가쏭입니다.
100을 생각하지만 1만 실천하는 사람이에요.
글을 쓰면 10은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ㅎ
방황하는 1년의 시간이 허무하게 사라질까 두려워
[머뭇거림과 용기 사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7월 말까지 30개의 글을 포스팅할 예정이에요!
이후, 인생에서 가장 오래 머뭇거린 홈스타일링 도전을
준비 중이며 관련해 8월부터 [셰어하우스 오픈기]를 연재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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