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복을 입는 것처럼

by 강이랑


지금의 나는 꽉 끼이는 옷보다 편하고 넉넉한 외출복을 즐겨 입는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격식을 갖춰야 할 때도 적당한 선과 예절을 지키면서 심플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하물며 지금의 내 삶은 나의 페르소나를 위해 무리한 옷차림을 할 상황도 아니다.


사회에서 만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거나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찌 보면 내가 외부에서 만나는 외출복과 같은 면이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봐온 한 마을 친구나 초중고 친구들처럼 실내복 같은 사회 친구도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어리고 젊었을 때는 청춘 그 자체가 커버를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설령 좀 몸에 맞지 않아도 무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르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사회적 위치를 거리낄 상황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는 관계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외투를 입을 때 실용적이면서 내게 맞는 편한 옷차림을 선호하듯 나와의 선을 지켜주면서도 잘 어울리는 산뜻한 사람과의 관계가 좋다.


여름이라면 통풍이 잘 되고 가벼운 옷차림이 좋겠지만, 이 겨울, 지인이 준 품이 넓은 패딩을 즐겨 입는다. 두 세 벌을 더 껴입는데도 넉넉하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핏도 살아있다. 가끔은 마치 모포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몸에 맞아 무게감도 개의치 않다. 사회에서 만나는 지인들이나 친구 중에도 마치 지금 나의 패딩 상황과 같은 관계가 존재한다. 어쩌다 무거운 상황이 발생해도 그 무게감이 문제가 되지 않는 품이 넓어지는 그런 상황. 불편한 것과는 또 다른 그런 상황.


물론 좀 불편하더라도 평상시에도 한두 번 정도라면 불편을 감수할 때도 있다. 한두 번, 뭐 그 정도야, 열두 번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한 적도 있었는데 뭐, 이 또한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외출복 중에 예전에는 맞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20대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불편한 관계가 있고, 반대로 20대에는 안 맞았는데 지금은 맞는 경우도 있으며, 여러 번 수선한 결과 지금은 찰떡인 경우도 있다.


관계를 외출복으로 대입하여 생각해 보니, 괜스레 나 자신이 정리가 되고 좋다. 맨날 입는 옷처럼 맨날 만나는 친구, 가끔씩 입는 옷처럼 가끔 만나는 친구, 몇 년이 지나도 불편한 옷처럼 불편한 친구. 체형이 바뀌듯 내면의 변화에 따라 몇 해 전에는 맞지 않았는데 맞는 관계도 있고, 나한테는 안 맞지만 다른 지인과는 잘 맞는 친구도 있다.


가끔은 이렇게 내가 사회에서 마주치는 관계를 외출복으로 생각해 봐야지, 그래야지 싶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내 몸과 마음에 딱 맞는 그런 옷을 갖춰 입어야지 싶다, 정말 그래야지 싶다. 그래서 외면의 옷차림 만큼이나 내면의 옷차림도 잘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싶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축축한 감정을 살필 각오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