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을 일굴 때 괭이가 필요하고 닭장을 지을 때 톱이나 망치가 필요하듯, 자연 속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샘물이나 새싹이 아니라면 사회나 관계 속에서도 적재적소의 상황에서 도구를 잘 활용해야만 할 것 같다. 사회나 관계 속에서 내가 잘 활용하는 도구는 무엇일까?
깊은 산속 오지로 들어가 밭을 개척하고, 농작물을 재배하고, 닭이나 오리를 키우는 이들을 보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다. 물길을 내기 위해 삽이 필요하고, 울타리를 치기 위해 도끼가 필요하고, 철사를 조이기 위해 펜치가 필요하다.
현란한 화술이나 언변? 화려하고 매혹적인 미모나 옷차림? 안타깝게도 나의 도구가 아니다. 난 이들을 갖고 있질 않다.
그렇다면 사회나 관계 속에서 나의 도구는 무엇인가? 나는 그 도구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 신의나 책임감을 도구로 친다면 나의 도구가 맞다. 적절하게 잘 활용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타고난 근면 성실함은 없어서, 나의 도구는 아니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처럼 때때로 어디선가 꺼내거나 빌려와 이때다 싶을 땐 그래도 잘 활용하고 있는 편이다. 근면 성실함을 타고났다거나 그 후 내 도구로 삼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지에서 밭을 일구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나 근면 성실한지 모른다. 일터에서 작물만 키우는 것이 아닌 근력을 키우고 힘도 키운다. 하지만 근면 성실함 반 게으름 반의 생활을 하는 내게는 그들과 같은 생활은 당분간은 인생의 과제로 둘 수밖에 없다. 농부들이 비 오는 날과 한겨울은 쉬듯 내 인생은 항시 장마철과 농한기가 존재하는 거라며 합리화한다.
뭐니뭐니 해도 내게 있어 가장 쓰임새 있는 도구는 책일지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의 기로 때마다 책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40대 초에 만난 심리학 관련 책들은 내가 전공한 어린이문학에 확장을 주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다.
심리학 관련 저서들은 작고 척박한 내 밭에 기름진 거름이 되어주었다. 마음을 갈고닦듯 밭을 일궈 자갈을 골라내고 이랑을 내 씨앗을 가꾼 덕분에 장에 내다 팔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자신의 비옥한 밭과 가축을 확보한 농부들을 보면 야생 동물들로부터 농작물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대나무나 나무를 활용해 울타리를 세운다. 도끼나 칼, 톱을 활용해 대나무를 베고 잘라낼 때 그들이 이들 도구를 어찌나 잘 활용하는지 감탄하게 된다.
사회에서 관계를 맺다보면 독수리나 매, 멧돼지 같은 맹수와 같은 외부적인 욕망이나 에너지가 남다른 이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의 밭을 잘 가꿔 무공해로 키운 나의 작물을 장에 내다 팔기 위해선 병충해만이 아닌 이런 야생성을 지닌 존재와도 맞서야 한다.
어쩌면 현실은 절반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절반의 반은 병충해로 잃고 간신히 절반의 반을 수확해 장에 내다 팔아먹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내어준 절반이란 나의 소모된 에너지를 말한다. 밖에서 침범하고 들어온 존재에게 에너지를 소진하는 삶을 오래 살다 보면 내 밭일을 소홀하게 되고 모처럼 일군 밭을 썩히고 잡초에게 내어주는 상황을 초래하곤 한다. 내 삶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내가 그러했다.
심리학 관련 공부를 바탕으로 이제야 비옥한 땅을 확보해 놓고는 내 안의 도구를 잘 활용하지도 못하고 절반은 외부의 존재에게 에너지를 뺏기고 정신 차려보니 이제는 내 안의 병충해가 날 괴롭히고 나 스스로가 나를 좀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내 안의 도구를 잘 활용해 때때로 날카로운 예리함과 단호함으로 울타리를 쳐 차단하고 내 작물들을 돌볼 때이다. 내 마음의 밭을 더 살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