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길어졌다. 그만큼 바깥에 나갈 기회가 늘어났다.
한 달 조금 전만 해도 저녁 6시쯤엔 어둑했는데, 환하다 환하다, 날이 환하다.
그전 같으면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며 저녁을 먹고, 한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을 참인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름다움이 가득한 수목원을 향해 걷는다.
수목원은 지금 판타지 세계다. 모든 꽃이란 꽃이, 모든 잎이란 잎이 지금 눈앞에 리얼한 현실로 존재하며 수목원이라는 공간을 순식간에 판타지 세계로 변화시킨다.
아름다운 공간 속에서 천천히 호흡하며 걸어가는데,
“책을 읽으려면, 얼른 버려~. 책 읽을래 흙갖고 놀래?”
젊은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모래흙을 두 손 가득 쥐고 서있다.
엄마와 아이는 수목원 안에 새로 생긴 도서관을 향하는 길이었나 보다.
아이가 흙을 버린다.
“오~멋진데, 책을 선택하다니!”
엄마도 감탄하고 멀찍이 서있던 나도 감탄한다. 난 박수까지 치고 싶다.
아아, 방심했다. 아이가 그대로 엄마말을 따를 리가 없다.
흙을 버리고 도서관 쪽을 향하던 아이가 다시 수목원 바닥에서 한 움큼 흙을 움켜쥔다. 그럼 그렇지, 아이는 엄마가 아니지. 아이는 아이지. 아이는 엄마가 못 보는 흙바닥을 보고, 물웅덩이를 보고, 풀숲을 보고, 개미를 발견하지.
“도서관에 가서 손 씻고 책 읽자.”
젊은 엄마도 대단하다. 평상심을 유지한 채 아이에게 다시 말한다. 이 아름다운 저녁 시간을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나는 가능만 하다면 그런 엄마와 아이를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젊은 엄마와 아이를 뒤로 하고 나는 수목원의 나무와 꽃과 새를 바라본다.
10분이나 30분으로는 안 되는 한 시간이 넘고 두 시간을 몰두해야만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게 꽃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 새 한 마리 한 마리를 관찰하며 수목원 안을 걷는다. 지금 존재하며 한껏 물이 오른 이 리얼한 존재들이 펼쳐주는 판타지 같은 공간을 꿈꾸듯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