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서 남자들 밥 챙겨줘야 허는디”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엄마는 뇌경색이 와서 응급실에 들어가 검사를 받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실로 옮겨 8일 만에 돌아가셨다. 엄마는 24시간 잠을 들지 못해 나는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내가 아는 짧은 불경을 읊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잠을 못 이루던 엄마는 새벽 6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짧은 에 들기도 했다.


엄마는 섬망 증상으로 한창 농사지을 때의 생활로 돌아가 이런저런 말씀을 중얼거리셨다. 그중에 “남자들 왔냐. 어서 남자들 밥 챙겨줘야 허는디”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엄마는 자신도 밭농사 논농사 일을 하면서도 끼니때가 되면 많은 양의 식사도 챙겨야 했다.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엄마는 지금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해 사경을 헤매고 계시면서 그 한창 힘들 때 기억 속을 헤매며 어서 남자들 식사를 챙겨야 한다고 걱정하신다.


“엄마, 그렇게 남자가 중요해? 엄마 때에는 어쩔 수 없었어?”

“그랬어야.”


어쩌면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도 엄마가 대답을 하신다.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다시 시골의 한 작은 마을로 시집온 엄마는 남편과 자식들과 자신의 논밭이 전부였다. 논밭이 있는 곳까지라면 모를까 나중에 나이 들어 산책을 해도 마을 밖을 벗어나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 분에게 농사란 삶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신의 논밭은 생명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남자.

엄마는 결코 남자를 밝히는 분이 아니다.

유아독존의 성격을 지닌 자신의 남편만을 바라보고 남편 곁을 떠나지 않은 분이시다. 내가 섬망 증상에서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갑자기 슬퍼진 이유는 86세의 엄마가 산 시대의 슬픔, 그 시대 속을 맹목적으로 산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의 한계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한계는 곧 나의 한계일 수도 있다는 슬픔이다.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엄마보다 나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여전히 나의 작은 울타리 안에 갇혀 살고 있으며, 그 작은 울타리 속 내 작은 터전도 확보하지 못한 현실이다. 엄마가 그 시대 속을 살며 남자들을 챙기는 일을 중시했듯 나는 지금 무엇을 챙기며 살아갈 것인가? 그 어떤 타자를 섬기고 챙길 것인가? 아니 나는 과연 누구를 챙길 수 있는 그런 그릇이라는 말인가?


엄마의 잠꼬대같은 섬망 중에 하시는 말을 들으며 나는 한 여성에 대해, 시대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곱씹으며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엄마 곁에서 오열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