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동료 군인들 밤송이머리를 몇 번 깎아준 경험이 전부인 남편이 아들 머리카락을 잘라준다고 이발 기구를 사 왔을 때 잘 깎을 수 있을지, 솔직히 못 미더웠다.
우려했던 것처럼 처음으로 아들 이발을 시켰을 때 군데군데 쥐가 뜯어먹은 것럼 거친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 남다른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곧잘 잘라주더니 이젠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샤워를 하고 나온 아들을 보니 아주 말끔하고 똘똘하게 보였다.
이발을 하고 나면 꼼꼼히 청소를 해도 방바닥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 더러 눈에 띄는데 현관문에 끼워놓고 간 광고 스티커를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용도로 종종 사용하고 있다. 그날도 방 청소를 하면서 스티커를 들고 방바닥을 훔치고 다녔는데 욕실 입구에 머리카락이 뭉쳐져 있는 게 보였다. 욕실에서 아들 이발시켜줄 때 묻혀 나온 머리카락이려니 생각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퇴근한 남편이 아들을 보더니 대뜸 "니 머리가 왜 그러냐? 누가 가위로 잘랐냐?"하고 추궁했다.
그제서야 아들의 머리를 보니 앞머리 쪽에 가위로 싹둑 자른 흔적이 역력했다. 기껏 예쁘게 잘라줬는데 완전히 영구머리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모른다고 발뺌을 하며 천연덕스럽게 오리발을 내밀던 아들.
세상에, 자기 머리카락이 잘린 지를 모른다니 말이 되냐? 그럼 누가 안다고?
자꾸 추궁하니 손오공놀이를 하느라고 그랬다는 거다. 손오공이 모자의 구멍 사이로 삐쭉 나온 머리를 뽑아 후~~~불면 수많은 손오공 분신들이 만들어지듯 그렇게 되나 안 되나 실험을 해 보고 싶었다는 거다.
사오정 같으니라고!
한편으론 웃음이 나오면서도 어찌나 속이 뒤집히던지!
머리를 단정하게 이발했을 때와 영구머리를 만들었을 때의 이미지가 어쩜 그리 다를까?
앞쪽에 움푹 패인 머리를 보고 있으면 꼭 껌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 할 수 없이 잘라낸 것처럼 속상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훈석이, 머리 잘랐구나? 하고 언급을 하셨다는데 손오공놀이를 한답시고 아들이 직접 가위질을 한 것까지는 모르실 텐데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