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작년 여름, 부모님과 함께 엄마의 고향인 남해에 다녀왔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장마철 물안개 핀 바닷가 마을에서의 며칠은
익숙한 모습도 새롭게 보이는 날들이었다.
가족과 함께한 저녁 식사는 늘 해왔던 것인데도 왜 그 곳에서는 다른 느낌이었을까?
아빠 엄마와 함께 숲 속을 걷는 것은 몇 년전까지만 하여도 함께 했던 행동인데 왜 그 곳에서의 공기는 더 아득했을까?
익숙한 듯, 낯선
슬픈 듯 따스한... 묘한 기분.
즐거웠고 행복했다.
* 남해 읍 재래시장에서 사온 전어회와 갈치, 푸르른 상추와 깻잎.
집에서 준비해 온 물김치와 조림양념.
엄마는 펜션에 와서도 요리를 하셨다. 하지만
'고향의 신선한 생물들을 마주해서 일까?'
엄마는 마음이 가볍고 - 아빠와 내가 아닌 - 자신을 위한 요리인 듯 설레어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펜션 마루.
우리 셋은 모여앉아 싱싱한 전어회를 싱싱한 잎에 싸아 입에 넣었다.
'아!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신선함 그 자체!'
입 안에 바다가 들어왔다.
* 두번째 날은 독일마을을 지나 예쁜 카페와 집들이 산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원예예술촌으로 향했다.
아기자기 정돈된 잔디, 나무, 꽃, 그리고 어여쁜 정원들이 있는 마을이었다.
숲 속은 물안개로 살짝 촉촉해서 더욱 싱그러웠다.
그 곳에서 나란히 걷는 아빠와 엄마의 뒷모습.
함께 사진을 찍는 다소곳한 풍경... ... .
익숙한 듯 낯설었다.
평소보다는 더 평온한 분위기
함께 사진을 찍다
문득,
'나는 이제 부모님보다 키가 더 큰 어른이라는 사실... ... .'
true임에도 잊고 지내다
새삼 깨닫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였다.
잔디 정원에 장독대가 보였다.
그것을 보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 부터 작은 장독대를 베란다에 모아두고
요리를 할 땐 국자와 함께 그 곳으로 향하곤 하셨다.
풀 위에 놓여있는 흙색 장독대를,
키가 훌쩍 큰 나와 나이가 들어 이제는 마르고 작아지신 부모님과 함께 바라보다
문득,
'아득함'이 느껴진다.
저 뿌연 구름 속에서 부터 우리가 그 긴 세월을 걸어왔다는 진실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