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DS Nov 21. 2023

안기는 습관이란 무섭다

폭하고 안기는 그 맛을 어떻게 지워요.

한 지붕 아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서로 귀신 보듯이 사는 허함에 익숙해지다가도

간혹 가다 송두리째 나의 결심을 뒤 흔드는 얄궂은 날들이 있다.


온몸이 둥그러지도록 세상에 부딪혀가며 제 한몫을 내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아가들이 한껏 꼬순내로 위로해 줘도

자꾸만 나보다 큰 품에 폭하고 안기는 어느 날을 떠올리게 된다.


직업을 오래 갖게 되면 직업병이란 게 있지 않은가.

관계도 오래 지속되면 익숙한 형태가 깊게 새겨진다.

다시 메우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잘 안 메워지는 홈이 그런 것이겠지.


-


운전을 늦게 배워 주행은 제법 흉내를 내더라도 주차는 많은 면이 서툴다.

도대체가 차간 거리가 잘 와닿지가 않은 데다가

겁도 많아 남의 차들을 피해 필요 이상으로 저만치 떨어져 대며 어렵사리 차를 댄다.


옵션이 없는 차라서 더욱 그런가 싶다.

요즘 나오는 새 차들은 항공시점으로 카메라가 된다던데,

겨우 달려있는 후방카메라마저도 약간 비뚤어져 있어 사이드미러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온몸의 에너지를 쓴듯한 하루를 보낸 며칠 전,

그날은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라 주차 자리도 평소보다 더 모자란 데다가

하필 야근에 더욱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돌다가 도무지 빈자리를 찾지 못해 단지 내 갓길 주차를 하려는데,

아뿔싸 차간 거리가 너무 좁다. 아마 저 차도 나와 같은 코스를 빙글빙글 돌다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주차를 했겠지.


몇 분을 고민을 하다가 이러다가 자정을 넘겨도 집에 못 들어가겠다 싶어,

통화목록 저 아래에서 익숙한 이름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볼륨을 한껏 낮춰도 한밤중의 블루투스 스피커는 어찌나 큰지.

응답이 없는 반복음에 자는가 싶어 한숨을 내쉬는데, 또 다른 날카로운 알림음이 들린다.


'할 말 있으면 카톡으로.'


정말 답다 싶은 문장에, 한숨이 다 나오기도 전에 우선 급하니 답을 해본다.


'혹시 진짜 미안한데 나 주차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급하게 또 덧붙여 본다.


'제발..?'


다행인지 아닌지 답은 10여 초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아니 알아서 하는 게 맞을 듯 미안'


한숨이 탁 하고 터져 나온다.

혹시나 해서 재차 부탁해 보지만 답은 좀 더 길고, 온도는 날씨보다 좀 더 찼다.


시간이 일렀으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었을 텐데.

아니 우선 주차자리가 있어서 이런 일도 없었겠지.

남이라도 이 정도는 해주지 않나.

나는 가족이었는데.

아니 아직은 서류도 정리 안 됐는데.

아니다 내가 이기적인가.


나도 참.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저기 남의 동 앞 갓길에 차를 낑겨 대었다.


출근길에 혹시 전화 오려나.

이른 출근길에 차를 다시 대면되겠지?

나름 잘 대놨으니 어쩌면 연락 오지 않을지도 몰라.

음.


이미 끝난 관계에 없어 보이게 괜한 것을 부탁했다 싶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머리를 감으면서도

애들 물그릇을 다시 채워놓으면서도

개운하지 않은 복기를 꽤나 여러 번 되뇌었다.


그리고 또다시 안방문을 열고,

뒤돌아 모로 누워있는 그림자 옆에 나도 반대방향으로 몸을 뉘이는데,

하마터면-

같은 방향으로 누울 뻔했다.

그리고 톡톡 어깨를 두드리면

부스럭거리며 내어진 공간으로 쏙 하고 들어갈 뻔했다.


오늘 하루 내 한몫하고 돌아왔는데.

마음도 한 곳에 뉘이고 싶었는데 말이지.

무서운 습관이 나를 자꾸 서서 재우게 한단 말이지.


그러지 않으려 왼편으로 돌아누어

왼손으로 오른팔을 오래 쥐었다.

잠이 올 때까지 오래오래 쥐었다.








작가의 이전글 왜 기다리는 것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