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다.
그래서 감정도 최대한 회피를 하려 하는데,
지금은 사실상 모든 나머지 것들을 끌어모아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는 데만도 힘이 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번 바뀌는 프로젝트를 낯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준비를 해보고, 현장에 나가면 사람들과 이 정도쯤이야라는 태도를 만들어 보이며 밝게 인사를 한다.
도어락을 누르면서는 어떤 때에는 짧게, 어떤 날은 깊게 숨을 내뱉거나 혹은 들이마시며 빠르게 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면 그 문 뒤에 있는 집안의 온기가 셋일까 넷일까는 최대한 상상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문을 열고, 언제나처럼 강아지, 고양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인사를 하고 한 번씩 껴안아 준다.
종국으로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여러 번의 연습과 큰 사건들을 겪으며, 한 가지 다짐한 것은 나에게 주는 밥상을 손님에게 주 듯이 해보자였다. 지난해 겨울이던가, 요상하게 수챗구멍에 머리카락을 자주 버리네라는 생각이 들 무렵에,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머리를 다듬으러 간 미용실에서 모르고 있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 머리 구멍 난 거 알고 계시죠?"
평생을 숱이 많아 아까운 고무줄도 여러 번 끊어먹었는데, 탈모라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 심지어 빠졌다가 잔디처럼 다시 자라난 부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시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빠졌다가 났다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설명을 듣고 난 이후로는, 스트레스로 잘 넘어가지 않더라도 밥이라도 잘 챙겨 먹자는 꼭 지켜보자 생각했던 것이다.
세 번의 끼니는 꼭 지키고, 귀찮아서 주차장 앞에서 사 와 데워먹는 편의점 도시락은 지양하고, 웬만하면 김치도 김치통 채로 꺼내지 말고 그릇에 덜어 먹고.
잠깐 놀러 온 친구에게 내어주는 끼니처럼 이라도 나에게 잘 차려진 밥상을 내어줘 보자.
그래서 아이들을 한 번씩 껴안아주고 난 뒤에는, 매번 좀 나아지나 싶게 정성스레 늦은 저녁을 차려본다.
요리의 장점은 식비절약, 건강 챙기기 말고도 시간이 잘 간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렇게 얼레벌레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세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온다.
코너마다 놓여있는 아이들 물그릇 밥그릇을 모아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찰랑이도록 물을 받아 갈아주고는 슬쩍 안방 쪽 눈치를 살피면, 어떤 날은 운이 좋게 씻고 싶은 시간에, 어떤 날은 조금 더 늦게 하루에 쉬고 싶었던 만큼의 한숨들을 모아 따듯한 물에 흘려보낼 수 있다.
그러면 드디어 내가 오롯이 회피했던 감정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은 자기 전까지 적으면 1시간, 많아야 3시간 남짓인 것이다. 소파에 기대어 손이 가는 대로 인스타그램 릴스를 반복해서 내리기도 하고, 전에는 관심이 없던 넷플릭스 다큐를 그렇게 찾아보기도 한다. 반짝이는 화면들에도 눈이 잘 뺏기지 않는 날은 사부작사부작 한잔 기울일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들에서 예기 치도 않게 덜컥, 아주 커다란 감정이 쑥 잡아먹는다.
이때, 곤란한 것은 생각보다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큰소리를 한바탕 내면서 짐승처럼 잔뜩 쏟아내면 축축하게 넘실대던 주머니가 비워졌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게 당황스럽다.
눈물은 아직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눈치가 보인다.
졸졸거리는 방류를 원했는데, 갑자기 큰 물보라가 쏟아져 나와 나를 한순간에 잡아먹을까 걱정이 크다.
엉엉거리며 소리 내어 울다가 그로 인해 모른 체 자꾸 회피하던 감정을 마주해 버린다던가, 타인에게 정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던가, 그래서 또다시 스스로가 허들이 될 수도 있는 나도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와버리면 물주머니는 비워졌을지라도 혹시나 그 후의 곤란한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더 싫다.
지금 나에겐,
눈물은 눈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