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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Oct 07. 2022

인사

여덟 살 아이의 가을(2022.09-2022.11)




엄마의 집착




등교길 아이에게 실수를 했다. 태권도 학원에 같이 다니는, 서로의 집에 몇 번 오가며 놀던 친구가 앞서 걷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앞에 친구가 있으니 다가가 인사를 하라고 얘기했다. 아이는 왠지 인사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엄마랑 같이 가.”
“저기 조금 빨리 가서 인사하면 되잖아.”
“그래도 엄마랑 같이 가.”


나는 아이와 함께 가 친구 옆에 섰는데, 친구는 아이를 돌아보지 않고 함께 있던 또 다른 친구와 장난을 쳤다.


친구 이름 크게 부르고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해야지. 인사에 대한 엄마의 코치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친구 옆에서 이름을 말했지만 친구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재촉했다. 얼굴을 봐야지. 조금 소리 높여 이름을 불러야지. 나는 계속 채근했다. 아이가 목소리를 높여 친구의 이름을 두어 번 부르자 그제야 친구가 뒤돌아 보며 말했다. 왜? 귀찮다는 듯, 강함이 약간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너, 나 싫어하는구나. 그렇게 이름을 불렀는데도 모른 척하고."
"그렇게 불렀는데도 모른 척하고."


친구가 내 아이의 말을 따라 했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못 들은 게 아니라 못 들은 척 한 거구나. 그런데 왜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자기 집에 가자고도 하고 그랬을까? 바로 이틀 전만 해도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아이였다. 절친까지는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만나 노는 사이. 나는 내 아이만 잡고 서서 "근데 너 나 싫어하는구나, 와 같은 말은 또 왜 하니?"라고 핀잔을 주었다.


아이와 헤어져 돌아오는 , 후회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답답했다.  친구가  아이를 알은 체하지 않은 이유. 여러 답들을 찾아다녔다. 다른 친구와 있을 때는  아이와 인사하기 싫은 건가? 아니면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서로 인사하는 것이 불필요한 과정인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필요할 때만  아이를 찾는 건가? 모든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니 자신이 친구와 놀고 는데 방해가 돼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사를 강요했던 엄마의 고집. 나는 그냥 지나치려는 아이에게 굳이 인사를 강요했을까? 인사하지 않고 지나가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끝없는 집착. 이게 문제다. 아이의 부족한 점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사회적 관계에서 필요한 일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는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는 건, 그 첫 번째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런가? 나도 항상 아는 사람을 보면 인사를 하나? 굳이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 적도 있지 않나? 아이에게 유연한 행동을 강조하면서 나는 왜 아이에게 원칙적으로 인사를 강요했을까?


오늘은 말 그대로 내 반성문이다. 아이가 돌아오면 인사를 강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다. 아이에게 해야 할 말들을 적어 놓는다. 또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그 친구가 "왜!"라고 말해서 서운했지? 먼저 인사하고 싶지 않은 친구에게 인사하라고 얘기해서 미안해. 네가 인사하고 싶지 않으면 인사하지 않아도 돼. 인사하기 전에 네 마음을 먼저 물어볼게.




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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