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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Oct 21. 2022

날것 그대로의 말들

여덟 살 아이의 가을(2022.09-2022.11)



누가 더 아프게 말하나 내기해 볼까?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대부분 지시에 해당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주춤거린다. 말해도 소용없는 메아리가 될 뿐이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뛰어가지 마.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말로 해.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지. 인사도 그 사람이 보고 있을 때 하는 거야. 멀리서 하면 그 사람이 못 알아채잖아.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기분 나쁜 말은 하지 마. 나쁜 말을 하고 싶으면 차라리 네 마음속으로만 얘기해."


오늘 피아노 연습을 하는 중 아이가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완벽주의자. "왜 또 틀리는 거야. "라며 아이가 짜증을 낸다. 아이는 단 한 번의 연습에 모든 걸 제대로 해내길 바란다. 피아노를 치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울먹인다. 그럴 거면 피아노 연습하지 마. 다음 달엔 피아노 학원도 그만두자. 이렇게 말하면 또다시 아이가 소리친다. 나 피아노 학원 다닐 거야. 연습할 거야.


피아노 연습을 하는 5분 여 동안, 아이는 딱 한 곡 끝날 때마다 잘 안된다고 짜증을 낸다. 그렇게 성질부리면서 연습할 거면 차라리 하지 마. 그냥 아무것도, 아무것도 배우지 마. 그럼 틀릴 일도 없어.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잘 못해. 틀리면서 배우는 거야. 한번 틀렸다고 그렇게 울지 않아.


"아이씨..."


요즘 아이가 기분 나쁠 때마다 내뱉는 말이다. 아이씨. "그건 나쁜 말이니까 하지 ."라고 말했지만 아이가  말을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학원 교실 앞에서 아이가 "아이씨"라고 말하며 들어간다.  번만  하고 그만둘 학원인데, 아이는   번을  참고 싫은 내식을 한다. 학원 선생님이 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 제가   들은 거겠죠?”


아이씨라는 말. 내가 애원하고 타이르고 종용하고 끝내 화를 내도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국 목소리를 높이겠지. 엄마가 너한테 가르쳐 주고 있는 거야. 네가 다른 사람한테 나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엄마가 너한테 가르쳐 주는 거라고. 그런 나쁜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자꾸 눈물이 나온다.


엄마는 너하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 너는 사람을 참 힘들게 해. 너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네가 엄마 말을 단번에 들은 적이 있니? 계속 딴청하고 따지고 궁시렁 되고 엄마가 싫어할 소리만 하잖아. 너처럼 해볼까? 쟤는 왜 저렇게 늑장을 부리지? 쟤는 왜 동물처럼 고함을 지르지? 사람이 한두 번 말하면 알아 들어야지 계속 안 듣는 건 도대체 뭐야. 결국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이제 그만하라고."


나는 아이를 몰아세운다. 소리치지 마. 엄마도 지금 참고 있는 거야. 엄마도 너처럼 소리 지르고 싶고 짜증내고 싶고 화내고 싶지만 어른이니까, 사람이니까 참고 있는 거야. 엄마는 동물이 아니니까. 그런데 너는 지금 동물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네? 화난다고 소리 지르지 마. 화나면 화난다고 얘기해. 기분 좋으면 기분 좋다고 얘기해. 괜스레 이상한 소리나 내면서 관심 끌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외계인 같은 말하면서 신경 쓰게 하지 말고!


며칠 전부터 아이와 부딪히는 일이 잦다. 내 안의 참을성도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쓴웃음을 지으며 넘기던 일도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자꾸 나도 욱한다. 아이에게 할 말, 하지 않을 말 가리지 않게 된다. 내 입이 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잔인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 입에서도 결국 이 말이 튀어나온다.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 엄마 이 집에서 나가."


나는 옷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아이를 보고 온 힘을 다해 말한다. "그럴 땐 엄마, 나 너무 속상해. 엄마 나 너무 화가 나."라고 말하는 거야.


위의 말들은 모두 내가 아이에게 직접 내뱉은 것들이다. 마음 아프지만 사실이다. 그래도 “나도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는 말은 내뱉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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