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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Dec 02. 2022

미리 준비해두는 시나리오

여덟 살 아이의 겨울(2022.12-2023.02)



대사 연습 시작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삐뚤삐뚤 쓰러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간다. 가까운 곳에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의 자전거가 비스듬하게 그분 앞으로 나갔다. 서로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자전거가 휘청했다. 아이가 지나가면서 버럭한다.

"왜 내 길을 막는 거야?"

뭔가 잘못됐을 때 남을 탓하는 말버릇이 또 튀어나왔다. 뭐라 말릴 사이도 없이 뒤편에서 성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이 놈.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아이를 향해 말했다.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나는 앞서 가는 아이를 붙잡았다. 아이는 그 할아버지의 반응에 화가 난 듯 보였다.

"나도 가서 나쁜 말 할 거야."

할아버지를 따라나서려는 아이를 붙잡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더 혼날 거야. 네가 먼저 그 할아버지에게 나쁘게 말했잖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식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도 화가 났고 아이도 화가 났다. 나는 아이와 조금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 아이에게 아까 상황을 설명하고 그럴 땐 죄송하다고 하는 게 맞다고 가르쳤다. "이 놈"이라고 말한 할아버지도 어른답지 않았지만, 네가 먼저 사과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이 답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 때문에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엄마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제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요. 가끔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우리 애는 어쩔 수 없으니까, 당신이 제발 이해해줘, 와 같은 억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칼날이 결국 나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나는 세상을 향해 자꾸 대들고 싶다. 우리 애가 원래 이렇다고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다른 이에게 연민을 구걸하고 싶은 마음도 아마 없진 않을 것이다.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말아 줄래?


혹시라도 자포자기한 마음에 나와 아이를 무너뜨리는 언행을 피하기 위해 위급 시 비상식량 같은 말을 준비해야겠다.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품위를 잃지 않는 말을.  




아이에게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계속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더는 상관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은 썼다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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